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는 이유

by고로케

20대 때는 방황을 했다. 나는 영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싶었다. 나를 먹여 살릴 정도로 영화를 잘하지도, 잘 알지도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나의 어정쩡한 노력과 재능을 원망했다. 그렇다고 다른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가닥도 서지 않았다. 나는 그야말로 ‘미결정’의 상태를 지속하면서 방황했다.


내가 생각하는 방황의 본질은 ‘미결정’이다.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수락할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계속 유보하는 상태다. 이 미결정의 방황은 처음에는 꽤나 자유로울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으로 혈관을 가득 채운다.


20대 시절이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내 눈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 중 정답을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답을 선택해야 할 것이 아니라 빨리 오답을 경험하면서 선택지를 줄이는 작업을 해야 했었다. 20대의 경험치로 미루었을 때 이 수많은 선택지 중 처음부터 정답을 고르는 건 애초에 무리였기 때문이다.


나를 힘들게 한 또 다른 불순물은 농도 짙은 의심이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혹시 되돌아 가야하는 건 아닌지 다른 길이 옳았다면 어쩌지 라는 의심의 꼬리가 자꾸만 길게 늘어져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어쨌든 나는 이 압박감과 의심을 제거하기 위해 과감하게 결정하고 잘못된 판단을 했다면 그것을 수습하는 데 시간을 썼고 결국 그 판단이 옮은 결정이 되도록 만들었다. 나는 아직 어린 나이지만 큰 관문을 지나왔다. 내 어깨 위에 바카라임감과 부담감은 20대 때보다 더 무거워졌지만 삶의 목적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우리 가족의 행복’ 그것이 오로지 내 삶의 기준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안정된 삶이란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삶이다. 결혼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내가 비록 슬롯에서 부족한 인간일지라도 와이프와 열매에게 사랑을 줄 수 있고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나도 괜찮은 사람임을 굳이 애써 타인에게 증명할 필요 없다는 자유를 느꼈다. 와이프와 열매의 존재 자체가 이미 나도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내가 능력 있고 멋진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부질없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이 단지 와이프와 열매만을 위한 마음은 아니다. 내 가족은 내 삶의 토대기 때문이다. 내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내 삶의 토대를 더 단단하게 한다. 내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내가 잘 살 수 있는 근본적인 시작점이다. 이토록 명확한 확신은 20대 때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확신에 어떤 불안과 의심의 먼지가 낄 틈 없다. 이것이 와이프와 열매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