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by기만

AI 시대에 실존의 위협을 느끼는 인간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종종 예술이나 음악 같은 것을 지목한다. 창작과 향유의 본질이 인간에게 있다는 측면에서 AI가 실현할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을 배운 나는 꽤 오래전부터 연주가, 작곡가의 역할을 인공지능이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며, 그렇게 되길 바랐다.


어딘가 매우 잘못됐다. 인간성의 특별함을 믿는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이 고귀하다 믿는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수백 수천 년간 쌓여온 인류의 유산이, 단숨에 돌파할 수 없는 깊이가 데이터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상상한 미래는 다가오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사람이 그것을 상상할 수 있음이 그를 증명한다. 음악가들은 자신의 음악적 경험과 자산을 잃게 되지는 않겠지만, 자리나 정체성에 대한 위협을 느낄 것이다.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인간의 방식을 놀랍도록 빠르게 학습하고 반복할 것이고, AI 클래식 거장을 탄생시킬 것이다. 피아노 천재, 바이올린 천재, 오보에 천재, 작곡 천재, 지휘 천재 등은 며칠에 한 번씩 등장해 뉴스를 장식할 것이다. 이미 시작됐다. 이제 향유자에겐 더 많은 선택지가 제공된다.


어딘가 매우 잘못됐다. 왜 이런 끔찍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 왜 그걸 바라고 있는가? 이는 나의 배움과 경험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다. 프롬프트는 여전히 인간이 쓴다지만, 결국 나도 실존의 위협을 퍽 느끼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보급에 대해 그간의 산업혁명에 빗대며 일종의 전환 정도로 생각하고 잘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편리하고 윤택한 인간의 삶을 기대하며. 하지만 근육을 대체했던 과거와 취향과 판단을 겨냥하는 지금은 다르기 때문에 나는 앞선 주장에 쉬이 동의할 수 없다.


심지어 두렵다. 그저 판타지로 치부되던 '엑스 마키나' 같은 이야기가 실현 가능하게 느껴지는 지금, 통제를 벗어날 AI에 대한 경고가 수도 없이 쏟아져도 누군가는 과장된 말이라 일갈해버린다. 변화는 기회이기도 한 것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름도 다양한 무슨 위원회나 대응 팀들이 조직되고 자원이 쓰이는 동안, 나는 뒤처지는 것일까.


어딘가 매우 잘못됐다. 내가 왜 이런 고민을 사서 하고 있는가?




나는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언젠가 머릿속을 스치는 셀 수 없이 많은 생각들과 그것이 모이는 어떤 점들에 대해 생각했었다. 그건 어쩌면 결핍에 대한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그것은 내 잘못인지 남의 잘못인지 아니면 그저 우주의 잘못인지, 그조차도 아니면 잘못이 아닌 것인데 잘못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끈질기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연구하지는 않는다. 그냥 생각할 뿐이다.


특별할 것이 있는가 묻는다면, 사람은 너무 많을 뿐이지 개개인의 삶이 모두 특별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실존의 위협을 느끼는 것이 아니겠는가, 개성을 박탈당하고 어딘가에 분류되며 정렬될 수 있다는 공포에 빠지는 게 아니겠는가. 별 볼 일 없더라도 모든 삶이 특별하다면 내 삶도 특별하다. 내가 음악을 배운 과거의 경험은 특별하다. 내 고민도 특별하다. 특별해야 한다. 특별한 고민이어야 꺼낼 자격이 생길 것 같으니까.


그러니 지금 필요한 건 머릿속에서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는 용기다. 용기를 통해 내가 오늘과 내일 또 그다음 날을 무사히 잘 살아낼 수 있다면. 사랑. 우정. 공부. 학교. 전공. 노동. 가족. 타인. 성격. 감정. 사상...... 사랑. 나는 게이다.




월, 화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