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틴 시간은 나를 키우지만, 다만 세상까지 바꾸진 못합니다
넘어진 날 순응하고 적응하기만 하면 그 변화는 위기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에 마음이 무거워진 분들이 계셨을 겁니다.
숨 막히는 상사 밑에서 이를 악물던 신입 시절, 장사가 안 돼도 문을 열고 또 열던 날들. 바꿀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저 꾹 참고 맞추며 버텼던 그 시간은 잘못 산 시간이었을까요?
답부터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순응과 적응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를 맞추는 동안, 우리는 문제를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습니다. 그리고 내 안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낼 때마다 사람은 안으로 단단하게 자랍니다. 버틴 시간은 버린 시간이 아니라, 내가 자란 시간입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문을 닫은 첫 번째 카페 사장을 기억하시나요? 그가 무너진 건 순응하고 적응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무 문제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가격만 내리며 견디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순응과 적응 자체는 잘못이 없습니다. 위기가 되는 건 문제를 아예 보지 않고 참기만 할 때입니다. 제대로 된 순응과 적응은 오히려 아주 중요한 일을 해냅니다. 바로 내 안의 문제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순응은 "이 상황은 내가 바꿀 수 없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적응은 그 상황에 맞게 나를 바꾸는 행동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순간, 문제를 푸는 방향이 밖에서 안으로 돌아섭니다. "저 사람은 왜 저래?" 대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고쳐야 할까?"를 묻게 됩니다. 세상을 탓하던 눈이 나를 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바꿀 수 있는 건 언제나 나 자신입니다.
같은 해 같은 팀에 들어간 두 신입사원이 있었습니다. 팀장은 보고서를 올릴 때마다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입이 팀장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버텼습니다.
첫 번째 신입은 그저 참았습니다. 혼나면 고개를 숙이고, 퇴근길에 한숨을 쉬고, 다음 날 또 같은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2년 동안 꾹 참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는 끝내 몰랐습니다. 그는 지쳐서 회사를 떠났습니다.
두 번째 신입도 똑같이 혼나고 똑같이 힘들었습니다. 다만 그는 팀장을 원망하는 대신 자기 보고서를 다시 펼쳐 물었습니다. "내 보고서의 무엇이 문제일까?" 몇 달을 들여다보니 보였습니다. 결론이 맨 끝에 있어 읽는 사람을 지치게 했고, 숫자에는 근거가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결론을 첫 줄에 쓰고, 숫자마다 출처를 달았습니다. 혼나는 횟수가 줄었고, 2년 뒤 그는 어느 부서에서도 통하는 보고 실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순응하고 적응했습니다. 차이는 하나였습니다. 한 사람은 그저 참았고, 한 사람은 참으면서 내 안의 문제를 찾아 풀었습니다.
처음 헬스장에 가면 가벼운 무게도 힘듭니다. 그 무게를 몇 주 동안 꾹 참고 들다 보면 어느 날 같은 무게가 가볍게 느껴집니다. 무게가 줄어든 게 아니라, 내가 커진 겁니다.
첫아이를 키우던 첫해, 아이는 두 시간마다 깹니다. 그리고 두 시간마다 부모도 깹니다. 부모는 아이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순응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안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다스리는 법을 배웁니다. 이렇게 부모는 인내심이 자랐습니다.
순응과 적응이 남기는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나를 아는 힘: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정확히 알게 됩니다.
나를 고치는 힘: 부족한 것을 채우며 실력과 습관이 자랍니다.
흔들리지 않는 힘: 다음에 비슷한 일이 와도 덜 흔들립니다.
이것이 순응과 적응의 진짜 가치, 바로 내면의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내 손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 앞에서 끝까지 맞서기만 하는 사람은 쉽게 부러집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를 고쳐 나가는 사람이 결국 단단해집니다.
그러니 지금 무언가를 꾹 참고 맞추고 있다면, 그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질문 하나만 함께 품어보세요. "이 상황에서 내가 고칠 수 있는 나의 문제는 무엇인가?" 이 질문이 있는 한, 님의 버팀은 이미 성장하는 시간입니다.
여기서 하나만 더 짚겠습니다. 순응과 적응이 문제를 내 안에서 찾는다면, 반응과 대응은 문제를 밖에서 찾습니다. "왜 이렇게 됐지?" 하고 타인과 환경과 세상을 들여다보고(반응), 그 원인을 직접 풀어내는 것(대응)입니다.
두 번째 신입이 몇 년 뒤 팀장이 되어, 신입들이 같은 이유로 혼나지 않도록 팀의 보고서 양식을 바꿨다고 해봅시다. 이번엔 자기 하나가 아니라 팀 전체의 문제를 푼 것입니다. 순응과 적응이 나를 키운다면, 반응과 대응은 내 주변과 세상을 바꿉니다.
그래서 둘 다 필요합니다. 안으로 자란 사람이어야 밖의 문제도 풀 힘을 가지고, 밖의 문제를 푸는 사람이어야 그 힘이 세상에 가치가 됩니다.
꾹 참고 맞추며 버틴 시간은 버린 시간이 아닙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내 안의 문제를 마주하고, 하나씩 풀며 분명 자라 있었습니다. 그렇게 단단해진 사람이 고개를 들어 밖을 볼 때, 그 버팀의 시간은 상처가 아니라 영광의 훈장으로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순응과 적응으로 안을 키운 사람은, 이제 고개를 들어 밖의 문제를 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밖의 문제는 대부분 나 혼자 힘으로는 풀리지 않습니다. 팀의 문제, 가게의 문제, 우리 동네의 문제를 풀려면 결국 누군가와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손을 내밀려고 하면 망설여집니다. "믿었다가 나만 손해 보면 어쩌지?"
다음 이야기, "혼자선 못 하는 큰일..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에서는 혼자서는 풀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왜 사람이 함께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어려운 믿음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이야기합니다.
Q. 잘못은 남이 했는데 왜 제가 고쳐야 하나요? 결국 다 내 탓하라는 말 아닌가요?
탓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잘못은 그대로 잘못입니다. 다만 그 상황 속에서도 내가 고칠 수 있는 몫을 찾으면, 그 몫만큼은 확실히 내 것이 됩니다. 남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반응과 대응의 몫이고, 둘은 함께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온라인 게임 내 괴롭힘이나 폭력적인 관계도 받아들이고 맞춰야 하나요?
아닙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해치는 상황은 순응하고 적응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벗어나고, 기록하고, 주변과 전문 기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장으로 이어지는 버팀은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일 때입니다.
Q. 상황에 맞춰 나를 바꾸는 사람은 줏대 없는 사람 아닌가요?
바람에 휘는 대나무는 부러지지 않습니다. 맞춘다는 건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한 부분을 고치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 문제를 인정하고 고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강한 줏대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