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이 하기 싫어졌어

by기만

나름의 방대한 꿈이 있었다. 세계적인 작곡가가 되는 것. 우습지만―그때는 그게 우스운 줄도 몰랐다― 계획도 세웠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독일로 떠나 수학하고 견문을 넓히며 나아가겠다고. 그 이후는 사실 잘 생각해보지 않았다. 얼마나 허술하고 황당한지, 그렇지만 허무맹랑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게 선배들과 선생님들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의지도 있었다. 확신했다. 그러나 계획대로 삶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으랴, 현재 나는 곡을 쓰지 않는다. 나는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 무엇 때문에 내가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18살 때 등굣길에서 MP3기기에 담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을 들으며 퍽 벅차올랐던 기억은 선명하다.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이른 시각을 달리는 버스에서 그다지 좋지도 않은 풍경을 보면서도, 마음이 동했다. 학교는 집에서 꽤 멀었고 힘들었지만, 위로를 받았다. 독일어로 된 가사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창 밖에 걸어가는 사람들이 바리톤이고 소프라노이며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각기 호른이나 비올라 등을 연주한다. 나는 그냥 바라보고 귀를 기울인다. 아, 곧 버스에서 내려야 한다. 하지만 3분 뒤면 이 곡이 끝난다. 다행이다.


창작은 즐거운 일이지만 정말 고통스럽다. 수도 없이 밤을 새우고 병을 얻으면서도 하기로 했으니까 해야 했다. 시간표를 짜고 규칙적으로 공부하는 것처럼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바카라상 앞에 앉는 시간과 결과물은 비례하지도 않는데 어느 순간에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영감은 마감 압박에 있다지만 마치 퍼즐을 푸는 것 같았다. 쓰는 건 악보이지만 내 감각이 원하는 대로 시간의 줄을 잡고 밀고 당기는 것이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퍼즐이니까. 실마리를 찾으면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보드게임처럼.


끝에 찾아오는 성취감은 그 과정을 보상해 주었는가? 어느 작곡가가 그 보상을 바라면서 곡을 쓰고 연주 무대에 올리겠는가. 작곡은 노동과 다르다. 보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다. 그냥 된 것을 보여주고 있는 대로 받는 수밖에. 그러다 보면 작고 큰 깨달음이 찾아온다. 내가 마지막으로 얻은 깨달음은 작곡을 하지 않게 되도록 만들었지만. 베토벤은 그 시대에 살았고 훌륭했지만 나는 베토벤이 아니고 지금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18살, 버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걸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으로도, 앞으로 노력해서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불가능이라도 헤쳐나가는 것이라지만, 중대한 에러를 발견하고 게임을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음악과 음악인에게 질렸다.


음악은 철저히 추상적이다. 재현에 얽매이지 않아 독립적이고 자유롭지만 자유에는 바카라임이 따르는 법. 머리로 붙잡기 쉽지 않은 일이다. 흔히 실용음악, 대중음악이라 부르는 분야라 하여 다를 것은 없다. 하지만 나는 그 독한 추상성에 질식되어버렸다. 무엇을 해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해낼 수 있다 믿고 노력했지만 보잘것없는 감각과 사고는 그저 잔혹하게 굴려졌을 뿐. 그러다가 잠깐 휴식을 주었더니 달콤함에 취해버렸다. 질식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제야 알게 됐다―추상성의 뒤에 숨은 방대하게 쌓인 음악사. 나는 지적 만족감을 원했을 뿐인데 호락호락하지 않은 그 역사는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기만 했다. 나는 실패했다. 달콤함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음악으로도 개념적 접근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감각을 발달시키거나 논리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에 대한 매너리즘을 정당화시키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이라 믿었으니, 끝도 없는 추상 속에서 못할 게 무엇이었으랴. 그렇게 난 졸업작품에서 보기 좋게 실패했다. 스킬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나는 그냥 관습이 싫었을 뿐인데. 어떻게 싸워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의지는 꺾였고, 나아가 성공과 실패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의미도 없어졌다.


음악은 철저히 의존적이다. 자유에 대한 바카라임이 너무나 무거워서 결국 구상과 재현을 동경한다. 거룩하지만 모순적인 것. 조성체계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어딘가에 기대고 싶다. 그런 이유에선지 음악인들은 관습을 매우 중요시한다. 첫째, 전통을 신봉한다. 전통에는 규범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규범을 어기는 것은 전통을 깨는 일이다. 둘째, 변화를 두려워한다. 규범은 신과 같은 것이다. 침범할 수 없는 영역에 손을 대선 안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지 않는 게 어디 있겠느냐고, 하지만 장르의 분화나 기술의 발전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걸 다루는 사람들은 변하려고 하지 않는다. 열려 있는 세계, 닫혀 있는 마음.


매우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리고 나는 미숙했다.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하지만 나는 실패했다. 음악을 쓰는 법, 연주하는 법, 듣는 법이 다 정해져 있다고 느꼈다.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것은 비매너라고 말하는 저 사람이, 그리고 바장조는 목가적인 조라고 말하는 저 사람이 내가 배우는 음악을 싫어하는 것은 막연한 혐오이리라, 나를 싫어하는 것은 잘 몰라서 그랬으리라, 나도 잘할 수 있으리라.


착각이었다. 내 눈에 음악은 법이자 문화이자 종교이자 계급이었다. 나는 규범을 지켜야 했다. 듣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는 법, 행복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법, 신을 모독해서는 안 되는 법, 주제를 잘 알고 까불지 않아야 하는 법. 깨달았다. 아, 내 세상이 아니구나.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해? 그러게, 왜 그럴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왜 열심히 살고 있는 음악인들을 모욕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것인가? 반문에 반문을 거듭한 결과, 나는 알게 됐다. 나는 음악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사랑한다. 아니 사랑하지 않는다. 방대했던 내 꿈은 보잘것없으며, 아무 의미가 없다. 중대한 에러를 발견하고 게임을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하기 싫다. 안 할래......




월, 화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