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여행이라면 내가 떠날 곳은 어디일까? 내가 살던 거주지를 떠나 여행지의 정취를 폐 깊숙이 마시는 시간. 나를 잠시 문 앞 신발처럼 가지런히 벗어놓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장소. 그것이 여행이라면 육아는 어떤 모험일까?
내가 떠올린 여행지는 파리도, 뉴욕도, 다낭도 아닌 어느 무인도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비행사고로 무인도에 다다른다. 척은 절망하지만 곧이어 문명화되지 않은 습기 찬 땅에 불을 피우고 사냥을 한다. 오동통한 배구공 윌슨도 빠질 수 없다. 그는 무인도로 함께 흘러들어온 배구공에게 윌슨이라는이름을 붙이고 함께 생활한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장소. 하지만 온전히 자유를 쓸 수 없는 장소. 마치 무한도 신용카드를 발급 받았지만 정작 살 수 있는 물건이 한 개도 없는 곳이 척이 살던 무인도다. 그는 낚시를 하고 야자수 열매를 먹으며 생존한다. 그곳의 유일한 말동무는 윌슨이다. 척은 무인도 안에 생존 시스템을 만들고 희망의 불씨를 조금씩 살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4년 뒤 그는 결심한다. 이제 이곳을 나가야겠다고.
척이 무인도 안에서 생활할 때는 자유롭지 않았다. 무인도를 나가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척에게 자유가 생겼다. 무인도에 계속 살지 아니면 밖으로 나갈지. 그것은 척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는 권리다. 무인도 안에서는 자유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인도 밖의 너머를 생각한다면 척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 누구도 척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지도 못한다.
내가 육아가 여행이라면 그건 마치 무인도와 같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은 아이라는 섬에 묶인 생활을 뜻한 건 아니다. 만약 아이만 바라보고 아이에게 모든 것을 맞춰서 생활한다면 그것은 무인도 생활과 다를 바 없다. 아무것도 없는 섬에 불을 피우고 나무를 쳐내듯이 눈만 껌뻑일 줄 아는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 아이의 생존을 위해 만든 시스템에 맞춰진 나의 생존이 그렇다. 마치 척이 무인도에서 해가 뜨면 일어나고 배가 고프면 사냥을 하고 밤이 되면 잠을 자는 생활들. ‘나’가 없고 그저 시스템 속에서 굴러가는 ‘나’만 있다면 그것은 무미건조한 무인도 생활이다.
하지만, 아이라는 섬의 해변 경계 너머를 생각해본다. 해변에 철썩이는 파도와 태양이 질 때 물위에 비치는 윤슬 그리고 수평선 위에 떠있는 구름들. 어디선가 들리는 파도 소리들. 그것을 듣고 보고 있자니 마음 깊은 곳에서 고동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다가 바둑알 같은 눈동자와 마주칠 때면 눈동자가 하늘 위에서 바라본 무인도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24시간 중 2/3를 온전히 이 눈동자에 갇혀서 생활하는 나 자신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동자 밖의 코, 이마, 볼 그리고 솜사탕 같은 미소를 볼 때면 이 아이의 더 큰 너머를 상상한다. 이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이 아이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아이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어떤 새로움일까? 나는 내가 상상한 섬 밖을 선택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