새 학기에 맞이하는 생일이 싫었던 이유

by최물결

3월, 만물이 소생하는 따스한 봄날.

경칩이 지나면 겨울잠에서 깬 잎새들이 얼굴을 드러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일이 찾아왔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봄을 싫어했다.


정확히는 새로운 걸 두려워했다. 학생 때의 난 모르는 사람들과 어떻게 해야 할지 낯설어하는 ‘걱정인형’ 그 자체였다. 학년이 바뀌면 반도 바뀌었으나 새로운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뿔뿔이 흩어져 완전 다른 친구들과 생활해야 했으니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던 해였다. 인문계에 진학한 아이들은 소위 ‘뺑뺑이’로 학교를 배정받았다. 같은 학교에 배정받아도 반은 제각각이었다.


예비소집일, 교실 안에는 서로 다른 중학교에서 온 아이들이 섞여 있었다. 누군가는 “야 우리 또 같은 반이다!” 소리를 지르며 웃었고, 또 다른 친구들은 “그래도 아는 애 한 명은 있어서 다행이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야속하게도 그 속에서 나는 겹치는 친구들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나는 늘 중간이었다. 열심히 해도 중간, 운동도 미술도 공부도 잘하는 걸 찾을 수가 없던 아이였다. 운동신경은 더 없어서 며칠 연습한 뜀틀 구르기 수행평가에서도 B를 받았다.


눈에 띄지 않는 아이, 그렇다고 완전히 없는 것도 아닌 아이. 그게 나였다. 그래서 늘 고민했다.

‘나는 뭘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까’

관계는 내게 늘 숙제였다.


아이들은 새 학기에 빠르게 적응했다.

반이 정해지자 능청스럽게 말을 거는 아이가 있었고, 발표나 할 일을 도맡으며 자연스럽게 중심이 되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도 아니면 모도 아닌, 그저 미지근한 온도의 아이였다. 그래도 나는 내 방식대로 관계를 만들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고 좋아하는 것들을 먼저 건넸다. 초등학생 때는 만화 스티커, 학 종이 따먹기로 얻은 종이 등 내가 아끼는 것들을 주변에 나눠주며 환심을 샀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었으니까. 그러다 알게 됐다.

관계는 먼저 잘 보이기 위해 애쓴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천천히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에서 시작된 다는걸.

천 속에 물감이 번지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도 스며들며 가까워진다는걸.


생일날 사물함을 열었는데 작은 과자 하나와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너 오늘 생일이라며. 반은 달라졌어도 자주 놀러 와. 맛있게 먹어”


투박한 글씨의 정체 모를 쪽지. 고등학교에는 매점이 있어 쉬는 시간마다 과자나 빵을 사 먹었는데 그때 산 것 같았다. 익숙한 과자 한 봉지가 덩그러니 사물함에 담겨 있었다. 친구의 선물이었다.


반은 바뀌었지만 친하게 지내자는 친구의 쪽지. 나는 그 메시지를 마음 안에 꾹꾹 눌러 접어 넣었다.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것. 그 사실 하나가, 고마운 마음으로 찾아와 오래도록 가슴에 채워졌다.


그날 이후 나는 관계에 덜 매달렸다. 붙잡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학기 초가 되면 어김없이 생일이 찾아왔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알바를 하며 회사를 다니며 맞이한 생일들. 지금은 생일을 기억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카톡 알림으로 미리 생일을 알고, 찜해 놓은 선물 목록들을 보며 기프티콘을 보낸다.


이제는 안다. 나는 많은 사람의 축하를 원했던 게 아니라 나를 기억해 주는 몇 사람의 시간이 필요했단걸. 그리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하는 날들이 싫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이를 먹은 요즘 내 생일은 예전보다 더 조용하게 흘러갔다. 식탁 위 작은 케이크에 촛불 하나를 켠다. 사랑하는 나의 지인들과 밥을 먹거나 커피타임을 가진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창문을 열자 고소한 햇살이 아지랑이처럼 코 끝에 내려앉았다. 화단에 노란 개나리가 피어 있었다. 나는 이제 봄이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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