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적을 두는 게 맞는 걸까. 요즘은 여기저기 원서를 쓰고 있지만, 사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심정이다. 회사를 그만두면 전문 연주자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다시 학위를 따야 하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대답은 ‘아니오’였다. 오히려 학위가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돈과 시간이 충분하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나는 음악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음악만은 아니다. 요즘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또 하나의 일이 글을 쓰는 것이고, 글을 쓰며 사는 것도 좋은 삶일 것 같았다.
다만 창작의 고통을 그렇게 강렬하게 겪으며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글을 망설이게 한다. 클래식 음악은 이미 존재하는 곡을 내 느낌대로 연주하면 된다. 물론 그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악보가 있다. 글은 다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오늘도 마감이 다가와 어영부영 원고를 제출하기는 했지만, 제출하고 나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내가 이걸 하고 싶은 걸까. 어쩌면 이제 회복했으니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조급증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집 안의 물건을 하나씩 팔고 있다. 오늘은 식탁이 나갔다. 사러 온 사람은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원목 테이블의 크기가 가게에 딱 맞아서 보러 왔다고 했다. 어디에서 카페를 하느냐고 물으니 나도 아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직접 보고 결정해도 되겠느냐고 묻더니, 어차피 오는 김에 인부를 데리고 와야 비용이 덜 든다며 가격을 조금 빼줄 수 있느냐고 했다. 삼만 원을 빼주기로 했다. 한낮에 테이블이 집 밖으로 빠져나갔다. 겨우 2년을 함께한 테이블이지만 나무의 질감이 좋아 아끼던 것이었다. 테이블이 있던 자리가 텅 비자 집은 더 휑뎅그렁해졌고, 동시에 조금 더 커진 것처럼 보였다.
도서관에 갔다가 생리통이 너무 심해 도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요리를 해 먹으니 예전에 동생과 함께 살던 때가 떠올랐다. 애초의 예상보다 이 집에 오래 머물렀던 것은 집에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래 살아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것도 있다. 나는 한곳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원서를 내고 돌아오는 길에는 문득 혼자인 삶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오랫동안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감각이 나를 휘감고 있었다. 만약 그런 삶에 아이까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고 느끼는데 내 시간과 돈과 마음을 아이에게 쏟으며 행복할 수 있었을까. 곁에 있는 사람이 그런 나를 온전히 지지해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데드라인이 생기면 어떻게든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끝내려 한다. 그래서 제출해야 할 에세이가 생기자 마음이 또 조급해졌다. 빨리 써서 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기로 했다. 무엇이든 빨리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어디에 적을 둘 것인지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음악에 둘지, 글에 둘지, 어떤 학교나 직업에 둘지 지금 당장 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아무것도 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직 한 가지 이름으로 나를 고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집에서는 하나씩 물건이 빠져나가고 있다. 식탁이 있던 자리에는 빈 공간이 생겼다. 이상하게도 그 빈자리를 보고 있으면 잃었다는 느낌보다 앞으로 무엇이든 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밖으로 나오니 가을바람이 차가웠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남이 정해놓은 삶이 아니라 내 감각으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