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꾸로 살아왔다

9할을 지키느라 1할을 키우지 못했다

by경험소믈리에

등은 앞보다 때론 더 많은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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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어느 조찬 강의장에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강사는 <어둠의 딸, 태양 앞에 서다>의 저자 조성희 대표였다.


강의 시작 화면에 그의 바카라 표지가 크게 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탄탄한 등과 꼿꼿하게 선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카라 표지에 실릴 카리스마 있는 뒷모습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운동했다고 했다는 그녀의 말은 많은 걸 함축하고 있었다.


과연 그랬다.


얼굴도, 표정도 보이지 않는데 이상하게 많은 것이 보이는 듯했다.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과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자신감이 그 등에 담겨 있는 듯했다.


많은 강사들이 눈에 보이는 성과를 이야기할 때, 정작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선했다..


"해답은 외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부에서 돌아가는 현상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외부에 보이는 것들이 궁극적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를 살펴보고 그 생각을 바꾸는 것이 궁극적으로 내 삶의 결과를 바꾼다."


그때 나는 강의를 들으며 조금 엉뚱한 생각을 했다.


보이는 것이 저 등처럼 이토록 강렬한데,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걸까?


그날은 그저 그런 생각을 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7년이 흘렀다.




7년이 지난 2026년 9월의 어느 날 아침, 《오늘을 빼앗기고 있는 당신에게》를 필사하다가 한 문장 앞에서 손이 멈췄다.


바깥의 당신이 흔들려도 안의 당신이 단단하면 당신은 무너지지 않는다.


순간 7년 전의 조찬 강의장으로 돌아갔다.


맞아. 그때 조성희 대표도 이런 이야기를 했었지.


보이는 외부의 것과 보이지 않는 내부의 힘.


2천 년 전 세네카의 말과 7년 전 어느 조찬 강의장에서 들었던 말이 내 바카라상 위에서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다.


묘한 전율이 일었다.


바로 그거야.


이름을 빼면,


직위를 빼면,


평판을 빼면,


그때 남는 것이 진짜 당신이라는 세네카의 말.


이런 바깥의 9할이 안의 1 할인 나를 지켜줄 거라 믿었다.


그래서 9할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고, 그것들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뿌리째 함께 흔들렸다.


그게 아니었다.


바깥의 9할이 안의 1할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안의 단단한 1할이 바깥의 9할을 지탱하는 것이었다.



사업이 쫄딱 망하고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번의 위기에 모든 것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궁금해하면서도 정작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만을 바랐다.


사업도, 관계도, 내가 가진 것도 별 탈 없이 제자리를 지켜주기를 바랐다.


무난하게 살다가 무난하게 한평생을 마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늘 기도했다.


그러면서도 늘 불안했다.


지켜주고 싶은 자식을 생각할수록 오히려 불안은 커졌다.


9할이 흔들리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정작 그것들이 흔들렸을 때 나를 붙잡아줄 단단한 1할은 키우지 않았다.


그러니 나의 1할이 힘이 없는 건 당연했다.


가꾸지 않았으니 자라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내 안의 1할은 하나도 자라지 않았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렇지만은 않았다.


눈에 보일 만큼 자라지 않았을 뿐, 씨앗은 썩지 않고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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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어느 조찬 강의장에서 마음에 떨어진 말 한마디.


오늘 아침 밑줄을 그으며 필사한 세네카의 문장.


그 사이 읽었던 수많은 바카라과 기록하고 생각하고 써온 시간들.


당장 무엇이 되지도 않았고,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들어주지도 않았다.


나조차 그런 시간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쌓여 내 안의 1할을 조금씩 키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가 깊게 자라고 있는 것처럼.


어제의 기록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공들인 시간 또한 없어지지 않는다.


그때는 답을 몰랐던 말도 시간이 흐른 뒤 전혀 다른 순간에 돌아와 오늘의 나에게 답이 되어준다.



얼마 전 딸이 물었다.


"엄마, 그거 한다고 돈을 버는 건 아니잖아."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바카라을 읽고, 필사를 하고, 생각을 기록한다고 당장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니까...


뭐라 답을 해야겠는데 말이 궁색했다.


나 역시 가끔 같은 질문을 한다.


'그래서 이게 무슨 소용이지?'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오래된 습관이다.


돈은 물론 필요하다.


바깥의 9할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며 살 수는 없다.


다만 이제는 순서를 조금씩 바꾸어보려 한다.


9할을 지키기 위해 1할을 없는 듯 대하는 게 아니라,


1할을 단단하게 만들어 9할의 흔들림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이유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자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씨앗이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동안에는 아무도 그 성장을 볼 수 없다.


나 역시 아직 얼마나 자랐는지 모른다.


다만 예전처럼 바깥의 것이 조금 흔들린다고 해서 나까지 뿌리째 흔들리고 싶지는 않다.


9할보다 더 큰 1할의 힘.


잃으려야 잃을 수 없는 그 1할을 키우기 위해 오늘도 나는 읽고, 생각하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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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에 그저 신선하다고 생각했던 말의 뜻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보이는 것보다 더 강력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힘이었다.


딸에게 해 줄 답을 이제 찾았다.


"그래, 당장 돈을 버는 건 아니야.


대신 엄마는 지금 나를 키우는 중이야."


@어둠의 딸, 태양 앞에 서다

@어제의 기록, 오늘의 답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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