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과 KIA의 시간이 온다
- 가을을 깨우는 한 방, 김도영과 KIA의 시간이 온다
야구는 참 묘하다.
긴 시즌 동안 잘했던 팀이 반드시 마지막까지 가장 강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한동안 주춤하던 팀이 어느 순간 불이 붙어 전혀 다른 팀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가을야구를 앞두고 순위표만큼이나 중요하게 보는 것이 있다.
바로 ‘기세’다.
오늘 잠실에서 KIA 타이거즈가 보여준 야구가 그랬다.
9회초, KIA는 LG에 3대4로 뒤지고 있었다. 아웃카운트는 이미 두 개. 이제 정말 마지막 한 번의 기회밖에 남지 않았다.
2사 1, 2루.
타석에는 김도영이 들어섰다.
상대는 LG의 마무리 고우석. 시속 155㎞의 빠른 공이 몸 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김도영의 방망이가 돌아갔다.
타구는 잠실의 왼쪽 담장을 넘어갔다.
역전 3점 홈런.
3대4가 순식간에 6대4가 됐다.
야구에서 홈런 하나가 이렇게 많은 것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그 홈런은 단순한 3점짜리 홈런이 아니었다.
KIA의 3위를 지켜낸 홈런이었고, LG와의 3연전을 모두 쓸어 담는 스윕을 완성한 홈런이었다.
그리고 김도영 개인에게는 시즌 42호.
그 한 방으로 김도영은 다시 홈런 단독 1위로 올라섰다.
나는 오늘 홈런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KIA가 가을야구를 앞두고 깨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을야구에서 무서운 팀은 반드시 정규시즌 1위 팀만은 아니다.
물론 KT는 강하다. 결국 정규시즌 1위를 확정하며 한국시리즈로 직행했다. 삼성 역시 2위에서 탄탄한 전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단기전은 또 다른 야구다.
선수 한 명의 컨디션, 투수 한 명의 호투, 결정적인 순간의 홈런 하나가 시리즈 전체의 흐름을 바꿔놓는다.
그런 점에서 최근 KIA의 모습은 흥미롭다.
특히 3위를 놓고 직접 경쟁하던 LG를 상대로 3연전을 모두 이겼다는 것은 단순한 3승 이상의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경기 내용이 좋다.
쉽게 이긴 경기가 아니라 끝까지 물고 늘어졌고, 마지막 순간에 경기를 뒤집었다.
이런 승리가 쌓이면 선수들은 생각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뒤지고 있어도 이길 수 있다.’
나는 이것이 가을야구에서 가장 무서운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도영이 있다.
42개의 홈런도 대단하지만 오늘 홈런이 더 인상적인 것은 ‘언제 쳤느냐’ 때문이다.
9회초 2아웃.
한 점 차.
주자 1, 2루.
상대 마무리의 155㎞ 직구.
스타는 이런 순간에 만들어진다.
기록이 좋은 선수를 우리는 좋은 선수라고 부른다.
그러나 모두가 숨을 죽이는 순간 경기를 뒤집는 선수를 우리는 ‘슈퍼스타’라고 부른다.
오늘 김도영은 왜 자신이 KIA의 중심이고, 한국 야구를 대표할 수 있는 타자인지를 한 번의 스윙으로 보여줬다.
이제 관심은 자연스럽게 가을로 향한다.
KIA가 지금의 3위를 지켜내고 포스트시즌에 들어간다면 과연 어떤 야구를 보여줄까.
김도영의 방망이가 계속 뜨겁고, 나성범과 김선빈을 비롯한 경험 많은 선수들이 힘을 보태고, 투수진이 버텨준다면 KIA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오히려 단기전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팀이 될 수도 있다.
야구에는 숫자로 설명하기 어려운 흐름이 있다.
시즌 내내 잠잠하던 팀이 가을 문턱에서 갑자기 뜨거워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팀이 한번 바람을 타면 예상하지 못했던 곳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오늘 김도영의 타구가 잠실의 파란 하늘을 가르며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어쩌면 KIA의 가을도 함께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42번째 홈런은 김도영의 홈런왕 경쟁을 위한 한 방이었지만, KIA에게는 가을을 깨우는 한 방이었다.
이제 정말 궁금해진다.
올가을,
호랑이는 어디까지 달려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