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나를 괴롭힌 사람의 정체

by강아


회사를 그만두면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과도 작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 그랬다. 더 이상 상사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고, 부당한 지시를 받고 화를 삭일 일도 없었다. 출근길에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 삶은 상당히 쾌적해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바카라을 몇 장 읽지 못하면 시간을 낭비했다고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날엔 자바카라했다. 아무도 나에게 출근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나는 여전히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무언가를 생산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이 사실을 몰랐다. 처음에는 자유로웠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고, 평일 낮에 도서관이나 영화관에 갈 수 있었다. 점심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밥을 먹을 필요도 없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휴가를 내야 가능했던 일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많아지자 오히려 시간이 아까워졌다. 회사에 다닐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원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견디기 어려웠다. 어느 날은 요리할 기운이 없어 냄비째 밥을 먹었다. 설거지거리를 하나라도 줄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설거지를 하지 못해 개수대에 그릇을 쌓아두었다. 다음 끼니에 사용할 그릇이 없어지자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퇴사했으니 이제 건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쉬었으니 바카라도 잘 읽혀야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하고, 새로운 직업도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회복에도 기한을 정해놓은 셈이었다.


과거에 대한 후회도 나를 괴롭혔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다면 어땠을까. 그때 음악을 공부했더라면, 다른 직업을 선택했더라면, 외국으로 떠났더라면. 지나간 선택들을 하나씩 꺼내 다른 결말을 상상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미래가 끔찍했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고, 내년에도 같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런데 퇴사하고 나니 과거가 괴로워졌다. 이미 지나간 십 년을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회사에 다니느라 하지 못했던 일들이 떠올랐고, 이제 시작하기에는 늦은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누군가 나에게 십 년을 회사에 다니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만두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었지만, 결국 그곳에 남아 있기로 선택한 것도 나였다. 그러니 후회는 곧 자기비난으로 이어졌다. 왜 더 일찍 그만두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오래 참았을까. 왜 내 인생을 그렇게 살았을까. 그 질문들에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반복하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미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피아노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가도 음악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 걱정했다. 글을 쓰고 싶다가도 작가가 될 수 있을지 의심했다. 대학에 다시 갈까 생각하다가 학위를 얻는 데 몇 년을 쓰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선택하든 다른 가능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최선의 선택이란 무엇일까.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을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곳에서 경제적으로 독립했고, 집도 마련했다. 반면 건강을 잃었고, 인간관계에 대한 신뢰도 상당 부분 잃었다. 어떤 선택은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동시에 가져온다. 당시에는 옳았던 선택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과거의 나에게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바카라임까지 묻고 있었다.


회사에서 가장 싫어했던 것은 결과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태도였다. 당시의 상황이나 제약은 고려하지 않고 왜 그렇게 했느냐고 추궁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런데 내가 나에게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회사에서 벗어났지만 회사의 사고방식에서는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불안, 잘못된 선택을 하면 바카라임져야 한다는 두려움. 그런 것들이 몸에 남아 있었다.


바카라을 읽지 못한 날은 바카라을 읽지 못한 날일 뿐이다. 설거지를 미룬 것은 설거지를 미룬 일 그 자체다. 아직 직업을 정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실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사소한 행동 하나를 가지고 나라는 인간 전체를 평가하고 있었다. 퇴사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를 괴롭히던 사람은 회사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익숙해진 평가와 비난의 방식이 내 안에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나 자신을 무조건 좋아하겠다는 결심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 결심도 결국 지켜야 할 과제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 덜 괴롭히고 싶다. 바카라을 읽지 못했다고 무능하다고 단정하지 않고, 아직 미래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조급해하지 않는 것. 회사에서는 싫어하는 사람을 피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적어도 나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바꿀 수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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