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네 이놈! 돌파감염

byMy Way

아들이 대학 2학년이 된 그해는 코로나가 조금씩 잦아들며 일상이 회복되던 시기였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예방접종까지 끝내고 개인위생에 신경 쓰던 중이었죠. 그런데 개강을 약 1주일 앞둔 어느 날, 한밤중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던가요. 밤늦게 걸려온 아들의 전화는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습니다.


“어머, 이 시간에 웬일?”


심장이 두근두근거렸지만, 최대한 차분하고 반갑게 아들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 코로나 걸린 것 같아요.”

“엥?”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들의 목소리는 ‘코로나’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돌파감염 소식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던 터라 어찌 된 영문인지, 몸은 괜찮은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아들은 개강을 앞두고 동아리 연습이 한창이었습니다. 카이스트 응원단 ELKA(엘카)는 학교의 굵직한 행사에 참여하기 때문에 방학에도 입학식과 새내기 응원대제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코로나 시국임을 감안하여 연습도 마스크를 끼고 하고 함께 식사하는 것도 자제하며 신경을 쓰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연습하던 선배가 코로나에 걸린 겁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모든 부원들이 가까운 병원으로 가 신속항원검사를 받았고, 제 아들을 포함한 두 명에게서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몸은 좀 어때?”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들은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정말로 괜찮은 건지, 워낙 잘 참는 아이라 참을 만하다는 건지, 아니면 개강을 앞두고 일어난 이 상황이 몸보다 더 불편해서 그러는 건지 통화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교내 응원단의 코로나 집단(?) 확진으로 학교 코로나대바카라반이 전면에 나서면서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만 그 방법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자차를 이용해 자택으로 이동한 후 격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대신 함께 동거하는 사람들도 수동 감시자로 분류되어 격리했다가 격리 해제 시 PCR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두 번째는 학교에서 마련한 격리센터에서 격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식사는 제공되고 비상약 정도는 갖추고 있지만, 택배 등 외부와의 접촉 없이 독방에서 1주일간 자가격리 후 PCR 검사 없이 바로 해제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장에라도 아들을 집에 데리고 오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열심히 머리를 굴렸습니다. 일단 집안을 소독하고, 현관을 기점으로 아들 방과 맞은편 화장실을 격리실로 만들기 위한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데리러 대전에 올라갈 시점에 대해 남편과 의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정부 방역 지침보다 더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던 남편의 온라인 게임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아들이 집에 내려오는 순간 남편의 일상도 멈출 수밖에 없었죠. 함께 생활하다 돌파감염이 된 게 아닌 이상, 가장 합리적인 것은 아들이 학교에서 격리되는 두 번째 방안이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너무 잘 알겠는데, 그날 밤 속상한 마음에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코로나, 네 이놈!’


아침에 일어나 아들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했습니다.


“미안해, 아들.”

“괜찮아요, 어쩔 수 없죠.”


쿨하게 받아들이는 아들과 달리, 저는 내내 마음이 쓰였습니다. 별다른 내색 없이 출근하는 남편도 뒷모습이 유독 축 처져 보였습니다. 아들바라기 부부는 그렇게 아들의 격리를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은 방학 동안 지내던 기숙사에서 나와 자가격리 기숙사로 이동했습니다. 자신이 방을 나서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방역팀이 그곳을 구석구석 방역하는 모습을 보며 뭔가 대단한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들에게는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말 그대로 무증상 감염이었습니다. 몸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증상 없이 그저 격리만 하다 끝나버렸습니다.


그 일주일 남짓, 아들은 낯선 기숙사에서 한 발짝도 나가질 못하고 오롯이 갇혀 있었습니다. 처음엔 잠도 실컷 자고 유튜브도 실컷 보며 즐기면 되겠다던 아들도 사흘, 나흘 시간이 흐르자 점점 갑갑해했습니다. 함께 확진받은 친구는 실제로 아팠지만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방학 마지막 주에 계획했던 많은 일들이 이 변수로 인해 어그러져 마음도 불편한 듯했습니다.


몸 상태를 걱정하며 매일 안부를 묻던 저희는 이제 아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바빴던 일상에 잠시 쉬어가라는 하늘의 뜻이었다고, 이 기회에 기력도 충전하고 좋은 것 같다면서 말이죠.

엄마 아빠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받은 아들은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으며 다시 여유를 찾았습니다. 다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더군요.


“하루 세끼만 나와요. 배고파요. 살 빠질 것 같아요.”


집에 있었다면 영양 가득한 밥상에 간식까지 듬뿍 챙겨줬겠죠? 너무나 웃픈 투덜거림을 끝으로 아들은 무사히 격리 해제되었습니다.


아들을 키우면서 수많은 변수들이 있었지만, 이때처럼 저희가 무언가를 해줄 수 없는 일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들 또한 이런 순간들의 연속일 거라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애잔해집니다.


아들을 데리고 오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 괜찮다고, 잘 지나갈 거라고 말해 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그 경험은 두고두고 제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아들이 자라는 만큼, 부모의 마음도 함께 자라야 한다는 것을 배운 시간으로 말입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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