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벚꽃이 가장 미웠던 날

by최물결

집 앞 공원, 3n 번째 벚꽃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차에서는 익숙한 음악이 귓가를 메웠다. 발매된 지 십 년 이상 됐는데 항상 새로운 기분이 드는 노래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엔 ♪

봄 노래를 부르고

꽃잎이 피어나 앞에 살랑 거려도

난 다른 얘기가 듣고 싶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 버릴

오오 봄 사랑 벚꽃 말고 ♪


봄 노래를 들으며 스무 살 찬란하게 꽃피다 져버린 첫사랑을 떠올렸다. 벚꽃은 예쁜데, 내 마음은 한없이 어둠이 피었던 시절. “시절 인연”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팻말처럼 펼쳐졌다.

사랑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시절을 만나는 거라 했다. 서로의 시절이 맞닿았을 때 찾아오는 거라나 뭐라나.


사랑이 피어나는 계절, 간질간질하고 따뜻한 감정들로 가득한 음악들.

그런데 나는 어떤 봄의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았다. 봄은 왜 찬란하고 예쁘기만 한 걸까.

스무 살, 나는 여의도에서 펑펑 울고 있었다. 열여덟 살부터 이 년간 사귀었던 첫 연애. 나는 봄에 차였다. 좋아하면 끝까지 갈 줄 알았는데. 사랑은 당연히 이어지는 거라고 믿었으나 그건 착각이었다.


“너무 좋아해서 질린다”

그 사람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고등학생 때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그가 무심하게 굴어도 장난치고 농담을 할 때도 모든 모습이 좋았다. 모든 게 처음이었으니까.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초콜릿을 만들고, 케이크를 굽기도 했으며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던 내 글을 그에게 보여줬다. 그런데 나는 그에게 질려버린 사람이 되었다.


첫사랑은 달콤하다고들 말하지만 이별통보는 내게 카페인이 잔뜩 밴 진한 초콜릿 같았다.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눈물이 나기보다는 심장이 무너졌다.

‘이 사람 없이 나는 어떻게 살아가지?’

같은 질문이 소용돌이치며 머릿속에 맴돌았다.


스무 살 그때의 나는 몰랐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찾아온다는 것을. 내 마음은 물 한 방울에도 쉽게 젖어 찢어지는 얇은 종이 같았으니까.

당시에 나는 밥도 잘 먹지 못했고 살은 오 킬로그램 넘게 빠졌다. ‘나 헤어졌어’라고 부모님께 슬픈 티를 내지도 못했다. 죽지 못해 살고, 수업을 가고, 머리는 그에게 가 있으면서 과제를 꾸역꾸역 했었다.

그날은 대학교 친구들과 벚꽃놀이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여의도의 벚꽃은 유난히도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벚꽃이 미워서 울었다. 정확히는 예쁘게 핀 벚꽃이 근냥 미웠다.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어설프게 한 새내기 화장이 무너졌다.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가 번져 얼굴은 엉망이 되었다. 마치 내 마음 같았다. 친구들과의 사이도 어쩐지 서먹해졌다.


친구 무리 중 한 명이 “지금 이렇게 즐거운 분위기에서 왜 우냐”라며 내게 화냈다.

꽃놀이를 완벽하게 망친 해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택시를 잡으며 괜히 아저씨에게 외면당할 것 같아 더 크게 손을 흔들었다.


창밖으로 벚꽃이 스쳐 지나갔다. 모든 풍경이 한 장면, 한 장면 영상처럼 흘러갔다. 너무 예뻤다. 그래서 더 울었다.

“학생 왜 이렇게 울어?”

기사님의 한마디에 나는 결국 무너졌다.

“벚꽃은 이렇게 예쁜데...저 오늘 헤어졌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고, 많이 유치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전부였다.

“시간이 약이야.”


그 흔한 말이 그때는 아무 의미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 맞는 말이었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던 인생은 결국 아무렇지 않게 흘러갔다.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닌 나였다.


그저 스무살의 봄이 유독 아팠을 뿐이다. 지금은 안다. 그때 내가 미워했던 건 벚꽃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단걸.

그래도 괜찮다. 기억 위에는 시간이 후시딘처럼 덧발라지고, 결국 아물어간다.

봄은 매년 다시 오고 나는 그때와 다른 얼굴로 그 계절을 지나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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