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꽤 고지식한 아이였습니다. 학생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나름의 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커피 역시 학생이 마시면 안 된다는 제 기준 때문에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물론 평소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외수축’이라는 증상 때문에 멀리 했던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에 가서는 쏟아지는 연구과제와 프로젝트 때문에 커피를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쌉싸름하고 고소한 커피에 맛을 들여 지금은 하루에 한 잔 이상 꼭 마셔야 하는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아들도 저를 닮아 ‘FM’ 같은 구석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하루 종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멋을 부리기에 저와는 약간 다를지도 모른다고 상상했지만 의외로 꽉 막힌 구석이 있었습니다. 헤어스타일은 늘 단정해야 했고, 너무 화려한 색감의 옷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유행보다는 자기 기준이 먼저인 아이였습니다. 커피 역시 그런 부류에 속했습니다.
과학고에 다닐 당시, 친구들이 잠을 쫓기 위해 커피 등의 카페인을 섭취할 때 아들은 굳이 마셔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며 잠이 오면 짧게라도 자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가끔은 초콜릿과 콜라 정도는 먹는 듯했지만,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워낙 카페 문화가 발달되어 있어 대학 들어가면 마시려나 했지만, 대학원생인 지금도 커피는 마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카페는 자주 가는 것 같아, 가서 뭘 먹나 궁금해졌습니다.
“카페 가면, 넌 뭘 마셔?”
“저는 다른 음료를 마시죠. 녹차 같은 티를 마시기도 하고.”
그러면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습니다.
하루는 선배들이 커피를 사 준다고 해서 카페에 따라가 언제나처럼 녹차를 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그곳은 티백이 아니라 녹차를 우려낼 수 있는 다기를 주는 곳이었습니다. 선배들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동안 아들은 다기를 이용해 녹차를 여러 잔 우려내 마시면서 선배들의 대화를 경청했습니다. 선배들의 커피잔은 순식간에 비워졌지만, 아들은 느긋하게 따뜻한 차를 마셨고, 그들 눈에는 그런 후배가 신기했던 것 같습니다. 대화 중간중간 선배들의 시선이 천천히 녹차를 홀짝이는 아들에게 향했고, 그럴 때마다 모두가 웃음 지었다고 합니다.
“머쓱하지 않았어?”
“딱히.”
그러고 보니 아들의 취향은 이렇게 확고한 면이 있었습니다. 특히 입맛에 관한 한 더욱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10년간 한 브랜드의 딱 한 종류의 피자만 먹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피자를 먹는 날엔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늘 점심은 피자 먹자.”
“맨날 먹던 거.”
생일에도, 가족 모임에도, 외가 식구들과 모였을 때도 늘 같은 피자였습니다. 덕분에 온 집안 식구들이 아들의 취향에 맞춰 주구장창 같은 피자를 먹었지만, 그건 가족이었으니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 살짝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의 걱정과 달리 아들은 자라면서 남의 취향을 존중하며 한발 뒤로 물러서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이 맛있다고 권하는 걸 먹어보기도 하며 잘 적응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변하지 않고 고수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파리바게트에서 파는 초코케이크, 그것도 냉동실에서 꽝꽝 얼린 것입니다. 한 달에 한번 아들이 집에 내려오면 꼭 이걸 찾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내려오는 날이면 파리바게트에 들러 초코케이크를 사놓는 것이 루틴이 되었습니다. 가끔 동네에 초코케이크가 품절되면 배달 어플을 켜고 근처를 뒤집니다. 다른 간식은 없어도 괜찮지만 이 케이크만큼은 꼭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좋아하니 사놓긴 하는데, 다른 단 음식은 먹지 않는 터라 왜 좋아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게 왜 좋아?”
“깔끔하니까요.”
“깔끔하다고?”
저희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초코케이크가 깔끔하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단맛이 오래 남지 않고, 먹고 난 뒤에 입안이 텁텁하지 않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얼린 초코케이크, 특히 파리바게트의 얼린 초코케이크는 확실히 그런 맛이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아들은 자신만의 입맛을 고수합니다. 육류, 생선, 해물, 채소류 가리지 않고 소스를 멀리하며 음식 본연의 맛을 즐깁니다. 이유식 시기에 간 없이 먹인 것이 아직까지 영향이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남들이 모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혼자 녹차를 우려 마셔도 머쓱해하지 않는 아이. 어쩌면 취향이란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능력이 아니라 남의 시선보다 자신의 기준을 믿는 용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아들의 취향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합니다. 가끔은 아들의 확고한 취향이 제 눈에는 편식처럼 보이기도, 지나친 고집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바라봅니다.
굳이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 이제는 그것 또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힘이라는 것을 아들에게서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