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네가 결정해

byMy Way

만 18세.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대학 2학년이 된 아들에게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살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 사이를 오갔지만, 이렇게까지 오래 고민해야 하는 선택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공을 선택하는 일이었습니다.


카이스트는 무학과로 입학합니다. 새내기과정학부에 소속되어 1년을 보내고 2학년 때 학점이나 다른 조건 없이 오롯이 자신의 관심과 적성만으로 학과를 선택해 흩어집니다. 다만 부전공, 복수전공, 심화전공 등을 추가로 선택해야 합니다.


아들은 1학년을 보내며 프로그래밍에 푹 빠졌습니다. 한창 ‘개발자 붐’이 불던 시기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전산학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비춘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전산학과를 생각 중이에요.”

“왜?”

“프로그래밍하는 것도 재미있고, AI 쪽에도 관심이 있어서요.”

“그렇다면 전기 및 전자공학부가 어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둘 다 다룰 수 있으면서 네임밸류도 있고. 개발자 붐은 언제든 사그라들 수 있지만, 전자과에서 배운 과목들은 넓게 사용할 수 있거든. AI든, 프로그래밍이든 네가 좋아하는 것도 물론 다 할 수 있고.”


아들은 고민에 빠진 듯했습니다. 직업의 다양성까지 고려한 아빠의 조언에 처음 가졌던 마음이 흔들린 듯했습니다. 남편은 언제나처럼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고 최종 결정은 OO이가 해. 살다 보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을 때가 많아. 하나를 선택하면 또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할 수도 있어. 신중하게 잘 생각해 보고 결정되면 알려줘. 궁금하니까.”


그렇게 결정권을 넘겨받은 아들은 고민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집에 내려온 날, 저희에게 자신의 결정을 알려주었습니다.


“전기 및 전자공학부를 가기로 했어요. 대신 전산학과는 복수 전공하려고요.”

“뭐?”

재미있는 것과 좋은 것 사이에서 고민하던 아들은 저희의 예상을 깨고 두 가지를 모두 선택했습니다. 아들이 포기한 것은 ‘시간’, 자신의 여유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제 아들과 같은 선택을 하는 카이스트생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형과 두 개를 복수 전공하기보다는 대형과와 소형과를 선택해 균형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둘 다 하는 건 힘들지 않겠어?”

“그렇게 선택한 이유는?”


역시나 저희 부부의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아들은 이제 엄마의 감성과 아빠의 이성을 아우르는 대답을 합니다.


“학점 중복 인정 가능한 과목들이 많아서 괜찮아요. 주전공은 전자과지만 전산과를 복수 전공하면서 제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AI 분야를 더 공부해 볼 생각이에요.”


하지만 아들의 대답은 또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왜냐하면 복수전공은 5년까지 학교를 다닐 수 있거든요. 저는 아들이 카이스트에 입학한 뒤 과학고 이야기를 올리던 블로그를 카이스트로까지 확장하며 정보를 모으던 터라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남편은 금시초문이었습니다.


“5년이라고? 카이스트는 4년 만에 졸업하는 대학 아니야?”


카이스트 홈페이지까지 뒤지며 5년 졸업에 의구심을 보이는 남편에게 저는 아들을 두둔하며 한마디 했습니다.


“복수전공이잖아. 졸업까지 들어야 할 학점이 많아서 학교에서도 복수전공은 5년까지 등록금을 지원해 준다고.”


그런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이번에는 남편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복수전공이지만 4년 만에 졸업하면 안 돼?”


저는 솔직히 어이가 없는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복수전공으로 5년 만에 졸업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인 데다가 학교에서는 등록금도 내준다고 하고, 아들 역시 1년 일찍 대학에 입학했으니 손해 될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아들의 눈빛이 반짝하더니 변했습니다.


“그거, 괜찮은데요?”


아들이 어릴 때는 결정의 몫 대부분이 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들에게 ‘선택권’을 많이 넘겨주려 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범위와 기준이 명확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제한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에 선택권을 준 적은 없습니다. ‘이를 닦을래, 말래’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번만 봐줄게’도 없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허용한 것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중에서 원하는 바카라을 두 권 골라봐’ 같은 종류였죠. 바카라, 옷 그런 것들 중에서 말이죠.


그런 제 교육이 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아들은 혼자 결정하기에 앞서 저희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 조언을 토대로 나름의 점검을 한 후 최종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어른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런 아들의 결정을 번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부모 눈에 아쉬운 결정도 있지만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내린 것이라는 걸 믿습니다. 아이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면, 그 선택을 믿어주는 것까지가 부모의 몫일 테니까요.


그렇게 저희는 아들과 함께 어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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