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불안은 어디로 갔을까

by강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몸이 좋지 않았다. 생리통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은 계속 피를 흘리고 있었고, 리포트를 읽으려고 해도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식사조차 준비할 기운이 없어 겨우 밖에 나가 해결하고 돌아왔다. 그렇게 무력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진통제를 먹었다. 통증이 조금 가라앉자 외출할 생각이 들었다. 연습실을 예약해 두었지만 가지 말까 고민했다. 몸이 좋지 않은 데다 이미 하루의 상당 부분을 허비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가서 처리할 일들이 몇 가지 있었다. 중요하지도 않고 시급하지도 않지만, 미리 해두면 좋은 일들이었다. 자동차 검사를 받고, 택배를 보내고, 이사를 앞두고 화분을 처분해야 했다. 각각은 사소한 일이지만 미루면 언젠가 다시 시간을 내야 하는 것들이었다.


자동차 검사소에 도착하니 하필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시간을 잘못 맞췄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내 뒤로 늘어선 차들을 보니 그래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는 십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앞타이어가 많이 손상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또 하나 신경 써야 할 일이 생겼다.


다음으로 화분을 팔러 갔다. 댄드롱은 좋아하는 식물이다. 손이 많이 가지 않으면서도 잘 자라서 계속 키울 수도 있었지만 이사를 준비해야 했다. 구매자는 차가 없다고 했고, 그래서 직접 가져다주기로 했다. 화분이야 버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생명을 버리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얼마 전 음식점에서도 살아 있는 독도새우를 차마 죽이지 못했다. 길을 걸을 때도 개미를 밟지 않으려고 신경 쓴다. 그렇다고 모든 생명에 특별히 헌신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저 내 손으로 무언가를 죽이거나 버리는 일이 싫다. 구매자를 기다리며 건물 정문에 서 있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돌 위에서 식빵을 굽고 있었다.

"이리 와봐."

말을 걸었지만 고양이는 가뿐히 무시했다. 그런 무심함이 좋았다. 사람이라면 상대가 말을 걸었을 때 반응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겠지만, 고양이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부르면 오기도 하고, 오지 않기도 한다.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구매자가 나타났다. 화분을 건네기 전에 어떻게 키우는지 설명해야 할 것 같아 몇 가지 말을 준비해 두었는데, 그는 이미 댄드롱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기존에 키우던 식물이 웃자라서 하나 더 구입한 것이었다. 괜한 걱정이었다. 내가 좋아하던 식물이 다른 사람에게 가서도 잘 자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연습실에 도착했다.

리스트의 《사랑의 꿈》과 《위안》을 치고, 《Beloved》, 《Falling》, 《If I Could Meet Again》을 연주했다. 아침에는 몸이 아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연주를 하던 중 갑자기 문이 열렸다.

어떤 여자가 들어와 이 방을 예약한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연주를 방해받은 것이 마땅찮았던 나는 예약 현황을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녀는 확인하더니 이 방이 맞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 들어온 것이었다.

순간 머쓱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대방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남의 예약 시간을 침범하고 있었다.


얼마 전 방송에서 임윤찬이 연주회 도중 휴대전화가 울렸을 때 연주를 멈추고 관객에게 이야기했던 일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연주를 방해받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나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오늘은 내가 방해받았다는 사실에 먼저 불쾌해하면서, 내가 잘못했을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은 참 자기중심적이다.

회사에 다닐 때도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태도부터 문제 삼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런데 오늘의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주의 흐름은 이미 끊겼지만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렇게 다섯 시간을 쳤다.


신기한 일이다. 회사에서는 몇 시간만 일해도 지쳤는데, 피아노는 다섯 시간을 쳐도 그만큼의 피로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손과 몸은 피곤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느꼈던 피로와는 달랐다. 회사에서는 일을 마치고 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피아노를 치고 나면 오히려 다른 곡을 더 치고 싶어졌다. 같은 시간을 쓰더라도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피로의 성질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퇴사하기 전에는 회사에 가지 않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퇴사하고 나니 불안은 여전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할지, 새로운 집은 어디에 구해야 할지 고민했다. 회사를 그만두었는데도 마음은 좀처럼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아침에는 통증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외출할 때만 해도 연습실에 가지 말까 생각했다. 자동차 검사소에서는 기다려야 했고, 연습실에서는 예약한 방을 착각하는 실수도 했다. 특별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했다. 연습실에서 나와 밤거리를 달렸다.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신호에 걸려 멈췄다가 다시 출발했다. 아무도 없는 도로를 달리는데 문득 기분이 좋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하루를 마치면 내일 출근할 생각부터 했다. 아무리 좋은 저녁을 보내도 다음 날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이제는 밤늦게까지 피아노를 치고 돌아와도 다음 날 아침에 어디론가 출근할 필요가 없다. 비로소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일 아침에는 다시 몸이 아플 수도 있고, 미래가 불안해질 수도 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오늘 하루 기분이 좋았다고 해서 삶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안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행복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대단한 사건은 없었다. 직업을 얻은 것도 아니고, 돈을 번 것도 아니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어제의 불안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조용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밤에는 굳이 그것을 다시 불러내고 싶지 않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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