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다고 해서 잘못된 길은 아닙니다. 어떤 길이든 장애물은 있습니다
잠들기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새 일을 시작한 사람도, 오래 한 자리를 지켜 온 사람도 똑같이 묻습니다.
불안하다고 해서 잘못된 길은 아닙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문제와 장애물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지금 걷고 있는 과정에서는 아무도 결과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물어야 할 것은 "이 길이 맞나?"가 아니라 "이 길은 내가 골랐나?"입니다.
내가 고른 길이라면 장애물은 반성의 기회가 될 것이고, 남을 따라간 길이라면 후회와 남탓으로 끝날 것입니다.
같은 날 회사를 옮긴 두 사람
같은 팀의 두 사람이 같은 날 회사를 옮겼습니다.
김 대리는 1년 동안 따졌습니다.
왜 떠나고 싶은지, 어떤 회사에 가야 하는지, 면접에서도 일하는 방식부터 꼼꼼히 물었습니다. 그렇게 "일정과 바카라임이 분명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이유를 세우고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했습니다.
이 대리는 조금 달랐습니다.
지금의 회사가 싫었습니다. 동료들도 업무방식도 모두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지금의 내 연봉봉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했습니다.
석 달 뒤, 두 사람은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길이 맞나? 나 잘하고 있는 걸까?"
낯선 업무 방식, 아직 믿어 주지 않는 동료들, 첫 실수.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문제와 장애물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어떤 길을 선택하든 불안과 의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불안하다고 틀린 길은 아닙니다.
지금의 과정 한가운데서는 결과를 알 수 없습니다.
산 중턱에서는 정상의 풍경이 보이지 않고, 씨앗을 심은 지 일주일 된 땅을 파 봐야 열매는 없습니다.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틀린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과정에서 집중해야 할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불안과 의심은 답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력만 잃게 만듭니다.
지금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문제와 장애물을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길이든, 타인의 선택에 따라 간 길이든, 문제와 장애물은 모두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벽 앞에서의 태도는 다릅니다.
김 대리는 자기가 왜 이 회사에 왔는지 압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이 회사의 일정 관리 방식을 내가 아직 모르는구나. 무엇을 먼저 익혀야 하지?" 내가 고른 길이라 그 도전의 본질을 알고, 본질을 아니까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반성할 수 있습니다. 그 반성은 배움이 되고, 오히려 성장의 발판이 됩니다.
이 대리는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 모릅니다.
그냥 전 회사가 싫어서 이 회사를 고른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모르니 반성이 되지 않습니다. 대신 "옮기라고 한 동기들 때문에", "요즘 경기가 이래서", "이 회사 시스템이 엉망이라서"가 나옵니다. 남 탓, 세상 탓만 하다 결국 후회만 남습니다.
같은 문제, 같은 불안이 찾아와도 내가 선택한 길에서는 반성의 기회가 되고, 남을 따라간 길에서는 후회로 끝납니다.
일본 만화 《베르세르크》에 나와 널리 알려진 말이 있습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후회만 남은 이 대리는 또 다른 회사를 알아봅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든 문제와 장애물은 반드시 있습니다. 이번에도 남의 말을 따라 옮긴다면, 새 회사에서 똑같은 벽 앞에서 똑같이 남 탓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장애물이 없는 길은 없기에, 장애물을 피해 도망쳐 도착한 곳에도 낙원은 없습니다.
그래서 선택을 남에게 떠넘기거나 대충 하면 안 됩니다. 어차피 어느 길에서든 장애물을 만난다면, 그 장애물 앞에서 반성할 수 있는 길, 곧 내가 신중하게 직접 결정한 길이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의 말은 쉽게 믿고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됩니다.
타인의 선택은 철저하게 의심해야 합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의심은 귀를 닫는 것이 아닙니다. 등을 돌리라는 것도 아닙니다. 진짜 의심은 그 근거를 끝까지 묻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근거가 무엇인지 파고드는 것입니다.
김 대리도 "요즘은 옮겨야 연봉이 오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김 대리는 그 말을 버리지 않고 물었습니다. "누구의 경우에 그랬지? 그 사람은 무엇을 포기했지? 나는 연봉이 문제라서 떠나려는 건가, 일하는 방식이 문제라서 떠나려는 건가?"
그렇게 따지다 보면 놀랍게도 나만의 기준이 생깁니다. 김 대리에게는 "연봉보다 바카라임이 분명한 곳"이라는 기준이 생겼습니다. 기준이 생기면 그 기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게 됩니다. 남의 말을 들었지만, 결정은 내가 한 것입니다.
철저히 의심한 끝에 내가 직접 내린 결정을 다시 의심하면 안 됩니다.
자신을 의심하는 순간 행동이 멈추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는 동안에만 서 있습니다. "이게 맞나?" 하며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비틀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행동이 멈추면 그 길에서 얻고자 했던 모든 가능성도 함께 사라집니다.
믿는다는 것이 고집을 부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김 대리는 방향을 믿었고, 방법은 반성으로 계속 다듬었습니다. "이 길이 틀렸나?" 하며 나를 흔드는 것은 의심이고, "이 방식을 고쳐 볼까?" 하며 나를 다듬는 것은 반성입니다. 믿음이 방향을 지키고, 반성이 길을 고칩니다.
믿어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믿어야 그 길에 놓인 장애물과 문제를 넘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넘은 장애물이 쌓여 성장이 되고, 성과가 되고, 성공이 됩니다.
그러니 오늘 밤 다시 "이 길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하나만 물어보세요. "이 길은 내가 골랐는가?" 그렇다면 믿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됩니다. 아니라면 지금부터 근거를 묻고, 내 기준을 세우고, 다시 고르면 됩니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일까요? 직급이 높다고 어른일까요?
아닙니다.
나의 선택을 피하지 않고 그 결과에 바카라임을 지는 사람, 내가 속한 공동체의 선택을 남에게 미루지 않고 그 결과를 떠넘기지 않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김 대리가 문제 앞에서 "무엇을 먼저 익혀야 하지?"라고 물은 것, 그것이 자신이 한 선택에 바카라임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반면 이 대리가 "동기들 때문에", "시장 경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은 바카라임을 남과 세상에 넘긴 모습입니다.
이는 어른의 모습이 아닙니다.
진정한 어른이 되고자 한다면, 선택과 바카라임을 남에게 미루면 안됩니다.
동생을 바카라임지는 형, 자식을 바카라임지는 부모, 팀을 바카라임지는 팀장, 회사를 바카라임지는 사장.
지는 바카라임이 무거워질수록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도 함께 넓어집니다.
그렇게 우리는 더 큰 어른이 됩니다.
Q. 내 선택을 믿으라는 건, 틀려도 고집부리라는 말 아닌가요?
아닙니다. 믿어야 하는 것은 방향이고, 방법은 반성으로 계속 다듬어야 합니다. "이 길이 틀렸나?" 하며 나를 흔드는 것이 의심이라면, "이 방식을 고쳐 볼까?" 하며 나를 다듬는 것이 반성입니다. 고집은 반성 없이 버티는 것이고, 믿음은 반성하며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럼 한 번 고른 길은 절대 바꾸면 안 되나요?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바꾸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다시 근거를 묻고 따져서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면, 길을 바꾸는 것도 또 하나의 내 선택입니다. 하지만 불안에 떠밀려, 남의 말에 끌려 바꾼다면 그것은 도망입니다. 단, 괴롭힘을 당하거나 건강을 해치는 환경이라면 따지기 전에 먼저 벗어나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입니다.
Q. 근거를 끝까지 묻다 보면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할 것 같아요.
의심의 목적은 결정입니다. 끝없이 따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세상에 완벽한 근거는 없으니, 내 기준이 설 만큼 따졌다면 충분합니다. 또 과학적으로 근거가 확실한 것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망설임이 길어진다면 "이번 달 말까지만 따지고 정한다"처럼 기한을 정해 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Q. 부모님이나 전문가의 조언까지 의심하라는 건가요?
귀를 닫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잘 들어야 합니다. 다만 그냥 따르지 말고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라고 근거를 물어보세요. 근거를 듣고 내 기준으로 받아들였다면 그때부터 그것은 내 선택입니다. 근거도 모른 채 따르면, 일이 잘못됐을 때 원망만 남습니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정답을 정해 주기보다 근거를 묻는 법을 가르쳐 줄 때, 아이는 자기 선택을 믿는 사람으로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Q. 저는 이미 남들 따라 여기까지 왔어요. 이제 어떡하죠?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걷는 길에 대해 근거를 물어보세요. "나는 이 길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가?" 내 이유를 찾았다면 그때부터 그 길은 내가 고른 길이 되고, 장애물은 다시 반성의 기회가 됩니다. 아무리 찾아도 내 이유가 없다면, 그때는 신중하게 다시 고를 때입니다. 어느 쪽이든 결정하는 사람은 님 자신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