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한 그루 그렸다. 커다란 나무다. 그 옆으로 멀리 바다를 그리고, 그 위에 하늘을 그렸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그린 것이 아니라 첫 톤을 깔아 놓은 것이다. 나무는 초록인지 갈색인지 모를 어중간한 덩어리이고, 바다는 푸른 기운만 도는 면이고, 하늘은 푸름을 많이 섞은 옅은 색이다. 디테일은 하나도 없다. 잎사귀 한 장도, 파도 한 줄도, 구름 한 조각도 없다. 누가 보면 아직 아무것도 안 했네 하고 지나갈 만한 상태다.
그런데 나는 자꾸 쳐다본다. 작업대에서 한 발짝 물러나 팔짱을 끼고 본다. 캔버스는 별로 크지 않다. 두 팔로 안으면 팔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다. 그런데 이상하지, 그 안의 나무는 한없이 크고 바다는 한없이 멀고 하늘은 끝이 없다. 자로 재면 몇 센티미터짜리 세계인데 내 눈에는 도무지 그렇게 보이지가 않는다.
이유를 안다. 나는 처음부터 큰 나무를 의식하며 그렸다. 붓을 들기 전부터 머릿속에 이미 커다란 나무가 서 있었다. 그 나무가 얼마나 우람한지, 그늘이 얼마나 넓은지, 그 옆에서 사람이 얼마나 작아지는지를 생각하면서 칠했다. 그러니까 내가 칠한 것은 물감이 아니라 크기에 대한 마음이었던 셈이다. 마음이 먼저 커져 버렸고, 캔버스는 그 마음을 담느라 갑자기 넓어졌다.
시작을 좋아한다. 시작하는 사람의 눈에는 뭐든 다 가능해 보인다. 아직 아무것도 틀리지 않았고, 아직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톤은 가능성으로만 이루어진 색이다. 거기에 뭐든 올릴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물론 안다. 이 나무 위에 이제부터 잎을 하나하나 올려야 한다는 걸.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시작의 마법이 풀릴 것이다. 디테일이 생기면 크기는 구체적인 것이 되고, 구체적인 것은 대개 처음의 상상보다 작다. 나뭇잎을 열 장쯤 그리고 나면 나는 아마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어, 생각보다 별로 안 크네. 그때의 나무는 더 정확하고 더 진짜일 테지만, 지금처럼 한없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이러고 있기로 한다. 붓을 씻어 놓고, 차를 한 잔 끓여 와서, 아직 첫 톤뿐인 나무와 바다와 하늘 앞에 앉아 있는다. 이 순간의 크기를 눈에 담아 두고 싶다. 나중에 그림이 완성되어 내가 조금 실망하게 되더라도, 처음에 이만큼 커 보였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싶다. 작은 캔버스 앞에서 한없이 커졌던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고.
내일은 잎을 그릴 것이다. 오늘은 그냥,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