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쳐 버린 성년의 날

byMy Way

아들의 첫 자전거는 파란색, 주황색, 노란색이 알록달록 칠해진 세발자전거였습니다. 친할머니께서 사주신 자전거로, 어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긴 손잡이가 달려 있었죠. 아들은 그 자전거를 실내에서 주로 타고 다녔습니다.

실외에서 탔던, 온전히 ‘자전거’로 기억될 만한 것은 보조 바퀴가 달린 빨간색 네발자전거였습니다. 그 자전거를 두발자전거로 바꿔 탈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두발자전거를 배우는 과정이 남들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네발자전거에 익숙해져 가는 아들에게 두발자전거를 타라고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스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아주 조금씩 보조 바퀴의 위치만 바꿔주었습니다. 아들은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채, 보조 바퀴가 달려 있지만 무용지물인 네발자전거 모습의 두발자전거로 중심 잡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아들 곁에서 천천히 스스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왔습니다.


그랬던 아들이 이제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만 18세. 대학 1학년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당장 운전할 일은 없겠지만, 면허를 딸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미리 따 두는 게 좋겠다는 저희의 권유에 아들은 방학 동안 운전면허 시험을 봤습니다.

그 권유에는 방학만큼은 집에서 보내길 바라는 저희의 작은 사심도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대전에서 방학을 보내며 순식간에 운전면허를 따버렸습니다. 필기시험부터 기능시험, 도로주행까지 일사천리로 끝내는 모습을 보며, 운동신경이 둔한 엄마를 닮지 않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저희의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이 내심 머쓱했습니다.


그뿐만 아니었습니다. 만 18세가 되니 또 다른 변화들이 찾아왔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병무청에서 날아온 신검 통지서였습니다. 통지서를 보는 순간, ‘군대’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 와닿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제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신검은 적어도 집에 내려와 받을 줄 알았는데, 아들은 혼자 대전에서 받아버렸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새벽같이 기숙사를 나서는 아들의 연락을 받고 보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허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아들에게는 해치워야 하는 일정 중 하나였겠지만, 저는 아들이 어른이 되어 가는 순간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함께하고 싶었나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어른이 되어가는 아들을 보며, 한 슬롯의 일원으로 하나씩 인정받아 가는 모습이 참 대견했습니다.


그런데 그즈음 제가 매우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은 대학 2학년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제야 대학 신입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5월쯤,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던 학부모 단톡방에 ‘성년의 날’ 인증샷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장미꽃과 향수를 들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는 순간, 심장이 벌렁거렸습니다.


‘성년의 날’ 자체를 잊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아직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당시에는 2학년 무렵 성년의 날을 기념했던 기억이 있었고, 무엇보다 조기졸업으로 친구들보다 먼저 대학에 들어간 아들은 아직 만 18세였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내년쯤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제야 알았습니다. 성인 기준이 만 19세로 바뀌면서 요즘 대학은 대부분 1학년때 성년의 날을 챙긴다는 것을요.


“혹시, 학교에서 성년의 날 행사 했어?”

“네.”

“어머나!”


아들은 덤덤하게 대답했고, 저는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성년의 날을 그냥 지나쳐버리다니!

성년의 날이 되면 “정말 어른이 되었구나!”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 같아 너무 아쉬웠습니다. 물론 진짜 성인이 되는 날은 몇 개월 뒤라 아직 기회가 남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계속 그 순간을 곱씹으며 후회가 되었습니다.


성년의 날을 놓친 아쉬움을 대신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저는 아들이 태어난 날을 세기 시작했습니다. 7,000일이 되던 날, 아들에게 70,000원의 용돈을 건넸습니다. 축하의 말과 함께 건넨 그 서프라이즈 용돈은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아들의 칠천 번째 하루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제는 8,000일도 지나, 8,300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날짜를 세며, 놓쳐버린 성년의 날 대신 아들의 하루하루를 더 소중히 기억하려 합니다.


보조바퀴를 떼며 두발자전거를 홀로 타던 그 시간에서부터, 운전면허를 따고 혼자 신검을 받고, 그리고 저희가 미처 챙기지 못한 성년의 날까지 모두 아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길 위의 한 걸음이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삶 속에서 스며들 듯 조금씩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밀리의 서재 '밀리로드'에도 진출해 있습니다.

작가님들의 밀어주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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