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이 하는 날

양배추 물김치 마지막 날

by청파 강성호

떠리....

오랜만에 입에 올려 본 말이다. 그것도 아내와 마주 앉은 아침 식탁에서 툭 튀어나왔다.

오늘 아침, 우리는 양배추 물김치를 마침내 다 먹었다.

‘양배추 물김치의 비밀.’

‘양배추 물김치 그 뒷이야기.’

3월 중순에 이미

글로 썼으니, 그보다 앞서 담근 물김치라는 뜻이고, 거의 한 달 가까이 우리와 함께한 셈이다.

하긴 한 통 담가 둘이 먹는 것이니 오래 먹다 지치면 버리는 음식도 많다.

그 물김치를 작은 접시에 담아내며 내가 말했다.

오늘 물김치 떠리네...

그럼, 이것도 다 먹고 떠리하자.

저것 도...

저것 도...

먹으면서 잠시 사전을 찾아보았다.

떠리, 오픈사전으로 시장 또는 상점에서 팔고 남은 물건을...

떠리, 명사 ‘비지’의 방언(함남, 중국 흑룡강성)이다.

떨이, 명사 팔다 조금 남은 물건을 다 떨어서 싸게 파는 일.

뜻밖의 수확이다.

표준은 '떠리'도 있고 ‘떨이’도 있다.


하여간 그렇게

파김치도 떠리하고

숙주나물무침도 떠리하고

간장에 담근 양파도 떠리하고

아침에 조금 볶은 소고기볶음도 떠리했고,

그래서

무게로 힘들어하던 냉장고는 기쁜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평소보다 설거지 양이 많이 늘었네...

그렇게 ‘양배추 물김치의 비밀’은 아내도 모르는 사이 나만의 비밀이 익어갔고, 조금씩 먹었던 것이,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시원하게 들이키고, 떠리와 함께 막을 내렸다.


어쩌면 영원히 비밀에 묻힐 수 있기도 할 테지만, 이미 작가협회 문예지에 올라가 있으니 비밀이라 할 수 있겠는가.

아내는 나의 미소에 대한 의미를 알지 못하겠지만, 설거지하면서 내 입가에는 슬며시 미소가 나왔고,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끝까지 비밀로 내 미소처럼 끝내 들키지 않았다.



다시 ‘양배추 물김치의 비밀’ 그 장면을 소환하면...

『사이다 한 병 넣을까?

식초도 넣을까? 아내에게 물어보았더니.

뭐 알아서 하란다.

그러면서 한마디 한다.

“김치에 미원 넣으면 큰일 나!”

흠마야 이게 뭔 소리야?

금방 넣었는데...』

어쩌면 아내의 무서운 경고였을지도 모르는,
아내와 나, 그날의 대화였다.


26. 4. 9.

월요일 연재
이전 06화선입선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