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주에 한번, 아들이 집에 내려오는 금요일은 대청소 날입니다. 매일 청소기를 밀며 아들 방에 들락거리지만 텅 비어 있는 방에 오래 머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내려오기 전 날엔 아들 방에 오래 머물곤 합니다. 멈춰있던 아들의 방에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거든요.
달력을 한 장 넘기고, 먼지를 닦아내고, 환기를 하며 방안에도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뽀송뽀송하게 방바닥까지 닦고 나면 다음 할 일은 냉장고를 채우고 음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들이 즐겨 먹는 과일과 먹거리들은 전날 이미 주문을 끝내놓았습니다. 배달이 오면 곧장 밑반찬을 만듭니다. 제일 좋아하는 건 ‘오이’라서 오이 삼합을 준비합니다. 생오이, 오이김치, 오이냉국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수행합니다.
퇴근한 남편이 평소보다 정리정돈이 잘 된 집을 보며 이죽거립니다.
“OO이 온다고, 청소했나 봐.”
“꼭 그런 건 아니고. 나의 금요일 루틴이야.”
“냉장고가 가득이네.”
“주말에 먹으려고.”
남편의 이죽거림은 계속되지만 전혀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곧 남편에게 제가 이죽거릴 차례거든요.
“OO이 먹을 초코케이크가 없네.”
집돌이 남편을 벌떡 일으켜 세우는 마법 같은 말입니다. 남편은 더워도, 추워도,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아들에게 줄 ‘초코케이크’를 사러 나갑니다. 그때가 기회입니다.
"애를 강하게 키워야지."
평소 제가 아들의 실수를 감싸면 남편이 늘 하던 말입니다. 자신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남편은 피식 웃으며 현관문을 나섭니다.
아들이 출발했다는 문자를 보내오면 저는 아들 방에 가서 공기청정기를 돌리고 에어컨 혹은 보일러를 켜며 방안 온도를 맞춰둡니다. 아들이 방에 들어섰을 때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에, 빈 방일 때는 꺼 두었던 것들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비로소 아들 방의 생태계가 완전히 살아납니다.
대전에서 기차로 40분 남짓. 곧 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남편은 TV를 보며 전혀 관심 없는 척 하지만, 아닌 걸 압니다. 띠 띠 띠띠띠.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OO이다, OO이!”라며 현관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만으로도 집안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아들이 현관에 마중 나온 엄마 아빠와 눈을 맞추며 들어서는 순간, 무거운 짐가방은 이미 남편 손에 들려 있습니다. 사실 아들이 캐리어를 신경 쓰지 못한 건 저희 때문입니다. 현관에서부터 코앞의 아들 방에 들어가기까지 엄마 아빠와 포옹도 해야 하고, 안색을 살피는 엄마와 눈도 맞춰야 하고, 그새를 못 참고 별일 없었냐고 묻는 아빠의 물음에 대답해야 합니다. 그 북적거림에 시종일관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저희와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 캐리어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현관에서 대기하기도 합니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자정을 넘을 때도 많습니다. 그날 일정을 다 소화하고 오는 터라 대전에서 막차를 타고 내려와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집에 도착하면 잠자기 전 잠시라도 식탁에 앉아 간식을 먹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챙겨주는 게 맞나 싶긴 하지만, ‘카이스트 시간’에 익숙해져 가는 아들은 밤이 늦어도 배고픔을 참지 못합니다. 덩달아 먹는 남편에게 눈치를 주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가벼운 야식을 즐깁니다.
3~4주 동안 매일 같이 단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지만 아들의 세세한 하루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들의 일상이 궁금합니다. 다음 날 일정이 없다면 아마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겠지만, 아침을 기약하며 새벽 한두 시쯤 각자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잡니다.
복도 끝 아들 방에 불이 꺼지면, 저는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그저 아들이 왔고, 자기 방에 들어가 잘 뿐인데도 집이 가득 찬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밤 못다 한 이야기는 아침을 먹으면서 하고, 뒤이어 피부과, 치과, 헤어숍 방문 등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결합니다. 가끔은 가까이 사시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나머지 시간은 자유입니다. 아들은 대부분 자기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집에서만이라도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냥 둡니다. 식사나 간식 먹을 때 나와 한두 시간씩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남편은 그런 아들을 그냥 두지 못합니다. 물론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복도 끝 아들 방 문 앞에서 "들어오지 마세요"라는 거절을 듣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돌아오는 모습도 봅니다. 그 모습이 너무 우스우면서도 안쓰럽지만, 아들의 시간도 소중하니까요.
금요일 밤늦게 집에 와서 일요일 오후면 올라가는, 1박 2일 같은 2박 3일을 보내고 아들이 돌아가면 대전에 잘 도착했다는 문자가 올 때까지 집안 공기가 축 쳐지는 것 같습니다. 후유증이 며칠 갑니다.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간 아들의 이부자리를 세탁하고 청소기를 돌리며 괜히 아들 방을 기웃거리게 됩니다. 다시 조용해진 집은 금세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그 시간이 참 쓸쓸합니다.
앞으로도 쭉 이럴 거라는 걸 알지만, 비어 있던 방에 다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부모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