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대 나오지 않은 여자

엄마의 빨간 수첩을 부러워하지 않게 되기까지

by경험소믈리에

엄마는 이대 나온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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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기도 힘든 시절, 36년생 엄마가 이대를 다녔다는 건 엄청난 특권이었음이 분명하다.


콧대 높은 이대 출신 엄마는 서울대 최고 학과 출신 남편을 맞아들였다.


그것 외에 어떤 선택지도 없다는 듯이..


엄마는 자랑스러운 특권이 맏딸에게 계승되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뿌듯해했다.


그런 반면 막내딸이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는 사실에 늘 속상해하셨다.


그러나 속상한 마음이 배려로 이어지진 못했다.


엄마는 언니와 한 편이 되어 이대의 특권을 보란 듯이 펼쳐댔고 그때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엄마의 세상에는 이대 나온 여자와 이대 나오지 못한 여자로 세상이 구분되어 있었다.


엄마는 다른 이대 출신 할머니들이 그러는 것처럼 빨간 이대 동창 수첩을 무슨 훈장처럼 늘 지니고 다녔다.


해가 바뀔 무렵이면 빨간 수첩을 두 개 구해다 동지인 맏딸에게 나누어 주며 새로 주소록을 옮겨 줄 것을 부탁했다.


어떨 때는 손글씨가 예쁘다는 이유로 내게 그 노동을 시켰는 데 느끼는 소외감은 마음에 상처로 아로새겨졌다.


"너도 빨간 수첩을 함께 썼으면 얼마나 좋았니.."


"그랬으면..."


나는 엄마의 말 줄임에 어떤 말이 들어갈지 듣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었다.


빨간 수첩을 쓰는 동지가 되었더라면 너의 배우자 수준이 달라졌을 거라는 안타까움이었다.




엄마의 이런 상습적인 스크래치로 나는 30이 훌쩍 넘어서도 다시 시험을 봐서 보란 듯이 이대에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면 기분이 나빴다.


아직까지 이대타령이라니..


이제 세월이 변했다.


엄마가 그렇게 떠받들던 이대는 명성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여학생들이 여대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언니 역시 이대와 그보다 못한 남녀공학 대학 중에서 후자를 선택하겠다는 조카와 언쟁을 벌였던 게 생각난다.


언니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이대 나온 여자'가 조카에게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월만큼 변한 게 또 있다.



나는 여전히 ‘이대 나오지 않은 여자’다.


하지만 이제는 어디선가 탈락한 사람처럼 느끼지 않는다.


완전히 벗어났다.


............


빨간 수첩의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임경선 작가의 <엄마와 연애할 때>를 읽던 중 이대나온 엄마에 대한 회고가 담긴 글이 다시 기억을 소환했다.


빨.간.수.첩


갖고 싶었지만 갖지 못해 늘 아쉬웠던 ...


이젠 갖고 싶다는 마음 조차 사라진지 오래다.


훈장 같은 엄마와 언니의 수첩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내게는 빨간 수첩 이상의 자랑스러운 나만의 것이 생겼다.


내게는 잘 익은 경험이 자산이다.


바카라으로 읽고, 영상으로 보고, 그리고 직접 가보고, 살아낸 경험을 숙성시켜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어간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부자가 되어간다.


오늘도 내 수첩을 채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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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연애할때_임경선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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