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대학생의 탄생

byMy Way

카이스트 합격 소식에 온 가족이 들떠 있던 그때, 정작 아들은 등록을 미루고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포스텍과 카이스트 둘 중, 어디에 갈까 고민 중이에요.”


아들의 대답에 남편은 잠시 멈칫했지만, 언제나처럼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기다려주었습니다.

다만 아들 앞에서만요.

안방 문을 닫고 들어오는 순간 투덜투덜 대기 시작했죠.


“카이스트에 합격했는데, 포스텍을 놓고 고민한다고? 물론 포스텍도 좋은 학교지. 그렇지만 카이스트잖아!”

“나한테 그러지 말고 가서 직접 말해!”

“안돼. 나는 좋은 아빠 할 거야.”


우리의 대화는 늘 이렇게 무대 위와 무대 뒤가 다르게 마무리되곤 했습니다.

결국 아들은 깊은 고민 끝에 카이스트를 선택했고, 드디어 카이스트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카이스트생이 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첫 관문인 ‘학생증 발급’부터 난관이었거든요. 카이스트 포탈 아이디를 만들고 ID 카드를 발급받아야 신입생 공지 사항 확인부터 생활관 신청까지 모든 행정 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데, 대학생이 된 아들이 여전히 미성년자라는 점이 걸림돌이었습니다.

과학고 조기졸업에 늦은 생일까지 겹쳐, 갓 대학생이 된 아들은 이제 막 만 17세가 된 상태였으니까요.

결국 모든 서류 절차에 부모의 조력이 필요했습니다.


“엄마, 학생증 만드는 어플을 사용하려면 주민등록증이 필요해요.”

“아이고 이런, 주민등록증 발급받으라는 통지서를 얼마 전에 받아서 아직 발급 못 받았는데, 어쩌냐.”

“그럼, 은행 가서 학생증 만들면 된대요. 우리 동네에 우리은행 있어요?”

“ATM기는 봤는데. 어디 보자, 우리은행이 어디에 있으려나?”


카이스트 학생증은 우리은행 체크카드와 연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우리은행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쉬운 온라인 발급은 꿈도 못 꾸고, 저희는 학생증 하나를 만들기 위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차로 10분 거리, 검색으로 찾아낸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은행 지점으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카이스트에는 제 아들과 같은 미성년자 신입생들이 종종 있어 그런지, 필요한 서류 목록이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권과 주민등록초본을 챙겨 든,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과 뭘 잘 모르는 엄마의 어설픈 은행 원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슨 업무를 도와드릴까요?”


친절한 은행 직원분의 안내를 받고 들어선 우리은행은 꽤 넓었습니다. 그런데 ‘학생증 발급’ 업무를 보러 왔다고 하자, 적잖이 당황한 듯했습니다. 카이스트 학생증은 우리은행과 연계되어 있었지만, 모든 지점에서 발급 가능한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안... 되나요?”

제 목소리에 섞인 당혹감 때문인지 직원분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반면 제 아들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엄마가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하는 믿음 때문인지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학생증 발급하러 대전까지 가야 하나? 아, 너무 비효율적인데.’

머릿속으로 온갖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애타는 속을 감추고 있는데, 서류를 한참 살피던 은행 직원분이 고개를 들어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고객님, 여기서 처리하는 게 아무래도 편하시겠죠?”

그 한마디에 꽉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요. 방법이 있을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카이스트 지점과 연결해 보겠습니다.”


구세주가 따로 없었습니다. 창구 직원분은 전화기 너머 카이스트 지점과 꽤 긴 통화를 하는 동시에 키보드를 두드리며 빠르게 학생증 발급 업무를 처리해 나갔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아들은 제 도움을 받아 가며 예외적인 학생증 발급 업무에 필요한 서류를 서툰 손길로 작성했습니다.


업무를 마친 뒤 저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허리를 90도로 꺾어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직원분은 환한 미소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카이스트 합격, 정말 축하해요.”


그 길로 저희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러 갔습니다. 입학하기 전에만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미루었다가, 이 사달이 났으니 말입니다. 주민등록증 발급을 위해 손가락 지문을 하나하나 뜨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으니 이제야 실감이 났습니다.


‘아, 이제 주민등록증도 생기고, 학생증도 생기고. 진짜 대학생이 되었구나!’


물론 대학생이 되었지만 아직은 보호자가 필요하고, 혼자 할 수 있는 일보다 함께 해야 하는 일이 더 많겠지만, 언젠가는 이런 일도 추억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코끝이 시큰해졌습니다.

하지만 곧 주민센터를 나서며 하는 아들의 말 한마디에 그만 웃음이 터졌습니다.


“엄마, 이거 뭐예요. 잘 안 지워지는데? 아, 찝찝해.”


손가락 끝에 남은 검은 잉크에도 징징대는 모습이라니... 대학생은 되었지만, 아직은 손이 많이 가는 미성년자인 걸로.




'밀리의 서재' 밀리로드에도 동시 게재중입니다.

사막같은 곳이라 작가님들의 '밀어주기' 만이 유일한 숨구멍이랍니다. ㅎㅎ


https://www.millie.co.kr/v4/millieRoad/38141


혹시 밀리로드에 입성하신 분들, 댓글 달아주세요. 저도 함께 밀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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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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