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야 하느니라

byAnima

요즘 접사님 자주 나오시네요.


아니, 요즘 시간에 여유가 생겼어요.


전에는 한 달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했는데 자주 보니 반갑네요.

아니, 전에는 나오려고 해도 딸이 자꾸 애 봐달라고 호출을 해서......

오늘 바람도 살랑 불고 하늘도 맑아서 걷기에 좋고 사진도 잘 나오겠어요.

아니, 오후에는 비소식이 있다고 그래요.


아, 그래요? 우산 안 가져왔는데...... 가져왔어요?

아니, 가지고 왔지요.

아니, 저 사람 옷차림 좀 봐요. 신기하게 입었네!

이것 좀 드세요. 오다가 맛있게 보여서 호두과자 샀어요.


아니, 배불러서 안 먹을래요.


긍정도 ‘아니’ 요, 부정도 ‘아니’다.

강조도 ‘아니’고, 감탄사도 ‘아니’다.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다가 슬슬 거슬리기 시작한다.


접사님, 말할 때마다 접두사처럼 ‘아니’를 붙이는 것 알아요?

아니, 집에서도 딸이 그래요. 엄마, ‘아니’ 좀 붙이지 말라고.

알고 있었구나! 뭐든지 아니라고 하니 말하기가 싫어지는데, 고치려고 해 봤어요?

아니......

또 아니!

...... 안 쓰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

나오면 꼭 내 옆에 붙어서 대화를 하려고 한다.

결혼한 딸 얘기, 사위 얘기, 손주 얘기. 사돈 얘기......

결혼한 딸이 없으니 사위도 없고 손주도 없는 나의 관심을 끌만한 화제가 아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식 자랑, 손주 자랑 하는 사람은 돈 내라고 하는데 나도 벌금 받고 싶다.

그래도 끄덕거리며 들어주니까 뭔가를 자꾸 끄집어내는데, 다 좋다, 다 좋아!

내용에 대한 판단은 나중 일이고 일단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하는 데는 자신이 있으니까.

일단 그 말을 쓰지 않도록 노력해 보라고 했으니 적어도 내 앞에서는 주춤거릴 것이다.

오래전 리더십 지도자 교육을 받을 때 3분 스피치 강의가 있었다.

과제로 원고를 작성하고 녹음해서 가져오라고 했다.

각자 녹음한 것을 차례로 들어 보면서 강사가 고쳐야 할 것을 말해 주고 수정을 거쳐 직접 다시 발표하는 시간이다.

서두는 관심을 끌만한 화제로 시작하라.

짧은 시간이라도 서론, 본론, 결론을 명확히 하라.

군더더기 말을 제거하라.

수강생들이 대체로 두 번째까지는 무난했는데 앞에서 직접 하려니 군더더기 말이 붙었다.

에, 음, 자, 이제 등 쓸데없는 말들이 들어간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그런대로 만족할만한 연설을 한 적도 있지만 다시 하라면 못 한다.

우리가 스피치 전문가도 아니고 바른말 고운말을 정확히 해야 하는 아나운서는 아니지만 대화를 끊고 싶을 만큼 거슬리는 말투는 고쳐야 할 것 같다.


막내딸과 통화할 때 평소처럼 담백하게 말했는데 신경질적이라고, 뚝뚝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걷는데 번거롭게 무슨 전화냐'는 속마음이 들어간 것이다.

표정을 볼 수 없는 유선상이라 더 그렇게 들렸을 게다.

이제는 통화를 끝내고 다시 듣는다.

오해할 수 있는 말투인지, 쓸데없는 감정이 들어간 말투인지, 좀 더 상냥할 수는 없었는지 되짚으며 자동녹음 기능을 켜고 다시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