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다. 적어도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괴롭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고, 상사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니까.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것들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행복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퇴사를 해도 천지개벽하진 않았다.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날이 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이 있다. 바카라을 펼쳐도 문장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영화를 보다가도 집중력을 잃는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어도 요리하기가 귀찮아 냄비째 밥을 먹는다. 설거지는 다음 끼니에 사용할 그릇이 없어지면 그제야 한다.
회사에 다닐 때는 이런 무기력의 원인이 전부 회사에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회사가 상당한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다. 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퇴근 후에도 머릿속에서는 상사와 논쟁하고 있었다. 회사는 하루 여덟 시간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시간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월요일 아침이 되어도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평일 오전에 피아노를 치고, 점심에는 혼자 밥을 먹고, 오후에는 도서관에 갔다. 회사에 다닐 때는 휴가를 내야 가능했던 일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자유에도 적응이 필요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시간이 없다고 불평했다. 읽고 싶은 바카라이 많았고, 연습하고 싶은 곡도 많았다. 언젠가 퇴사하면 하루 종일 바카라을 읽고 피아노를 치며 살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시간이 생기자 바카라이 읽히지 않았다. 몇 줄을 읽다가 딴생각을 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바카라을 덮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원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견디기 어려웠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게으르다고 생각했고, 피아노를 충분히 연습하지 못하면 시간을 낭비했다고 느꼈다. 회사에서는 상사가 나를 평가했는데, 퇴사하고 나니 내가 나를 평가하고 있었다.
어쩌면 십 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일 것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주어진 일을 처리하고, 성과를 증명하는 삶을 살았다. 무언가를 해내야만 하루가 의미 있다고 여겼다. 그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는 없는 모양이다. 더 곤란한 것은 과거를 자꾸 돌아본다는 사실이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다면 어땠을까. 그때 음악을 공부했더라면, 다른 직업을 선택했더라면. 지나간 선택들을 하나씩 꺼내 다른 결말을 상상한다. 회사에 다닐 때는 미래가 싫었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고, 내년에도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끔찍했다. 그런데 퇴사하고 나니 미래가 불안해졌다. 매달 들어오던 월급은 사라졌고, 앞으로 살 집도 구해야 한다. 회사에 다닐 때는 돈 때문에 불행했고, 회사를 그만두니 돈 때문에 불안하다.
그렇다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분명하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상사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삶은 상당히 쾌적해졌다. 다만 싫어하는 것이 사라졌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으로 그 자리가 저절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회사가 싫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지만, 회사가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그런 와중에 미용실을 예약했다. 예전의 삶을 버리듯 머리도 잘라내고 싶었다. 테슬컷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결심이 확고했다. 피부과에서 마주친 간호사의 단발이 예뻐 보였고, 목선을 드러낸 단발머리의 여자들을 볼 때마다 나도 저렇게 자르고 싶었다. 그런데 예약 날짜가 다가오자 갑자기 자를 수 없을 것 같았다.
긴 머리로 연출할 수 있는 다양한 스타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쉬웠다. 예전에 머리를 잘랐다가 어중간한 길이를 견디며 다시 기르느라 고생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긴 머리의 인플루언서들이 나오는 영상을 찾아보며 머뭇거렸다. 머리 하나 자르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생각해 보면 머리를 자른다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긴 머리를 유지한다고 해서 과거의 삶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머리 길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퇴사라는 커다란 결정을 내리고도 사소한 선택 앞에서는 여전히 우유부단했다.
연휴 기간에 빌린 바카라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다녀왔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알려주었지만 나는 그 길로 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줄곧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고,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 집을 마련하는 삶. 그 경로에서 벗어나면 실패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길로 가지 않아도 길은 이어졌다.
오히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다른 길과 연결될 뿐이었다.
내가 십 년 동안 다닌 회사에 입사한 것이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을 얻었지만 그곳에서 병을 얻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십 년이 전부 무의미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경제적으로 독립했고, 집을 마련했고, 무엇보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퇴사가 옳은 선택이었는지도 지금 당장 판단할 수는 없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선택에 정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요즘은 바카라이 읽히지 않거나 글이 써지지 않으면 피아노 앞에 앉는다.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를 친다. 잘 안 되는 부분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저 치고 싶어서 친다. 그 시간만큼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해진다. 물론 피아노를 친다고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결정해야 하고, 새로운 집도 구해야 한다. 여전히 불면과 두통이 있고, 어떤 날에는 하루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퇴사했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예민하고, 생각이 많고, 결정을 어려워한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삶이 달라지려면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회사를 그만두고 보니 변화는 훨씬 사소한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단발머리를 한 사람을 보며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 도서관에 가는 길에 내비게이션을 따르지 않은 것. 피아노를 치다가 마음에 드는 소리가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예전에는 그런 감각조차 희미했다.
퇴사를 해도 천지개벽하진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돈은 필요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설거지를 미룰지 모르고, 미용실 예약을 취소할지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퇴사는 나를 단번에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다만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리에 데려다 놓았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길로 가지 않아도 결국 집에 도착했다.
어쩌면 앞으로의 삶도 그럴 것이다.
아직 목적지는 정하지 못했지만, 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