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이 가려서는 안 될 0대5의 굴욕
야구의 시선 제74화
- 금메달이 가려서는 안 될 0대5의 굴욕
한국 야구가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9월 27일, 한국 대표팀은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에서 일본을 3대1로 꺾었다. 이틀 전 0대5 완패를 안겼던 일본을 다시 만나 설욕했고, 아시안게임 5회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도 이어갔다.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금메달을 땄다고 해서 이틀 전의 0대5 패배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야구는 그 참사를 오래 기억해야 한다.
- 프로가 아마추어에게 0대5로 졌다
9월 25일 추석날 밤.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목청껏 응원하던 한국 야구 대표팀은 일본에 0대5로 완패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상대의 이름보다 상대의 구성이다.
한국은 KBO리그에서 뛰는 프로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했다. 반면 일본은 프로야구 1군 스타들이 아니라 기업팀을 중심으로 한 슬롯인 야구 선수들이었다.
그런데 경기 내용에서조차 한국이 밀렸다.
일본 선발투수의 공이 시속 160㎞를 넘었던 것도 아니다. 정교한 제구와 변화구, 타자의 약점을 파고드는 투구에 한국의 프로 타자들은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했다.
안타는 겨우 4개.
그나마 찾아온 기회마저 세 번의 병살타로 날려버렸다.
0대5.
점수보다 더 뼈아픈 것은 경기의 내용이었다.
- 우리는 언제부터 ‘프로’라는 이름에 취했을까
요즘 한국 프로야구의 인기는 대단하다.
만원 관중이 이어지고, 선수들은 스타가 된다. 화려한 세리머니와 응원 문화, 유튜브와 SNS의 영상들이 야구장을 뒤덮는다.
연봉도 높아졌다.
팬들의 관심도 뜨겁다.
그러나 야구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공을 정확하게 받아치고,
주자를 진루시키고,
잡아야 할 공을 잡고,
한 점이 필요할 때 점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결국 ‘기본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 프로야구가 화려함과 인기라는 외형에 비해 정작 이런 기본을 얼마나 치열하게 갈고닦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잘 치고 나서의 세리머니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칠 것인가이다.
강한 공을 던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느냐이다.
멋있는 플레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겨야 할 경기에서 이기는 야구다.
프로라는 간판이 실력을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
- 일본 슬롯인 야구가 보여준 것
일본 슬롯인 야구 선수들에게 야구는 결코 가벼운 취미가 아니다.
그들은 기업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오랜 훈련과 치열한 경쟁을 거쳐 국가대표가 된다.
한국 선수들보다 이름값은 떨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9월 25일 경기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던졌고,
타자는 필요한 순간에 주자를 불러들였으며,
수비는 흔들리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프로 선수들이 모였지만 ‘프로다운 야구’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0대5는 단순한 한 경기의 패배로 넘겨서는 안 된다.
- 금메달이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행히 한국은 결승에서 달라졌다.
곽빈이 마운드를 지켰고, 팽팽했던 승부에서 김도영과 문보경이 필요한 점수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3대1로 일본을 꺾었다.
금메달은 값지다.
선수들의 명예 회복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결승전의 3대1이 이틀 전 0대5의 질문까지 지워주는 것은 아니다.
왜 한국 프로야구의 정상급 선수들이 일본 슬롯인 야구의 정교한 투구에 그렇게 무기력했는가.
왜 국제무대만 나가면 타격의 세밀함과 작전 수행 능력에서 어려움을 겪는 장면이 반복되는가.
왜 국내리그의 엄청난 인기와 국제경쟁력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가.
한국 야구가 답해야 할 질문들이다.
- 관중 수가 야구의 수준은 아니다
프로야구의 흥행은 반갑다.
야구장이 젊은 세대로 가득 차고 가족과 연인이 함께 야구를 즐기는 모습은 한국 야구의 큰 자산이다.
그러나 흥행과 경기력은 별개의 문제다.
관중이 많다고 야구 수준까지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선수의 몸값이 올라갔다고 국제경쟁력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국내에서 스타가 되는 것과 국제무대에서 강한 선수가 되는 것도 반드시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 프로야구에 필요한 것은 ‘우리가 인기 있는 리그’라는 만족이 아니라,
‘우리는 정말 야구를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 겉멋보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9월 27일의 금메달보다 어쩌면 9월 25일의 0대5를 더 오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승리는 축하하면 된다.
그러나 패배에서는 배워야 한다.
특히 자존심을 건드리는 패배일수록 더욱 그렇다.
화려한 세리머니도 좋다.
스타 마케팅도 좋다.
만원 관중도 좋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먼저 갖춰야 할 것이 있다.
기본기다.
정교함이다.
그리고 야구를 대하는 치열함이다.
일본 슬롯인 야구팀에게 당한 0대5의 패배가 한국 야구에 던진 메시지는 어쩌면 단순하다.
‘프로라는 이름에 취하지 마라.’
금메달은 목에 걸었다.
이제 한국 야구가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금메달의 빛이 아니라 0대5라는 숫자가 남긴 경고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