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기억의 가계도

by에티텔
어린 기억.jpg이효연, 큰 구두, 아사에 유채, 45.5x45.5cm, 2026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매 순간 그것을 품고 살아간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떤 날에는, 아주 우연한 계기로 그 시작의 순간이 찾아와 처음 마주했던 시절의 아득한 설렘을 가만히 복원해내곤 한다.


오늘 아침, 나를 그 아득함 속으로 불러들인 것은 영화 <빌리티스>의 주제가였다. 그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을 무렵 나는 겨우 중학생이었다. 어느 어두운 극장 안에서 다른 영화를 기다리던 중, Screen 위로 펼쳐진 광고 영상 속에서 아이들이 빛을 받으며 뛰어놀던 장면과 그 위로 흐르던 선율을 들었던 기억이 투명하게 떠오른다. 연령 제한이 걸린 영화였지만, 그때 느꼈던 온전한 설렘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던 어린 나는 나이에 비해 조금 조숙해 보이던 얼굴에 언니의 화장품을 슬쩍 찍어 바르고 무작정 극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서사를 온전히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결국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한 채 서둘러 상영관을 나왔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그 순간의 음악과 잔상은 내 안에 온전히 찍혀 남았다. 아무런 겹겹의 필터도 거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어떤 대상에 흠뻑 젖어들었던 최초의 무아(無我)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이후 시간이 흐르고 생각의 결이 단단해지며 나 자신과 스스로의 취향을 점차 알아가는 동안, 나는 그 영화의 존재를 오래도록 잊고 살았다. 훗날 만난 <화양연화>나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감각들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이미 스물이라는 나이를 넘긴 뒤였기에 온몸의 구석구석을 떨리게 만들었던 그 정직하고 생생했던 감촉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무심코 재생한 어느 아트디렉터의 인터뷰 사이로 그 잊힌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홀린 듯 그 곡을 다시 찾아 틀어놓은 채 아침의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붓끝을 움직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토록 매료되었던 그 영상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때 내 마음에 깊게 각인된 그 단 하나의 인상을 평생에 걸쳐 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취향의 아득한 뿌리를 찾아 그 가계도의 가장 깊은 곳으로 슬며시 올라간다면, 아마 그 끝에는 그날 보았던 <빌리티스>의 짧은 광고 영상이 정적 속에 놓여 있을 것 같다.


지금도 화폭 위에 그려나가는 작업 속에서, 나는 여전히 미지의 어떤 황홀경과 그 아슬아슬한 균형점을 찾아 헤매고 있다. 되돌아보면 내가 진정으로 반했던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빛과 그 빛이 만들어낸 얼룩으로 수놓아진 환상적인 공간, 그리고 그 속에 머물던 풍경들이었다. 시간을 넘어 여전히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 원초적인 힘은, 결국 언젠가 보았던 그 아름다운 장면을 다시 한번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그 투명한 열망에 다름 아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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