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의 레이저건, 남편의 파업

by양래교

딸아이가 들어간 Year 4는 학년 전체가 딱 한 반뿐이었다.


여학생 다섯, 남학생 열한 명으로 총 열여섯 명. 한눈에 들어오는 단출한 인원은 교실의 온도를 덥히기엔 좋았지만, 인간관계의 폭은 그만큼 좁았다. 이런 소규모 학급에는 거스르기 힘든 불문율이 있었다. 누군가 생일을 맞으면 몇몇만 쏙 골라 부르는 대신, 반 아이 전원을 초대하는 것이 암묵적인 예의였다.


영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도 초대장 한 장을 받게 되었다. 같은 반 남자아이의 생일파티였다.


영국식 파티 문화를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선물 고르기부터 진땀을 뺐다. 너무 과하면 부담이 되고 너무 약하면 성의가 없어 보일까 고민하다, 무난한 10파운드짜리 레고 한 상자를 골라 정갈하게 포장했다.














어른들의 청취력 평가, 그리고 남편의 빠른 손절


파티 장소는 실내 레이저 태그(Laser Tag) 경기장이었다. 어두컴컴한 미로 속에서 조끼를 입고 광선총을 쏘는 놀이 시설이었는데, 영국의 초등학생들은 보통 이런 전문 시설을 통째로 빌려 파티를 여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영어 한마디 못 하는 나로서는 남편이라는 통역관 없이는 그 문턱을 넘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여섯 살배기 남동생까지 줄줄이 대동하고 온 가족이 출동했다.


아이들이 번쩍이는 레이저 불빛 사이로 흩어지자마자, 로비에 남겨진 부모들의 조용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영국 학부모들은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삼삼오오 모여 자연스럽게 스몰토크(Small talk)를 이어갔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 그 자리는 가벼운 담소가 아니라 시속 150km짜리 영국식 억양이 날아드는 벼락치기 청취력 시험장에 가까웠다.


학부모들은 호의를 담아 쉴 새 없이 말을 건네왔다. 남편은 곤두선 안테나처럼 온 신경을 집중해 고개를 끄덕이며 단어를 조합했고, 나는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걸어둔 채 눈만 끔벅였다. 말은 너무 빨랐고 억양은 제각각이었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야 "아, 아까 그 엄마가 한 말이 그 뜻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무릎을 치기 일쑤였다.


고작 두 시간 남짓한 파티였건만 체감은 스무 시간의 강행군 같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우리 부부는 방전된 배터리처럼 소파 위로 풀썩 쓰러졌다.


녹초가 된 남편은 그 자리에서 바로 백기를 들었다.


"나 다음부터 친구 생일파티는 절대 안 가. 도저히 기 빨려서 못 버티겠어."


나보다 영어도 유창한 사람이 먼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나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이의 교우 관계를 위해 아빠가 조금만 더 버텨주면 좋으련만, 결국 이번에도 총대는 내 몫으로 돌아왔다.


엑티비티 뒤 생일파티하고 피자 먹는 아이들













허허벌판의 엄마, 그리고 뒤늦게 배운 요령


그 뒤로도 두세 번의 초대장이 더 날아들었다. 파티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딸아이의 손을 붙잡고 신신당부를 했다.


"지안아, 제발 엄마 혼자 두지 마. 화장실 갈 때도 엄마 손잡고 가, 알았지?"


하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 그 약속은 산산이 부서졌다. 딸아이는 친구들의 함성 속으로 쏜살같이 뛰어 들어갔고, 나는 넓은 로비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주변 엄마들이 가끔 다가와 눈인사를 건네면,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 번역기 화면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말도 섞지 못하고 자리도 뜨지 못하는 채로 서 있는 내 모습이 참으로 어색하고 멋쩍었다.


훗날 다른 엄마들을 통해 알고 보니, 영국의 초등 고학년 파티는 부모가 굳이 끝까지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는 문화였다. 입구에서 주최 측 부모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끝날 때 데리러 올게요(Drop-off)" 한마디만 남기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 짧은 요령 하나를 몰라, 온몸으로 낯선 공기를 받아내며 진땀 빼는 수업료를 치르고 있었다.















퀘벡에서 온 다정한 손길


가장 선명하게 남은 기억은 학기 말에 열렸던 마지막 생일파티였다.


그날도 나는 무리에 섞이지 못한 채, 벽 쪽에 멀찍이 물러서서 주스 컵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색함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홀로 겉도는 시간은 매번 마음을 작게 주눅 들게 만들었다.


그때, 캐나다 퀘벡에서 온 학부모 하나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따뜻한 미소로 내 팔을 가볍게 이끌더니, 엄마들이 둥글게 모여 서 있는 테이블 한가운데로 나를 데려갔다.


비록 그들의 빠른 대화를 전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혼자 섬처럼 떨어져 있던 나를 무리 안쪽으로 조용히 품어준 그녀의 행동 하나에 가슴 밑바닥부터 뭉클한 온기가 차올랐다.

집으로 돌아와 번역기의 힘을 빌려 그녀에게 짧은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혼자 서 있던 저를 챙겨줘서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정한 답장이 도착했다.


"고마워할 것 없어요. 나도 예전에 프랑스어를 쓰는 캐나다 퀘벡에 살 때, 현지 엄마들 틈바구니에서 똑같은 외로움을 겪었거든요. 벽 쪽에 혼자 서 있는 당신을 보는데 그때 내 모습이 겹쳐 보였어요."

언어는 서툴렀지만, 낯선 환경에서 길을 잃어본 자만이 알아챌 수 있는 마음의 결이 있었다.


타국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고립감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평생 우울이라는 단어와는 담을 쌓고 살았노라 자부하던 내가, 어느새 낯선 공기 속에서 마음의 웅덩이에 빠져 속수무바카라으로 허우적대곤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익숙한 언어와 관계를 모두 덜어낸 채 오롯이 바닥에 서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타인이 건네는 아주 작은 호의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깊이 감동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작은 온기 앞에서 나의 지난날을 가만히 되돌아보게 되었다.


한국에서 매일 앞만 보며 분주하게 살아가던 시절, 바쁘다는 핑계로 내 시선 밖으로 밀려났던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뒤늦게 스쳐 지나갔다. 그때의 나는 과연 홀로 서성이는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따뜻한 곁을 내어준 적이 있었을까.


사람은 딱 자기가 겪어본 결핍의 크기만큼 타인을 이해하고, 직접 넘어져 본 만큼 세상의 온도를 배운다는 말을 이 먼 타국에 와서야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타국에서 부모로 살아가는 외로움을 헤아려 준 누군가의 조용한 눈빛 하나. 그 온기 덕분에 나는 낯선 땅에 다시 한번 발을 단단히 붙이고 내일을 살아낼 힘을 얻고 있었다.











[알아두면 좋은 영국 교육 이야기] 영국 초등 생일파티 실전 매너


1. 선물은 10~15파운드 안팎이 매너

영국 초등학교의 생일파티 선물은 과하지 않은 선에서 준비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10파운드(약 1만 7천 원) 내외의 작은 레고 세트나 문구류, 서점(Waterstones) 바우처가 무난하며, 겉면에 아이가 직접 축하 메시지를 적은 카드(Birthday Card)를 테이프로 붙여 건네는 것이 기본 매너입니다.


2. 고학년(Year 4 이상)의 정석, '드롭오프(Drop-off)'

* Year 3 이하: 안전상의 이유로 부모가 파티장에 함께 머물며 가벼운 차를 마십니다.

* Year 4 이상: 파티 입구에서 호스트 부모에게 가벼운 눈인사와 연락처를 남긴 뒤,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오는 **'드롭오프(Drop-off)'**가 자연스럽게 통용됩니다. 영어가 서툴러 스몰토크가 부담스럽다면, "Can I drop her off and collect her at 4?" 한 문장으로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비워도 결코 무례가 아닙니다.


3. 감사의 표시, '파티 백(Party Bag)'

파티가 끝날 무렵 호스트 부모는 참석한 아이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작은 젤리와 간식, 장난감이 담긴 파티 백(Party Bag)을 쥐여줍니다. 집에 도착한 뒤 주최 부모에게 *"Thank you for having her! She had a wonderful time."*이라는 짧은 감사 문자를 남기면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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