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볕 좋은 모리셔스에서 '천국의 새'를 닮은 꽃, 극락조화와 만났다. 극락조화Strelitzia reginae 는 잎의 형태가 열대 지방에 사는 극락조를 닮았다고 해서 극락조화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기대치 않은 여행지에서 만난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주로 절화로만 보던 극락조화가 화단 가득 빽빽이 자라나 있는 모습을 보다니. 마치 '천국의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오르는 듯한 장관을 마주한 것 같다. 낯선 곳에서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처럼, 친구의 고향집에서 그와 그의 가족들을 만난 기분이 든다. 친구의 면면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은 친근함도 밀려온다. 좋아하는 식물이 제 서식지에 온전한 제 모습으로 뿌리내려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깊은 감격에 젖는다.
극락조화의 모델인 극락조 수컷은 붉은 갈색 날개 아래 노랑과 흰색 날개를 화려하게 늘어뜨린 수려한 외모를 지녔다. 실제 국기에 그 모습을 새겨 넣었을 만큼, 파푸아뉴기니는 극락조를 국가의 소중한 상징으로 여긴다. 그 덕에 극락조의 서식지인 파푸아뉴기니에는 아름다운 수컷의 깃털을 보려는 탐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존재감이 뚜렷한 극락조의 화려한 외형을 닮아서일까. 극락조화 역시 여러 꽃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띈다. 특히 새라는 종을 좋아하는 내게, 새를 닮은 극락조화는 천국에 사는 새일 것만 같아 특별하게 느껴진다.
모리셔스에 비가 크게 한차례 온 뒤, 비포장도로에는 큰 물웅덩이가 생겼다. 잠시 후 동네잔치 마냥 크고 작은 동네 새들이 물가에 모여들었다. 멱을 감고, 물을 마시다 새들은 또 물을 튀기면서 놀았다. 덩치 큰 빨간 새도 찾아와 발을 담갔다. 마치 동네 사랑방 같다.
예전 다큐멘터리에서 가지 위에 앉아 굵은 비를 그대로 맞고 있는 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비를 피한다지만, 가지 사이로 내리치는 빗줄기를 피할 도리는 없다. 날지 못하고 그 세례를 오롯이 맞는 모습이 처연하고도 경이로웠다. 자연을 온몸으로 견디며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안락한 지붕 아래 누워 작은 화면으로 바라보자니 부끄럽기도 했다. 야생의 삶에서 비켜선 종(種)으로 태어난 운 좋음이, 새삼 특권 같아 묵직해졌다.
비 개인 뒤, 그곳에서 새들이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연 속에 이런 작고 따뜻한 사랑방이라도 있어서, 녀석들이 고단한 삶을 이어갈 힘을 조금씩 보충해 가고 있다고. 사랑방은 일찍이 사람을 경계하는 새들이 날아간 뒤에도 느긋한 성격의 새들은 남아 하던 일을 계속했다. 불안이 높고 조심성이 많은 아이 그리고 태평한 아이, 성격 따라 행동하는 건 사람이나 새나 매한가지인 듯했다.
다음 날, 새 숙소에 도착해 첫 아침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야외로 통하는 레스토랑으로 노란 새 여러 마리가 날아왔다. 투숙객이 접시에 남긴 부스러기들을 맛보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서버가 접시를 가지러 오는 막간을 이용해 부지런히 콕콕 쪼아 먹었다. 그들의 일상인 듯 자연스럽다.
배를 적당히 채운 노란 새는 리조트 정원에 내리 앉아 파피루스의 긴 줄기를 부리로 톡 꺾어 물고는, 홀연히 날아갔다. 새는 집 짓는 새로 유명한 마을직조새 village weaver bird 였다. 숙소로 올라가는 길에 보니, 숙소 앞 야자수의 깃 줄기를 걷어낸 줄기 대위의 파피루스 줄기를 꿰며 집을 짓고 있었다. 날개를 펴고 공중에서 쉼 없이 파닥이며 여러 각도로 고개를 돌려 집을 짓는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둥지를 따라 집을 짓는 건축의 난이도가 마치 공중 곡예사의 그것과 같다. 덕분에 집짓기를 참관하는 것에도 공이 든다.
마을직조새는 무리를 이루어 집을 짓는 습성으로, 야자수의 깃 줄기를 걷어내고 줄기 끝부분에 집을 지었다. 새집에 점령당한 야자수에는 둥지 아파트 수십 동이 신축되고 있었다. 배운 적 없이 모두 건축가로 태어나는 새들의 능력이란, 그저 감탄스럽다. 여행자의 시선을 단숨에 빼앗아 간 위대한 새집 짓기는 이번 여정이 내게 준 뜻밖의 선물이다. 작은 부리로 엮어낸 단단한 우주가 야자수마다 가득했다.
극락조화가 숲을 이루고 새들이 자유로이 하늘을 날고 있는 섬에서의 한때가 마치 신기루 같다. 도시는 사라진 도도새의 기념품으로 가득 차 있다. 에코백, 럼주, 사탕수수 설탕 상표까지 곳곳이 도도새로 대표되는 도시이다. 섬에도 없는 사라진 도도새가 그려진 패브릭만이 지금의 집에서 모리셔스의 그 푸르던 날을 기념하고 있다.
극락조화는 천국을 연상시키며 극락에 있을 친구들을 떠올리게 한다. 작약을 좋아했던 아름다웠던 청춘이 안온한 쉼을 얻었으리라 믿으며 수국과 장미, 아이비와 카네이션이 가득한 그곳에서 눈부시게 편안한 영원을 누리고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