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 시간을 거슬러 (ost. 린)
이준이 화면을 바라봤다.
엘레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중앙관제실 분석 결과 추가 자료가 나왔습니다.”
“현재 확인된 구조물의 배열은 화성의 기존 자연 지질 구조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준이 물었다.
“그럼 인공 구조물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네. 현재로서는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모니터에 화면 속 통로가 다시 나타났다.
깊고 어두운 공간.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탐사 프로브가 천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면 속 시야가 조금씩 앞으로 이동했다.
프로브의 전면 센서가 어둠을 걷어냈다.
통로의 벽면이 다시 나타났다.
처음에는 단순한 직선 구조였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벽면에 일정한 간격의 홈이 있다는 것이 보였다.
강도윤이 화면을 바라봤다.
“뭐지? 저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거 아닐까?”
지우가 말했다.
“간격도 일정해.”
이준은 화면을 확대했다.
“민수, 벽면 스캔 가능해?”
“잠깐만요.”
민수가 프로브의 센서 모드를 전환했다.
벽면의 표면 정보가 화면에 겹쳐 나타났다.
“표면이 상당히 균일해요.”
도윤이 물었다.
“암석은 아니야?”
민수가 고개를 저었다.
“자연 암석에서 나오는 패턴하고는 좀 달라요.”
엘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벽면의 밀도와 표면 구조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결과가 나타났다.
“현재까지 확인된 구조는 주변 지질층과 다른 물성을 보입니다.”
이준이 물었다.
“인공 구조물일 가능성은?”
“높습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이준은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계속 들어가자.”
“네, 선배.”
민수가 프로브를 조금 더 전진시켰다.
통로가 끝났다.
갑자기 화면이 넓어졌다.
프로브 앞에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천장은 보이지 않았다.
프로브의 조명을 최대 밝기로 올렸지만, 빛은 공간의 일부밖에 비추지 못했다.
도윤이 낮게 말했다.
“이거... 생각보다 큰데.”
지우가 주변을 살폈다.
“방.. 같은 게 있어.”
벽면을 따라 작은 공간들이 줄지어 있었다.
각각 일정한 크기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준은 말없이 화면을 바라봤다.
“민수, 왼쪽으로 천천히 돌려봐.”
“네.”
프로브가 방향을 틀었다.
벽면을 따라 이어진 구조들이 화면에 차례대로 나타났다.
문.
통로.
작은 방.
그리고 다시 문.
모두 일정한 규칙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도윤이 말했다.
“이건 그냥 시설 하나가 아니야.”
이준이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때였다.
민수가 프로브를 멈췄다.
“선배.”
“왜?”
“앞쪽에 이상한 게 있어요.”
화면 중앙에 하나의 구조물이 나타났다.
다른 것들과 달랐다.
벽면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간 중앙에 독립적으로 세워져 있었다.
길이 약 3미터.
높이 2미터 정도의 직사각형 구조물이었다.
표면은 검은색에 가까웠고, 중앙에는 투명한 부분이 있었다.
이준이 말했다.
“가까이 가봐.”
민수가 프로브를 천천히 접근시켰다.
투명한 부분이 화면에 가득 들어왔다.
처음에는 내부가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표면에 오랜 시간 쌓인 먼지와 침전물이 덮여 있었다.
민수가 말했다.
“표면 투과 센서 사용하겠습니다.”
“해봐.”
프로브의 최첨단 투과센서가 작동했다.
화면이 변했고, 투명한 외벽 너머로 내부의 윤곽이 나타났다.
모두가 조용해졌다.
머리.
어깨.
몸통.
그리고 아래로 이어지는 다리.
지우가 숨을 들이켰다.
“저거... 뭐지?”
도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준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민수, 영상 다시 잡아.”
“네.”
화면이 확대됐다.
윤곽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인간과 매우 비슷한 형태였다.
하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몸 전체가 투명한 막 같은 구조물 안에 놓여 있었다.
이준이 말했다.
“엘레나.”
“네.”
“생체 신호 분석 가능할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엘레나가 데이터를 확인했다.
“현재 생체 신호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지우가 물었다.
“완전히 없는 거야?”
“현재 센서의 측정 범위에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도윤이 화면을 바라봤다.
“그럼 죽은 건가?”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엘레나가 말했다.
“사망 여부까지는 현재 데이터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민수가 구조물의 다른 부분을 스캔했다.
“선배.”
“왜?”
“이거 단순한 보관함이 아닌 것 같아요.”
화면 한쪽에 내부 구조가 표시됐다.
외벽.
다중 차폐층.
온도 유지 장치.
그리고 내부의 작은 관로.
민수가 말을 이었다.
“안에 있는 걸 장기간 보존하기 위한 시스템처럼 보여요.”
도윤이 물었다.
“그럼 이게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었다는 거야?”
민수가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작동하는 건 아닌데...”
그가 화면을 확대했다.
“일부 장치에 아직 미세한 전력이 남아 있어요.”
이준이 물었다.
“얼마나?”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민수는 잠시 데이터를 확인했다.
“하지만 완전히 죽은 시스템은 아닌 것 같아요.”
이준은 보존 장치 앞으로 다가온 프로브의 영상을 바라봤다.
아주 오랫동안 누구의 눈에도 발견되지 않았던 공간.
그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정확히는,
누군가였던 존재가.
그리고 그 존재를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는 장치가 있었다.
이준이 낮게 말했다.
“이곳에 뭔가 살았던 건 확실해졌네.”
도윤이 대답했다.
“그런데 왜 이런 걸 만들어 놓은 거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민수가 화면 한쪽을 바라봤다.
“선배.”
“왜?”
“여기 숫자가 있어요.”
보존 장치 하단에 아주 작은 표시가 나타나 있었다.
민수가 확대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자와 숫자가 일정한 순서로 배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하나의 문양이 있었다.
이준의 표정이 굳었다.
그 문양은 지하 구조물 곳곳에서 반복해서 발견했던 것과 같았다.
엘레나가 말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미확인 공간에서의 동일한 문양으로 확인됩니다.”
이준이 물었다.
“몇 군데나?”
“현재까지 확인된 범위에서 37곳입니다.”
이준은 보존 장치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그럼 이건 단순한 저장 장치가 아니야.”
도윤이 물었다.
“그럼 뭔데?”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프로브의 조명이 보존 장치 내부를 비췄다.
그 순간.
투명한 막 너머에서 뭔가 아주 희미하게 드러났다.
눈은 감겨 있었다.
움직임은 없었다.
생체 신호도 없었다.
그러나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딘 듯한 모습으로,
그 존재는 깊은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이준이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일단 기록 전부 챙겨봐.”
화면 속 불빛이 천천히 사라졌다.
지하 깊은 곳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2부 지하도시 끝.
3부로 이어집니다. 3부에서의 반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