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여는 소소한 이야기들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하루 네 시간짜리 일을 나간다. 오전조일 때도 있고, 오후조일 때도 있고, 저녁조일 때도 있다. 순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나름의 기준과 순서가 있어 보인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에 맞춰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이제는 우리 집의 작은 리듬이 되었다.
대개는 이른 시간에 나가는 날은 7시쯤 칩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여덟 시에 나가면 된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에 아침 풍경도 조금 달라졌다. 나는 여섯 시부터 나와 이것저것 기본 준비를 했다. 아침마다 먹는 양배추와 당근은 어제 다 먹어 버려서, 오늘은 칼부터 들어야 했다. 양배추를 썰고 당근을 썰어 두고 나니, 문득 오늘은 뭘 해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야채를 꺼낸 김에 카레를 해도 되겠다 싶었다. 냉장고에서 돼지고기 앞다리 살을 꺼냈다. 아내는 비계가 많이 붙은 고기는 잘 먹지 않으니, 살코기 위주로 골라 적당한 크기로 썰었다. 밑간도 조금 해 두었다. 감자를 깎고 자르고, 양파를 자르고, 당근까지 썰어 놓을 무렵이었다. 그때 아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 순간부터는 아침이 조금 바빠진다. 계란프라이를 하고, 식탁을 차리고, 한편으로는 카레 냄비를 올린다. 음식이란 게 늘 그렇다. 준비할 때는 손이 많이 가지만, 막상 만들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금방 지나간다. 재료가 갖춰지면 불은 제 갈 길을 가고, 손도 제 리듬을 찾는다.
카레는 늘 그렇다. 간단히 해 먹자고 시작한 음식인데, 막상 손을 대면 사람 마음만 간단할 뿐 손은 점점 바빠진다. 여유가 있어서 시작했는데, 그 여유를 제일 먼저 잡아먹는 것도 또 카레다.
아내는 아침 식사 전에 늘 먼저 먹는 것이 있다. 올리브 오일 한 스푼, 그리고 전자레인지에 냉수를 1분 10초 돌려 따뜻하게 데운 물 한 컵이다. 그걸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식사를 시작한다. 그런 순서도 이제는 익숙한 하루의 절차가 되었다. 그러고 나면 양배추와 당근 같은 야채를 먼저 먹고, 계란프라이를 먹고, 마지막에 밥을 먹는다. 예전에는 밥 200그램쯤이면 두 사람이 나눠 먹기에 맞는 양이거나 조금 부족한 듯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남는다. 사람의 식사량도 계절처럼 조금씩 달라지는가 보다.
나는 밥을 접시에 먹을 만큼만 덜어 담고, 막 만든 카레를 그 위에 올렸다. 그때 아내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카레에 파란색 야채 없으면 카레도 아니야.”
“호박 어디 갔어?”
“아니, 준비하려고 했는데 당신이 조금 일찍 나왔잖아!”
그러자 아내가 다시 말했다.
“그게 뭔 소리야. 내가 일곱 시 반에 밥 먹으면 시간 되는데...”
아내가 나온 시간은 7시 15분이었다. 그러니 내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고, 아내 말도 아주 억울한 말만은 아니었다. 아침 식탁이라는 곳이 원래 그렇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를 가리기보다, 몇 마디 주고받는 말속에서 하루가 먼저 깨어나는 곳이다.
아침 식탁에는 늘 거창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은 아니다. 대단한 철학도 없고, 세상을 바꾸는 말도 없다. 대신 이런 말들이 있다. 파란색 야채가 빠진 카레는 카레 같지 않다는 말, 호박이 왜 없느냐는 말, 조금 일찍 나왔다는 말과 그게 무슨 소리냐는 말. 그런 말들이 오가며 아침은 아침답게 흘러간다.
우리 집 밥상은 그렇게 사소한 말 몇 마디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 아침 대화에서 빠진 말이 하나 있다.
“오늘 일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