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 보이는 게 죄냐

byAnima

매일 일정한 시간에 마을버스를 타면 만나는 온라인 게임인이 있다.

늘 깔끔한 복장에 단정한 머리 모양이 기분을 좋게 한다.

나도 누군가의 기분을 좋게 할까 생각하면서 내 옷차림을 살펴본다.


늘 쓰는 모자는 볼캡, 야구모자이다.

야구모자를 쓰는 사람들 보면 학생들 아니면 젊어 보이려고 하는 남자나 빈약한 머리숱을 감추려는 남자들이다.

야구모자를 쓰는 중년의 여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대로 다니거나 360도로 챙이 있는 모자를 쓴다.

긴 머리를 묶어 모자 뒤로 빼는 것이 내 평소 모습이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쓰면서 처음에 택한 것은 챙이 큰 모양이었다.

등산모 같기도 하고 피크닉 모자 같기도 한 모자를 몇 번 쓰고 다니다가 거추장스러워졌다.

막내가 쓰던 볼캡을 써봤는데 나름 괜찮은 것 같아서 계속 쓴다.

누구는 잘 어울린다고도 하고 젊어 보인다고도 한다.

겨울에는 추워서 쓰고, 여름에는 햇빛 때문에 쓰고 봄, 가을에는 바람 때문에 쓴다.

모자걸이에는 총천연색으로 여러 개의 모자가 있어 자기 차례가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모자를 안 쓰고 나가면 허전하다.

사실 모자를 쓰지 않고 가야 할 데가 별로 없다.

맨머리로 가야 할 곳은 친지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뿐인데 속한 단체가 없고 경조사에 참가할 만큼 친한 사람도 없으니 이제 갈 일도 없다.


모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전철 안에서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

조금 고개를 숙이거나 몸을 틀면 시선을 느끼지 않아서 좋다.

거기에 햇빛 차단용 장갑까지 끼고 나가면 중무장이다.

같이 걷는 길벗들 외에는 나처럼 장갑 낀 사람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식사할 때와 간식 먹을 때만 벗는다.


전철에서 다리가 아플 때 노약자석이 세 자리 중 두 자리가 비면 앉을 때가 있다.

차림새는 앉을 사람 같지가 않은데,,,,,하고 아래위로 훑어보는 시선은 무시한다.

두어 정거장 가서 다리의 피로가 풀리면 일어선다.

그때 말을 거는 노인들이 있다.

여자들이면 대꾸를 하는데 남자가 말을 걸면 대꾸하기가 싫다.

어제도 전철에서 한 노인이 장갑을 왜 꼈냐고 물었다.

손에 더러운 것 안 묻고 좋아요.

햇빛에 타지도 않아 좋아요.

계단 올라갈 때 짚다가 가시가 박힌 적이 있어 조심하려고요.


속으로는 이유가 도열하고 있었지만 구구절절 말하지 않았다.

그저 네..... 하고 웃고 말았다.


계속 크로스백을 매고 다니다가 한강 라면을 먹는 날이라 간단한 반찬과 간식 때문에 백팩을 메고 나갔다.

전철에서 안 열리는 문 앞에 서 있는데 중년의 부부가 옆에 있었다. 부부 같다.

남자로서는 드물게 분홍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특이하네! 생각하면서 온라인카지노를 읽고 있는데 자꾸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다.

고개를 획 드니 그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도 거두지 않고 빤히 쳐다본다.

아, 기분 D-!

몇몇이 내리고 자리가 널널해지자 그 남자를 피해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그러다 한 정거장에서 사람이 대거 유입되어 할 수 없이 또 그 사람 옆에 서게 되었다.

등을 지고 모른 척하고 있는데 누가 자꾸 내 백팩 끈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난다.

세상에 이런 일이! 돌아보니 그 남자가 내 백팩 끈을 쥐고 부드럽게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어머! 하고 소리를 최대한 억제하고 놀라니 ‘아, 미안해요. 내 가방끈인 줄 알았어요.’ 이런다.

이게 강아지야, 송아지야?


나를 직접 마사지 못하니 가방끈으로 만족한 것인가?

별 그지 같은 대리추행도 다 있네.

핑크 니트 입은 것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전신이 검은 옷이라 가방만 오렌지색을 택했는데 당신 기분 좋으라고 멘 백팩이냐고, 모처럼 살 빼서 자신감 있게 붙는 옷 입고 볼캡 쓰고 다니니 젊어 보이는 게 죄냐, 젊게 사는 게 죄냐고?

이 핑크 니트 입은 양반아!


[분풀이 사진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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