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의 시작

byMy Way

아이가 과학고를 다니는 동안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리 큰 화제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선생님들께서는 관심을 보이셨습니다만,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원 정보 하나 보탤 말이 없는 처지라 저는 늘 대화를 듣는 입장이었습니다.


학부모 운영위원으로서 예비 신입생 학부모를 상담해 줄 기회도 있었지만, 제 역할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선행 여부와 학원 정보를 묻는 예비 학부모에게 딱히 해줄 말이 없었으니까요. 간혹 “아이가 선행이 되어 있지 않은데, 과학고에 들어올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그럼요, 제 아들이 그런 케이스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믿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아이가 조기졸업을 하고 카이스트에 합격하자, 그 의심은 오히려 더 짙은 호기심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자, 이제 합격도 했으니 털어놓아 보시죠. 어떤 비밀 수업을 들었는지.”

아이가 입시를 치르던 그해, 갓바위까지 동행하며 나름 절친이라 여겼던 엄마들조차 사실은 사교육 없이 과학고 생활을 했다는 제 말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저는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결국 해냈고, 저는 그 과정과 결과를 제가 운영하던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과학고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던 시절,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는 심정으로 시작한 제 블로그는 그렇게 ‘사교육 없이 과학고(에서 살아남기)’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후배 엄마들뿐만 아니라 부산, 창원, 강원도 지역의 과학고 학부모들에게서까지 연락이 올 정도였습니다. 제 블로그가 유명했다기보다는 그만큼 ‘과학고’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블로그 운영 초기에도 저를 만나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시긴 했습니다. 과학고 생활이 너무 막막한 나머지 한해라도 먼저 학교에 들어간 선배 엄마의 조언을 듣고 싶다는 요청이었습니다. 하지만 만남은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왜냐하면 뭐 하나 이룬 것도 없는 상태에서 고군분투 중인 아들을 앞에 두고 전면에 나선다는 것이 꺼려졌기 때문입니다. 대신 궁금한 점에 대해 이메일 상담 정도는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젠 카이스트 입학이라는 좋은 결과까지 나오자, 후배 엄마들의 관심이 더욱 쏠렸고, 연락이 쏟아졌습니다.


“이젠 이런 연락에 나서도 되지 않을까?”

내향인인 저의 성향을 잘 알던 남편은 망설이는 저에게 적극적으로 상담창구를 열어보라며 등을 떠밀었습니다. 하지만 곧 소통 방식의 문제로 인해 벽에 부딪혔습니다. 아이들의 고민이 학부모를 통해 제게 전달되고, 제가 모르는 부분은 다시 아들에게 물어 학부모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번거로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각 관계로는 제대로 된 상담이 불가능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아들, 엄마 블로그 이웃들을 위해 재능기부 한번 해줄래?”

“좋아요.”


제가 과학고 입시와 일상에 대한 에피소드를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아들은 후배들에게 상담하는 재능기부에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대신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닌지라 아들의 일정을 최대한 고려하여 상담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연락처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후배들이 신청했습니다. 학교생활의 노하우부터 공부법까지, 후배들의 연락에 아들은 꽤 진지하게 임했습니다. 가끔은 아들이 아닌 저와 통화를 원하는 학부모도 계셨습니다. 대부분 신입생 학부모였는데, 아직 시작하지 않은 과학고 생활이 불안하여 심리적 안정을 얻고 싶은 마음에 제게 연락을 하시는 듯했습니다. 아이들보다 더 불안해하는 그분들을 보며 저 또한 같은 경험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성심성의껏 이야기를 들어드렸습니다. 대부분 긴 통화를 마칠 즈음에는 조금은 마음을 놓는 듯했고, 저는 뿌듯했습니다.


카이스트 입학 전 방학 동안은 아들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 상담에 충실히 임했습니다. 대부분의 상담은 1회성으로 끝났지만 간혹 연락이 이어져 바쁜 학기 중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아들은 계속된 후배들의 연락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제가 너무 판을 키워버렸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후배들과의 대화에 보람을 느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재능기부 형식으로 시작한 후배와의 상담이 어느 순간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법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직접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입니다.


‘사교육 없이 공부해 온 아이가 과외를 한다?’


저희 가족은 예상치 못한 딜레마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


아들은 그런 고민에 빠진 듯했고, 저희 부부는 다른 관점에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사교육 없이 과학고’ 합격 및 졸업을 외치던 블로그의 정체성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는 순간 모순처럼 느껴질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죠.


결과적으로, 아들은 후배의 간곡한 러브콜을 수락했습니다.

대학생으로 처음 맞은 여름방학 때 아들의 첫 과외가 시작되었습니다. 사교육 없이 공부해 온 아이의 사교육 입성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밀리의 서재' 밀리로드에도 동시 연재중입니다.


https://www.millie.co.kr/v4/millieRoad/38141


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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