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단 폴딩 매트리스를 샀다. 곧 열매가 뒤집기를 하고 기어갈 시기기 때문이다. 그 전에 조금 더 안전하게 연습할 수 있도록 매트리스를 거실에 깔았다. 열매를 낳기 전에 거실은 영화관이었고 레스토랑이었고 카페였지만 이제는 열매 놀이터다.
육아는 나만의 영토를 조금씩 내어 주는 과정이다. 침실의 일부는 역방쿠(역류방지쿠션)가 차지했고 우리 집 작은 방은 열매가 머물 침대가 들어섰다. 거실에 깔린 4단 폴딩 매트리스는 마음 깊숙이 열매를 맞이할 준비를 뜻한다. 마음 쓰는 일에는 마음의 크기만큼 마음을 표현할 물리적인 공간도 받쳐줘야 할 때도 있다.
육아를 하면서 나만의 공간이 점점 사라질 때 나 자신이 사라짐을 체감한다. ‘나 자신이 사라진다.’ 육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충이다. 내 삶은 없고 아이에 맞춰 산다. 여기서 오는 자괴감을 버거워 한다. 특히 기존에 ‘나’라는 정체성이 확고했던 사람일수록 더욱 괴롭다. 자신만의 경계가 확고한 자아를 갖춘 사람에게 육아는 그 경계를 무너뜨리는 침략 행위라 생각할지 모른다.
나에게 정체성은 확고한 경계를 갖춘 자아가 아니라 역할이다. 나는 복수의 정체성을 안고 산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기도 하고 회사에서는 온라인 게임인이다. 내 역할에 맞는 정체성이 있다. 아빠라는 역할은 준비할 시간도 없이 닥쳐왔다. 마치 ‘너 아빠 역할로 캐스팅됐으니까 내일 당장 촬영 나올 준비해.’ 라고 통보 받는 배우 심정이 이럴까. 대사도 못 외웠는데 바로 당장 투입되어야 하는 상황 같았다.
나에게 아빠라는 역할의 정체성은 무언가를 채우기보다 빈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더 나은 방향처럼 보였다. 이상적인 아빠를 그리며 특정한 모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빨리 깨달았다. 그저 나는 비어있는 공간을 만들어 열매가 아빠라는 빈 공간에서서 마음껏 놀 수 있는 역할이 좋게 느껴졌다. 나의 영토를 열매에게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빠 그 자체가 열매의 영토가 되어주는 것이다
아빠는 그럴 수 있는 역할이다. 아이에게 먼저 나서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기 보다는 아이의 액션에 바람직한 리액션을 해주는 것이 오히려 아이와의 상호작용할 때 더 편할 수 있다. 매트리스 위에 아기 체육관을 설치하고 열매는 그곳에서 발차기를 하며 논다. 그게 지겨워지면 매트리스 위에 올려 꼬꼬맘의 요절복통 스텝에 맞춰 터미 타임을 한다. 그러면서 열매는 조금씩 기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면서 손을 받쳐주기도 하고 흐르는 침을 가제 손수건으로 닦아준다. 멋지게 터미 타임에 성공하면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조금 더 기어 올 수 있으면 힘내라고 응원한다.
아기 침대와 엄마아빠 품에만 머물던 열매가 이제 자기 발로 세상을 기는 모습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앞으로 열매는 얼마나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까. 열매 스스로 넓혀갈 영토는 어디고 얼마나 클까. 온전히 그것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아빠만의 빈 공간을 위해 나도 지금부터 덜어내는 훈련을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