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1장 블랙 아카이브
아르테미스 돔 기지의 깊은 밤.
모두가 잠이 들었는지 오가는 이 없이 고요했다.
도윤은 블랙 아카이브에서 홀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블랙 아카이브.
겉보기에는 단순한 자료 열람실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최고 등급의 특급기밀자료만을 다루는 특수보안공간이었다.
출입하는 데만도 세 차례 철저한 인증을 거쳐야 했다.
문 하나를 통과하는 데만 수 분이 걸릴 정도였다.
도윤은 지금까지 탐사팀이 발굴해 온 유적의 데이터와 복구된 영상, 분석 기록을 복사했다.
외부 반출이 엄격히 금지된 특급 기밀 자료들이었다.
그는 잠시 손가락을 들어 망설였다.
전송 버튼을 누를 것인가.
도윤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순식간에 데이터가 전송됐다.
수신자 목록에는 ALPHA 라는 알파벳이 떴다.
전송이 끝난 후에도 도윤은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어 도윤의 단말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떴다.
[접수 완료. 다음 투약일은 18일 후.]
수초 후 메시지는 자동으로 삭제됐다.
도윤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윤은 단말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블랙 아카이브의 문이 닫혔다.
기지는 다시 깊은 정적에 잠겼다.
도윤이 돌아가고 얼마 후.
방금 전 도윤이 통과했던 세 개의 인증 장치가 다시 하나씩 작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내부의 푸른 조명 사이로 하얀 얼굴이 비쳤다.
지우였다.
그녀는 복구된 유적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단말을 연결했다.
화면을 훑던 지우의 손이 잠시 멈췄다.
화면 한쪽에 낯선 기록이 떠 있었다.
외부 전송 요청.
지우가 기록을 열었다.
그러나 화면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기록 없음.
지우는 미간을 좁혔다.
방금 전까지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는 잠시 텅 빈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단말을 닫았다.
그저 단순한 시스템 오류라고 생각했다.
2020년 8월 대한민국.
전 세계가 유례없는 바이러스로 멈춰 있었다.
기차도, 비행기도, 선박도. 국경을 이어주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거대한 팬데믹이었다.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바이러스를 피해 일상을 바꾸고 있었다.
팬데믹이 시작된 뒤 회사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사람들은 집에서 일했다.
하지만 바깥 한 낮 온도가 35도를 넘나드는 불볕 더위에도
땀을 흘리며 마스크를 쓰고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혜윤도 그 중 하나였다.
그녀가 다니는 출판사는 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우울한 시절 혜윤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그건 이희였다.
이희는 두달 여 남짓 서울에서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실리콘밸리로 돌아갔다.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에 이희는 미친 듯이 서울을 드나들었다.
비행기로 오가는 데 이틀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서울에 머무는 시간이 고작 몇 시간 뿐이어도 그는 혜윤을 보고 갔다.
그렇게 1년을 보내던 중 팬데믹이 터졌다.
그들의 통화 시간은 만나지 못하는 시간 만큼 길어졌다.
뉴스에서는 연일 바이러스 이야기뿐이었다.
어느 날 밤.
혜윤이 통화 중이던 이희에게 물었다.
“팬데믹이 끝나긴 끝날까?”
텔레비전에서는 백신 개발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이희가 대답했다.
“끝나겠지.”
“어떻게 알아?”
“사실 나도 몰라.”
혜윤이 피식 웃었다.
잠시 뒤 이희가 말했다.
“빨리 보고 싶다.”
혜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나도 그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지난했던 시기도 결국 지나갔다.
팬데믹 발생 2년 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희는 그동안 못 만난 기간이 아쉬웠는지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2022년. 팬데믹의 위세가 한 풀 꺾인 어느 날.
두 사람은 결혼했다.
세상은 그 사이에도 계속 변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새로운 ‘암’ 치료제로 등장했다.
뉴스 앵커는 이제 ‘암치료의 뉴노멀이 열렸다“라고 표현했다.
이희와 혜윤은 저녁을 먹으며 그 뉴스를 보고 있었다.
혜윤이 말했다.
“이야.. 우리가 늙을 때쯤엔 암도 없어지겠네.”
이희가 웃었다.
“그럼 오래 살아야 할텐데.”
혜윤도 웃었다.
“칫, 걱정도 팔자야. 2020년대 생들은 150살까지도 산데.”
그들에게 암은 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아직 자신들에게 일어날 일은 아니라고 믿었다.
두 사람은 자신의 곁에서 숟가락을 빨고 있는 이준을 대견한 듯 쳐다봤다.
이준이 태어난 지 3년이 되던 해였다.
이준이 태어난 후 세상은 이전보다 더 빠르게 변했다.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줄어들었고,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유전자는 더 이상 태어날 때 정해지는 운명만은 아니었다.
수정할 수 있었고, 보완할 수도 있었다.
위험한 유전적 질환은 태어나기 전에 발견됐다.
인류는 조금씩 질병을 이기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어느 날.
혜윤이 말했다.
“우리 나중에 화성에 가면 안 돼?”
이희가 혜윤을 바라봤다.
“갑자기?”
“응.”
“가서 뭐 하게?”
혜윤은 잠시 생각했다.
“집 만들어줘.”
“화성에?”
“응.”
“무슨 집?”
혜윤이 창밖을 바라봤다.
“하늘이 보이는 집.”
이희는 웃었다.
이준은 성장했고, 세상은 더 발전했다.
암은 더 이상 예전처럼 두려운 질병이 아니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암은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고 치료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암병동 진료실 안에 이준과 혜윤이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의사는 혜윤의 병명이 혈액암이라고 했다.
수많은 치료법이 존재하는 시대였다.
유전자 정보로 질병을 예측하고, 개인에게 맞는 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였다.
이준이 목 매인 목소리로 의사에게 물었다.
“정말 치료할 방법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까?”
의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준은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대는 아니라는 것을.
그 무렵 뉴스에서는 또 다른 시장이 성장하고 있었다.
암 치료와 유전자 데이터 정보, 개인 유전자 정보 등이 돈으로 거래되는 시대가 됐다.
암암리에 사람들은 자신의 유전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더 정확한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정보의 가치를 먼저 알아보기 시작했다.
누가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치료제가 누구에게 효과가 있는지.
어떤 연구가 성공했고, 어떤 임상시험이 실패했는지가 돈이 되는 시대였다.
뉴스 방송 화면 아래로 짧은 자막이 지나갔다.
[개인 유전체 정보, 차세대 핵심 자산으로 급부상.]
그리고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이름 하나가 그 거대한 시장의 사이에서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다루는 것은 기업의 유전자 데이터, 개인의 유전체 정보, 신약과 치료제의 임상시험 데이터, 정부나 기업이 숨기고 있는 연구 자료 등 세상의 모든 돈이 되는 정보였다.
그리고 필요하면 그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살인이든 협박이든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을 'ALPHA'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