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시절부터 내 방 문은 꼭 닫혀있었다. 그것이 겨울이든 여름이든 상관없었다. 굳게 닫힌 문은 누군가의 침입이나 방문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결연한 의지를 뽐냈다. 내가 바카라을 읽거나 드럼 연습을 하기 위해서 고무 패드를 두드릴 때, 부모님이나 누나가 내 방에 들어오면 나는 고개조차 들거나 돌리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눈알만 방문 쪽으로 굴렸다. 이 태도는 ‘나는 지금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 방해하지 마라. 할 말이 있다면 내가 방에서 나오면 해라.’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부모님과 누나는 내가 그러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용건을 말하고 방을 나왔지만 나의 부질없는 저항은 사춘기 내내 계속됐다.
독립을 하면서 나는 타의 반 자의 반 문을 꼭 닫고 살았다. 원룸이었기 때문이다. 문을 여는 순간 생면부지 사람이 내 팬티 바람을 지켜볼 공산이 컸다. 이제 부모님이 내 방 문을 열지 않겠지만 나는 문을 꼭 닫고 살았다. 내가 방 문을 열고 산다면 경찰의 신고를 받거나 공공의식이 없는 무례한 인간이 될 테기 때문이다. 나는 문을 꼭 닫고 살 수밖에 없었다.
결혼하면서 투룸으로 이사했을 때는 문을 열수도, 닫을 수 있는 선택권이 생겼다. 안방을 제외한 남은 작은 방은 나의 사무실이었다. 나는 재택근무를 했기 때문에 전화를 받거나 화상 회의를 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방은 아내와 협의하여 서재이자 사무 공간이 되었다. 이 방 특성이 그러해서인지 대부분 시간 동안 방문은 닫혀있었다. 그 시기에 와이프는 회사를 그만둔 상황이라 늘 함께 집에 있어서 더욱 그랬다. 거실 TV 소리가 들어오면 안 됐고 내 전화 통화나 화상 회의 소리가 방 문 밖을 나가는 것도 서로에게 곤란했다. 문이 잠시 열려 있어도 곧장 다시 문을 꼭 닫았다.
3칸짜리 집으로 이사하고 열매가 태어나고 난 후 내 방 문은 이제 대부분 1/3 이상은 열려 있다. 열매와 단 둘이 있을 때는 방 문은 활짝 열려있지만 아내가 열매를 보고 내가 방 안에서 작업할 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1/3 정도는 열려있다. 문을 전부 열기에는 부담스럽고 너무 닫고 있으면 가끔씩 아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1/3 정도가 적당하다. 그 문틈 사이로 아내와 열매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우리는 흔히 마음을 문에 비유한다. ‘마음을 열어라’라는 표현은 문처럼 마음을 열고 닫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제 나에게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잠시 내 방에서 작업을 할 때나,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에서 옷을 꺼낼 때도, 빨래 걸이에 세탁물을 널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볼 때도 문을 열고 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일 때는 얼마나 넓게 문을 열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 보다, 얼마나 오래 문이 열려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마음의 ‘각’ 보다 늘 살피는 마음의 ‘시간’이 지금 열매에게 더 필요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