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김진준
이 바카라도 저의 낭독 모임인 <아침낭독반>에서 함께 낭독할 걸 그랬나요. 영화를 통해서라도 '롤리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완독한 사람도 별로 없다고 해설에 쓰여 있네요. 나만 안 읽은 줄 알았구먼.... ㅡ,ㅡ;
오래전에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동명 영화도 보았고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이 소설을 읽게 한 건 영화 <북샵>과 동명의 원작 소설이었습니다.
힘겹게 바카라방을 꾸려가는 플로렌스가 브런디시 씨에게 이 바카라을 보내며, 바카라방에 들여도 될지 의견을 물었죠.
나 역시 그의 답변이 무척 궁금했는데요, 나이 많은 은둔형 독서가인 브런디시 씨가 긍정적인 답변을 합니다. 그래서 읽기로 한 겁니다. 읽은 후에는 브런디시 씨의 견해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저는 옳고 그름에 댁만큼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지 않아요. 물론 『롤리타』는 읽었습니다. 좋은 작품이더군요. 하드버러 사람들에게 팔아도 될 겁니다. 작품을 충분히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어요. 모든 걸 이해하면 정신이 나태해지기 마련입니다."
- 피넬로피 피츠제럴드/정희성 『북샵』 중에서
무릇 세계문학'전집'이라면, 작품 내용과 연관된-혹은 연관 있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찾아 붙이기보다는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 그저 중립적이고 작품과 무관한 표지를 제작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독자는 그 이미지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안나 카레니나』의 표지에 귀족 여인의 그림이 있잖아요? 안나가 딱 그렇게 생긴 여인일 것 같은 편견을 가지고 독서가 시작됩니다. 같은 작품을 읽어도 독자들의 머릿속에는 독자의 수만큼의 주인공이 존재하게 되는 법이죠. 그래서 그런 폭풍의 언덕도 탄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미지에 대단히 영향을 받습니다.
(참고 자료 ▼)
(개인적으로 저자의 사진도 앞, 뒤 표지에는 싣지 않는 걸 선호합니다. 이 역시 작품 감상에 영향을 줍니다...)
이 표지 사진은 불필요하게 관능적이고 비정상적인(?) 상상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작품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독자의 고통과 슬픔을 세 배쯤은 더하게 합니다. 그런데 면지 다음에 또! 크게 인쇄해 넣다니요! 크게 실망한 부분이랍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만큼이나 불만스러운 표지입니다.
헛!
같은 출판사네요!

한 줄 요약
10대 소녀를 사랑하여 그녀의 계부가 된 40대 아저씨가 의붓딸을 데리고 전국을 떠돌아 여행하며 억지 사랑을 나눴던 이야기.
줄거리를 아무리 잘 표현한들, 길게 부연하지 않는 이상 작품의 묘미를 담아낼 수가 없답니다. 아마 '뻔하다'라고 생각하실걸요.
처음엔 의외였고, 다음엔 우스웠으며, 도중엔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나' 싶었지만, 마지막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와우!" 명불허전이로구나!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라 해도 단 한 번 읽고 이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험버트가 사랑했던 롤리타의 선택만큼이나 경솔한 짓이라는 겁니다. 검색해 보니 이 작품에 '대하여' 쓴 글들이 작품의 명성만큼이나 많은데, 최근에 업로드된 것들은 AI의 도움을 많이들 받으신 듯하더군요.
겨우 한 번밖에 읽지 않은 나로서는 차마, 그저 나의 감상일 뿐이라 해도 차마 어떤 말도 하기가 어렵네요.
마음이 복잡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적어도 한두 번은 더 읽어야만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에요.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적어도 한두 번은 더 읽고 싶은 욕망이 생길 만큼 이 소설에 열정이 동하지는 않았다는 슬픈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직접 읽을지 말지 결정하시는 데에 참고가 될 만한 작은 팁을 드립니다.
1. 이 소설이 단순히 에로티시즘을 말하고 있다든가, 소아성애라는 변태성욕자의 이야기, 혹은 그것을 미화하고 있다는 것 등은 일단 모두 오해입니다.
2. 기필코 '야한'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19금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적나라한 베드신이나 애정행각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일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점이 이 작품의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고요.
3. 모르긴 몰라도, 지구 최고의 언어유희를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롱과 풍자, 패러디, 냉소로 이루어진 춤을 감상하게 됩니다.
나보코프의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롤리타』는 온갖 언어유희의 박람회장 같은 인상도 준다. - 작품 해설 중에서
4. 작가는 어떤 교훈도 집어넣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저 '심미적 희열'을 위해 '영감과 연상의 상호작용'으로 집필했다고 하네요. 그냥 즐기면 되겠습니다.
5. 이 바카라으로 독서모임을 하면 무진장 재미있을 겁니다.
마침내 험버트는 죄의식을 고백합니다. 그녀를 정말 사랑했지만 자신이 그녀에게서 무엇을 빼앗아버렸는지 인정하죠. 반대로, 자신이 죽일 놈인 걸 알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 역시 어쩌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절망적이고 가슴 아픈 것은 내 곁에 롤리타가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 아름다운 화음(아이들이 노는 소리) 속에 그녀의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김진준 『롤리타』 중에서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참 슬펐습니다. 험버트 아저씨와 소녀 롤리타 모두. 시리도록 슬프고 아린 이야기입니다.
(세 개로 추리기 정말 어려웠습니다.)
▣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 일찍이 롤리타가 그늘과 어둠만 있는 험버랜드에 발을 들여놓은 까닭은 경솔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 내가 그 어떤 영적 위안을 얻더라도, 설령 그림처럼 아름다운 영생이 나를 기다리더라도, 나의 롤리타는 내가 그녀에게 입힌 더러운 정욕의 상처를 절대로 잊지 못할 터였다.
언어유희를 좋아하거나
소설 자체를 좋아하거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좋아하거나
다양성을 수용하거나
심리적 범퍼링이 가능한 분
말장난을 혐오하거나
소설을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들이거나
다혈질인 분
소설은 소설일 뿐,
오해하지 말자.
- 개그콘서트 재밌었지
영화도 다시 보았습니다. 당연하게도 원작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조금은 다른 전재가 펼쳐져도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문학 애호가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