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초의 다육식물은 아마도 시골 마당에서 마주친 쇠비름일 것이다. 붉고 통통한 줄기에 동글동글한 물방울 모양의 잎 그리고 그 안에서 작게 피어나는 노란 꽃. 쇠비름은 길가와 밭두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양지에서도, 반그늘의 언덕이나 편평한 곳에서도 잘 자랐다.
쇠비름은 ‘오행초(五行草)’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초록색 잎, 붉은색 줄기, 노란색 꽃, 흰색 뿌리, 까만색 씨앗이 음양오행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쇠비름이 다르게 보인 것은 어느 여름날이었다. 해가 땅을 오븐 판처럼 달구는 더운 날, 다른 풀들은 생기를 잃어 축 쳐져 있을 때도 쇠비름만은 줄기와 잎에 수분을 가득 머금고 반짝반짝 윤이 났다. 뙤약볕이 내리쬐어도 시듦이 무엇인지 모르고 혼자 쌩쌩했다.
손으로 눌러도 쫀쫀하게 다시 올라오는 탄력은 오동통한 잎에서 오는 자신감일까. 쇠비름 같은 통통한 다육식물은 늘 품이 넓은 성격을 연상시켰다. 그 덕분인지 어르신들의 베란다 꽃밭 한구석에는 늘 다육식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기분 좋은 촉감도 촉감이거니와 쉽게 시들어 저세상으로 떠나버리지 않는 강인함 때문인지, 주변에서 다육식물만 가꾸는 마니아를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래서일까, 도시 인근의 다육식물 농장을 지나칠 때면 꼭 한번 들러 보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어느 날 다육식물 화원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화원 주인은 넓은 교탁 같은 곳에 마사토를 소복이 부어 놓고 작업에 심취해 있었다. 가느다란 붓을 한 손에 쥐고, 이제 막 화분에서 꺼낸 다육 뿌리의 흙을 살살 털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꼭 예술가의 마지막 작업인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에 들이친 사람인 것만 같아 조용히 다육이 사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장미를 닮은 다육, 보석처럼 빛나는 다육, 벨벳으로 붉은 물을 들인 것 같은 다육, 윤이 반질반질 나는 다육식물 등, 다육식물의 세계는 수많은 마니아를 사로잡기에 매력이 충분했다. 잠시 후, 눈동자에 점을 찍고 온 화원주인이 다가와 다육의 매력과 배양하는 즐거움에 대해 갖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다.
나는 궁금했던 리톱스를 가리켰다. 말발굽을 닮은 독특한 생김새에 아름다운 색감까지, 어느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화원 주인은 집에서 키우기엔 생육 환경이 제법 까다롭다고 했다. 그래서 구매자 중 일부는 키우는 어려움을 들어 구매하고도 화원에 관리를 맡겨두었다. 이후 시간을 내어 자신의 다육이를 보러 온다고 했다.
소유하고도 두고 가는 마음. 매일 볼 수 있는 권리를 묻어 두고, 자신의 다육이가 더 잘 자랄 수 있도록 돌볼 수 있는 손길에 내맡기는 사랑. 나는 다육 마니아라는 표현을 이 같은 형태의 사랑에도 진정 부여해 주고 싶어졌다. 그리고 사랑의 방식은 다를 수 있음을 알아간다.
세상에는 말로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사랑이 존재한다. 나는 가끔 반려 식물 인시그니스를 볼 때면 고향인 중앙아메리카 흙에 묻어주고 싶어진다. 코스타리카 열대우림의 군락을 찾아 뿌리를 내리게 하고, 그 곁에 움막을 지어 잎이 무성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다 돌아오는 상상을 하곤 한다. 나의 인시그니스가 전처럼 풍성한 이파리를 내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면 특히 그랬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유난스럽지 않은 이별을 하고 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탈하게 잘 있는, 건재하다는 소식만 들어도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랑도 있음을 알아갈 것이다.
다육식물과 잘 어울릴 것 같은 소재를 찾아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상가에 있는 수많은 빛나는 것 중 자개가 눈에 띄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고운 자개의 모습이 다육식물의 따뜻하고 넉넉한 품성과 닮았다. 그 고운 자개에 겨울의 상징 목화와 골든볼, 솔방울, 에린지움, 서양딱총열매, 브루니아, 램스이어 잎과 엮어 다육 자개 부케로 만든다. 그리고 그해의 포근함을 가득 담은 부케를 아이 유치원 학예회 부케로 선물했다. 아이는 부케 한 다발을 안고 활짝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