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방인인가
주말의 성수동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10대나 20대로 추정되는 젊은이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속살이 훤히 들어나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젊은이들도 눈에 들어왔다. 젊고 활기찬 풍경 속에서 걷고 있는 마흔의 나와 오십의 그. 우리가 성수동의 이방인들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예약한 식당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는 스마트폰을 쥔 채 길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묘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네이버 지도를 켜고 식당을 찾아야하나 싶기도 했지만 길찾기는 그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와 나란히 걷는데 그의 키가 상당히 컸다. 그의 체중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지만 큰 키와 등치가 괜스레 든든하게 느껴졌다.
도착한 식당은 그가 보낸 4개의 후보지 중 가장 가격대가 저렴해 내가 콕 집었던 곳이었다. 내 배려의 결과물이었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캐주얼한 느낌이 지나치게 강했다. 10대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가득했고, 내부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이 들썩이고, 젊은이들의 육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내부, 그리고 붉은 네온 조명들이 곳곳에 켜져 있었다. 펍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사진상 가장 맛있어 보이는 파스타를 골랐고, 그는 미리 정해 놓은 듯 스테이크를 골랐다. 음식은 금세 나왔다. 유명한 맛집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파스타는 솔직히 맛이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소개팅하러 온 것이니까. 장소보다는 그와의 대화가 더 중요했다. 어둡고, 조금은 시끄러운 분위기가 어색함의 공백을 메꾸어 주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만요."
이야기 도중 그가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여기 앞치마 하나만 가져다주시겠어요?"
언니에게 빌려 입고 나온 옷이 하필이면 새하얀 셔츠였다. 붉은 파스타 소스가 튄다면 그야말로 대참사였다. 나는 그 생각을 못했는데 먼저 앞치마를 챙겨주는 그의 센스가 와 닿았다. 한참 음식을 먹고 있을 때 그가 깜박했다는 듯 말했다.
"아, 우리가 음료를 안 시켰네요. 뭐 마실래요? 에이드나 탄산음료 고르세요."
그와 만나자마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전부 마셨고, 식사가 끝나면 높은 확률로 카페를 또 가게 될 터였다. 식전 커피에 이어 식중 음료, 그리고 식후 커피까지는 너무 과한 것 같았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물 마시면 돼요. 이따 커피 같이 마셔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밖은 여전히 밝았다.
"우선 좀 걸을까요? 걷다가 괜찮은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죠."
조금 걷다가 카페에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주말의 성수는 걷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웬만치 이름이 알려진 카페들은 이미 입구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웨이팅을 하고 있었다. 첫만남에 카페 웨이팅을 할 수는 없었고 어디든 빈 자리가 있는 카페가 보이면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을 돌아서는데, 낡고 오래된 이름 모를 프랜차이즈 느낌의 투박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세련된 성수동 골목에서 홀로 유행을 비껴간 듯한 촌스러운 간판이였다. 그래서인지 내부에 손님도 별로 없었다.
'그냥 저기 들어가자고 할까?'
잠시 고민이 스쳤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와 조금 더 걷고 싶었기도 하다. 그렇게 목적지 없이 걷고 있는데 익숙한 외관의 카페가 내 시야에 걸려들었다. 예전에 친구와 함께 와봤던 기억이 있는 카페였다. 그곳은 구조가 독특했다. 건물 전체가 하나의 카페인데, 만약 본 건물이 만석이 되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별관 건물 테이블에 앉아도 되는 시스템이었다. 내 기억에 커피 맛이 꽤나 깔끔하고 괜찮았던 곳이었다. 전에 왔을 때는 한 자리 남은 구석 자리에 간신히 끼어 앉았었는데 별관을 슬쩍 들여다보니 이번에는 웬일인지 앉을 만한 빈 자리가 꽤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저 카페 제가 가봤던 곳인데 커피 괜찮아요. 저기로 갈까요?"
"좋아요. 안목을 한번 믿어볼게요."
그와 나는 또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진동벨을 받아 그에게 맡기고 나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그가 카운터 앞 테이블에 앉아 진동벨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위잉 울리는 진동벨을 들고가서 음료를 받은 후 본관을 나와서 별관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의 구석진 자리, 창가 너머로 성수동의 노을이 비스듬히 밀려들고 있었다. 이번 대화는 처음 만났던 카페나 식당에서의 그것과는 확연히 결이 달랐다. 더는 땀을 흘리지 않는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고, 내가 외향인으로 오인받지 않아도 되었다. 이야기하다 창밖을보니 밤하늘은 검정색으로 변해있었다. 이야기기 잘 통하는 것 같아서 이 사람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만나자마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원샷하듯 들이켜고, 식후에 또 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전부 들이켜니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화장실은 본관 건물에 있어서 별관 건물에서 아예 나가야했다. 어쩔수 없이 헤어질 타이밍인 것이다.
"시간이 꽤 늦었네요. 슬슬 일어날까요?"
나는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가면서 화장실 한 번 더 다녀올게요."
그 사람과 함께 있었던 시간은 고작 4시간 남짓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벌써 화장실만 두 번째였다. 민망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손을 씻으러 갈 수도 있고, 화장을 고치거나 립스틱을 새로 바르러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도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하지만 두 번 다 참을 수 없는 생리현상에 답하러 간 것이라 괜히 혼자 찔려서 부끄럽고 민망했던 것 같다.
화장실에서 나와 카페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가 서 있었다. 내 시선에는 그의 옆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한 손에 담배를 든 채 까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피어오르는 하얀 담배 연기가 가로등 조명을 받아 몽환적으로 흩어졌다. 처음 그의 사진을 마주했을 때 어렴풋이 느꼈던 특유의 날티가 다시금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의 옆모습은 묘하게 매혹적이었다. 속눈썹이 유난히 짙고 길어서, 마치 아이라이너를 정성스럽게 그린 듯한 깊고 그윽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눈매가 길고, 눈썹과 속눈썹 숱이 많아서 또렷하고 차가우면서도 매서운 느낌을 주었다. 그 매서움이 매력적이었다.
그의 매력적인 옆얼굴 바로 밑으로는 곰돌이 푸우처럼 불룩한 배가 있었다. 곰돌이 푸우의 배를 가진 남자. 셔츠 단추가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그 둥근 배의 곡선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이제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