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먹을 것을 남긴다는 것>

토종씨앗, 문명을 묻다. 04

by호시우행

가을걷이가 끝나고 멍석 위에 수북하게 쌓인 곡식더미 앞에 농부가 정좌하여 앉는다. 그의 두 손이 낟알을 바쁘게 가라앉히며 분주히 움직인다. 당장 곡간으로 들어가 식구가 먹을 식량이 한쪽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내년 봄의 흙으로 되돌려 보낼 씨앗이 별도의 주머니로 모인다.


손끝에서 갈라지는 두 부류의 알곡은 외형상 그다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같은 이랑에서 뿌리를 내렸고, 같은 가뭄의 볕을 견뎌냈으며, 같은 가을바람에 줄기를 비틀어 영글어간 알곡들이다. 심지어 한 포기의 꼬투리에서 나온 자매 알갱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농부의 손길이 한 번 거쳐 가며 대상을 구획하는 순간, 그 알갱이들의 생명적 궤적은 완벽하게 갈라진다. 한쪽은 솥 안으로 들어가 당장 오늘 밤 가족의 허기를 달래줄 식량이 되고, 다른 한쪽은 어두운 곡간 윗목에 매달려 다음 해의 밭과 계절을 기다리는 생명줄이 된다.


씨앗을 남긴다는 거룩한 노동은 바로 이 엄정하고 정교한 구획에서 출발한다. 지금 당장의 욕망을 채울 식량과 다가올 계절을 위해 유예해야 할 씨앗을 준엄하게 가려내는 작업이다.


혹독한 추위와 기근이 밀려올 때, 눈앞에 놓인 고소한 알곡을 당장 솥에 넣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는 강렬하게 피어오른다. 그러나 농경이라는 삶의 틀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눈앞의 풍요나 굶주림에 휘둘려 곡식을 모두 삼켜버릴 수는 없었다. 올해 거두어들인 결실을 온전히 소비해 버린다면 오늘의 배고픔은 순식간에 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가오는 봄날 밭에 뿌릴 씨앗이 사라져 삶의 기반 자체가 뿌리째 무너지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수확이란 당장의 먹거리가 생겨나는 환희의 순간인 동시에, 아직 도래하지 않은 다음 해의 농사를 비장하게 준비해야 하는 긴장의 순간이기도 했다. 한 해의 화려한 종착지 속에 이미 그다음 해의 조용한 출발점이 깊숙이 아로새겨져 있던 셈이다.


씨앗을 남기는 행위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시간을 위해 현재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확실한 자원을 스스로 떼어놓는 절제의 기술이었다. 다가올 내년의 봄날은 아직 아득히 멀어 도착하지 않았다. 봄비가 제때 내릴지, 예상치 못한 가뭄이 밭을 말라붙게 할지 인간의 지혜로는 미리 알 수 없다. 눈앞의 밭은 아무것도 심어지지 않은 텅 빈 토양일 뿐이다. 그러나 농부는 그 비어 있는 밭의 미래를 머릿속에 또렷이 그리며, 당장 입으로 들어갈 곡식의 일부를 떼어내 씨앗 주머니 속에 모아두어야 했다.


미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의 영역이었지만, 그 미래를 대비하고 끌어당기는 구체적인 행위는 지금 이 자리에서 수행할 수 있었다. 씨앗은 인간이 미래라는 불확실한 시간을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가장 작고도 정밀한 매개체였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한 줌의 알곡은 지금 당장 수제비를 띄워 배를 채우는 소모성 식량이 될 수도 있었고, 흙에 들어가 수천 개의 알갱이로 다시 튀어 올라 내일의 밭을 일구는 창조적 자본이 될 수도 있었다. 인간은 극심한 생존의 경계선 위에서 그 둘 사이의 위태로운 균형을 날마다 가늠하며 선택해야 했다.


이 선택에는 어떤 복잡한 셈법이나 고차원의 이론이 개입할 필요가 없었다. 농사를 계속 이어가며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씨앗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존의 법칙을 수많은 계절 동안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먹어야 하지만, 농경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굶주림 앞에서도 결코 먹지 않고 참아내야 하는 엄연한 절제. 농경 문명의 깊은 내면에는 이 다정하면서도 잔혹한 역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먹거리를 얻기 위해 밭을 일구고, 그 밭을 유지하기 위해 거두어들인 먹거리의 일부를 끝내 남겨야 하는 순환의 궤도였다.


그렇기에 가을의 수확은 농부에게 결코 한가한 노고의 끝이 될 수 없었다. 들판의 곡식을 모두 거두어들인 뒤에도 농부의 손길은 헛간과 마당에서 더욱 세심하게 움직였다. 무엇을 겨울 동안 식량으로 소비할 것인지 분류하고, 무엇을 안전하게 저장고로 보낼지 결정하며, 다가오는 봄날 파종에 쓸 가장 우수한 낟알들을 엄격하게 가려내어 따로 남겼다.


남겨둔 씨앗이 어두운 겨울을 지내는 동안 썩거나 상하지 않도록 지켜내는 일은 심는 일 못지않게 고되고 정교한 노동이었다. 토굴과 곡간 내부로 습기가 찰들어오지 않도록 바짝 말린 짚과 흙으로 문을 겹겹이 막아서야 했고, 바구미나 쥐가 낟알을 갈아먹지 못하도록 매캐한 쑥을 피우거나 맷돌 위에 높은 줄로 묶어 천장에 매달아 두어야 했다. 다음 해의 파종기가 다가올 때까지 씨앗 내부의 생명력이 마르지 않고 또렷이 살아 숨 쉬도록 온 신경을 기울여 보호해야 했다.


저장은 그저 쓰고 남은 잔여물을 구석에 쌓아두는 정적인 방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 눈앞의 필요를 넘어, 다가올 계절과 미래의 생존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적극적인 생활의 양식이었다. 저장고에 들어간 곡식 가운데 어떤 것은 겨울철 가족의 끼니로 즉시 쓰여 사라졌고, 어떤 것은 더 긴 시간이 지난 뒤 온전한 생체 형태로 밭으로 돌아갔다. 같은 밭에서 태어난 알곡일지라도 쓰임새와 용도에 따라 세상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의 길이가 완벽히 달랐다. 사람들은 그 미세한 시차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에 맞추어 보관 방식을 다르게 가져갔다.


따라서 씨앗을 보관하고 남기는 일에는 깊은 기억과 철저한 관리가 요구되었다. 어느 이랑에서 거두어들인 씨앗인지를 기억해야 했고, 곡간의 어느 구석이나 항아리에 보관해 두었는지 잊지 않아야 했다. 그 수많은 곡식의 낟알 중 어느 주머니가 다가올 봄날 밭으로 나갈 씨받이인가를 식구들 모두가 명확히 인지해야 했다. 농부의 한 해는 결코 가을철 수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무사히 지켜내어 다음 계절의 흙 속으로 건네는 순간에야 비로소 정갈하게 완결되었다.


씨앗 한 알이 추운 겨울과 가뭄이라는 까마득한 계절의 단절 사이를 이어주는 단단한 다리 역할을 해낸 것이다.


올해의 밭과 내년의 밭은 같은 지리적 공간에 위치해 있지만, 결코 같은 시간의 층위에 서 있지 않다. 두 밭 사이에는 매서운 겨울 바람이 있고, 장대비가 있으며, 얼어붙은 땅을 녹여내는 시간이 존재하고, 사람이 허기를 참아내며 삶을 지탱해야 하는 아득한 고뇌의 시간들이 겹겹이 들어차 있다. 씨앗은 그 엄혹한 시련의 시간을 오롯이 몸으로 견디며 다가올 농사의 출발점으로 건너갔다.


그렇기에 씨앗을 남기는 노동은 순전한 식량 절약이나 경제적 아낌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의 절박한 필요와 미래의 불확실한 필요를 동시에 껴안고 사유하는 정교한 인문학적 삶의 방식이었다. 농경을 이끄는 사람은 단 한 번의 단회성 수확에 마음을 빼앗길 수 없었다. 올해의 결실이 내년의 씨앗으로 환원되고, 내년의 수확이 또 그다음 해의 농사를 지탱하는 생명줄로 고리처럼 이어졌다. 한 해와 그다음 해가 작고 단단한 씨앗 하나를 매개로 끊임없이 결속되었다.


농경은 인류에게 시간을 길게 호흡하고 사용하는 긴 호흡의 삶을 요구했다. 오늘 밭에 묻은 씨앗을 오늘 당장 거두어 들일 수는 없었다. 오늘 절박함을 참고 남겨둔 한 줌의 씨앗은 수개월이 지난 뒤에야 푸른 싹이 되어 밭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엄정한 선택과 절제가 먼 훗날 식구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결실이 되었다. 인간이 투입한 노동의 행동과 그 노동이 가져다줄 최종 결과 사이에는 아득하게 긴 시간의 시차가 놓여 있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무기력한 수동적 기다림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매일같이 곡간을 들여다보며 기억하고, 습기를 살피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정성스러운 돌봄이 그 사이에 빼곡히 들어찼다. 씨앗의 눈이 제대로 살아있는지 감각으로 확인하고, 저장된 곡식이 부패하지 않는지 점검하며, 파종의 적기가 다가오면 그것을 꺼내어 부드러운 흙 위에 다정하게 내려놓아야 했다. 농경은 씨앗을 밭에 뿌리는 기술에 머물지 않고, 씨앗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전 과정을 삶의 전면에 두고 지켜내는 문화적 실천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정성껏 미래를 준비한다 해서 도래할 미래의 풍요를 완벽히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우수하고 단단한 씨앗을 남겨두었어도 봄날 기독교적 가뭄이 들이닥쳐 토양이 바짝 말라버릴 수 있었다. 밭을 정성껏 일구어 파종을 마쳤어도 수마가 덮쳐 밭 전체를 쓸어가버릴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다. 씨앗이 무사히 싹을 틔웠다 해도 무서운 병충해나 서리가 몰아쳐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었다. 수확은 언제나 완성된 확신의 영역이 아니라, 열려있는 아슬아슬한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기에 씨앗은 완벽한 미래의 풍작을 보장해 주는 확실한 보증 수표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래의 삶이 다시 시작될 수 있도록 그 최소한의 기회를 열어두는 거룩한 가능성 그 자체였다.


이 미세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농경 문명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씨앗을 남긴 농부는 내년의 기슬롯생이나 풍년을 미리 확신하고 있었기에 씨앗을 모은 것이 아니다. 내년에도 이 땅에서 농사를 이어가고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씨앗이라는 최소한의 밑천이 존재해야 한다는 생존의 당위성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불확실하고 아득한 미래 앞에서, 인간이 지금 당장 확실하게 실행할 수 있는 지혜로운 행동 하나를 남겨두는 것. 씨앗을 남기는 노동은 인류가 기나긴 생존의 역사 속에서 체득한 가장 정직하고 정갈한 삶의 지혜였다.


한 줌의 씨앗을 품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풍성한 수확이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 한 줌의 씨앗마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음 해의 농사는 아예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씨앗은 결코 최종 결과를 담보해주지 않지만, 새로운 시작을 도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능성을 인간에게 부여한다. 곡간 속에 씨앗을 보관하는 행위는 곧 다가올 미래의 수많은 선택지와 삶의 기회를 포기하지 않고 남겨두는 고귀한 지켜냄이었다.


농부가 자신의 한 해 수확물 중에서 씨앗 주머니를 따로 떼어놓는 바로 그 순간, 그의 시선은 한 해라는 짧은 시간의 울타리를 넘어서게 된다. 단지 오늘 밤 식구들이 먹을 밥그릇의 크기만을 계산하는 단견에서 벗어나, 내년 이 계절에 어느 밭에 무엇을 심어 삶을 이어갈 것인가라는 긴 호흡의 시간을 사유하게 되는 것이다. 농사의 시간은 한 계절의 짧은 순환 안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한 번 심고 거두는 단발성 노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심을 씨앗을 끊임없이 남겨두어야만 문명의 거대한 순환이 비로소 이어질 수 있었다.


이 간절한 반복 속에서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 또한 한층 깊고 길어졌다. 자신이 직접 땀 흘려 심은 노동의 결과물만을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그 결과물에서 파생된 다음 세대의 씨앗까지 조심스럽게 헤아리게 되었다. 내가 올해 뿌리고 거둔 그 씨앗이 나만의 밭에 머물지 않고, 시집가는 딸의 헝겊을 타고, 혹은 이웃 동네 농부의 손을 거쳐 전혀 다른 사람의 밭으로 흘러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한 인간의 농사가 단지 자기 자신의 일생이라는 유한한 틀 안에서만 갇혀 끝남이 아니라, 다른 이의 삶과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거대한 확장성을 얻게 된 것이다.


씨앗은 그것을 일구었던 한 인간의 개별적인 생애보다 훨씬 오랫동안 이 땅 위에 남아 살아 숨 쉴 수 있는 생명체였다. 농부가 세월의 흐름 속에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가 겨울철 굶주림을 참아가며 지켜낸 그 작은 씨앗 한 알은 누군가의 밭으로 들어가 다시 푸른 싹을 피워낼 수 있었다. 그 씨앗에서 맺힌 새로운 열매가 또 다른 씨앗이 되어 대를 이어가며 다른 밭으로 퍼져나갈 수도 있었다. 한 세대 농부들의 고단했던 삶과 선택이 다음 세대 농부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유용한 생명적 재료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은 씨앗 한 알 속에 누군가의 거창하고 숭고한 일생 전체가 완벽히 들어있다고 과장할 필요는 없다. 씨앗은 그저 흙과 바람을 기다리는 조용한 씨앗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이 당장의 본능적인 허기를 누르고 그것을 먹지 않은 채 남겨 다음 농사의 밑천으로 삼았기에, 단절되기 쉬운 하나의 계절이 그 다음 계절로 무사히 이어질 수 있었다.


역사와 문명은 때로 거창한 영웅의 선언이 아니라, 이처럼 정직하고 소박한 노동의 반복을 통해 도망치지 않고 지속된다. 만 리 장성이나 거대한 석조 건축물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인류의 생존을 지탱해 온 것은 바로 이러한 삶의 태도였다. 오늘의 절박한 욕망을 조용히 미루어두고, 내일의 가능성을 위해 조용히 한 줌을 남겨두는 슬기로운 생활의 양식 말이다. 씨앗을 남기는 행위는 그 인문학적 태도가 지상 위에 구현된 가장 구체적이고 단단한 실체였다.


먹을 수 있는 곡식을 끝내 삼키지 않고 남긴다. 남겨둔 낟알을 습기와 벌레로부터 정성껏 지켜낸다. 계절이 돌고 돌아 봄이 오면 부드러운 땅속에 다시 내려놓는다. 자라난 결실을 감사히 거두고, 다시 그다음 해를 위해 일부를 절박하게 남긴다.


그렇게 한 해의 씨앗이 그다음 해의 계절을 불러오고, 그 해가 또다시 다가올 세월을 기약하게 만든다. 인류 농경의 아득하고 길었던 역사는 오직 이 정직한 남김과 비움의 반복을 바탕으로 연연히 이어져 올 수 있었다.


그러나 곡간에 남겨진 모든 씨앗이 똑같은 방식으로 다음 해의 밭으로 나아간 것은 아니었다. 농부들은 가을 마당에 수북이 쌓인 결실을 유심히 관찰하고 매만졌다. 어떤 알갱이가 껍질 속까지 찬찬히 잘 여물었는지, 어떤 포기가 자기 집 밭의 박한 토양을 끝까지 견뎌냈는지, 어떤 작물이 예상했던 것보다 풍성하고 맛 좋은 결실을 안겨주었는지를 수년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달았다. 다가올 농사를 위해 어떤 씨앗을 우선적으로 남길 것인가는 다시 한번 깊은 '선택'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 선택은 앞서 본 상호 길들임과 작물화의 역사와 깊은 궤를 같이한다. 다만 씨앗을 남긴다는 행위 속에는 단순히 다음 해 농사를 위한 물리적인 수량을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훨씬 더 깊은 인문학적 결단이 스며있었다. 다가올 미래 세대로 과연 어떤 생명적 형질과 삶의 가치를 건넬 것인가를 결정짓는 준엄한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정의 기준은 해마다 맞이하는 자연의 조건과 농가의 현실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졌다. 어떤 해에는 알이 굵고 당도가 높은 우수한 개체를 집중적으로 남겼고, 어떤 해에는 비록 수확량은 턱없이 적었을지라도 지독한 가뭄을 끝내 견뎌낸 강인한 개체의 씨앗을 목숨 걸고 지켜내어 남겼다. 농민은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생태적 환경과 한 해 농사의 엄혹한 결과를 정직하게 수용하면서, 다음 계절로 건넬 씨앗을 주체적으로 선발했다.


그 선발의 손길은 단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았다. 수백 수천 년의 세월 동안 해마다 반복되고 누적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씨앗과 인간이 맺는 관계의 깊이 또한 완전히 달라졌다. 씨앗은 이제 단순히 식물의 번식을 돕는 유전물질에 머물지 않고, 그 땅을 거쳐 간 수많은 농부들의 땀방울과 밭의 기억이 켜켜이 머무는 거룩한 성소가 되었다. 어떤 씨앗을 뿌렸을 때 가뭄을 이겨냈는지, 어떤 알갱이를 남겼을 때 식구들의 밥상이 풍요로웠는지가 다음 해 씨앗을 가려내는 정밀한 기준이 되었다. 그렇게 작고 단단한 씨앗의 껍질 안에는 수세기에 걸친 인류의 노동과 관찰의 시간이 농밀하게 축적되었다.


하지만 씨앗이 품고 있는 그 무거운 시간은 결코 지나간 과거만을 후향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씨앗은 분명 지나온 가을의 수확에서 태어난 결과물이지만, 그의 눈은 언제나 다가올 미래의 비어있는 밭을 향해 있었다. 지난 농사의 엄정한 결과가 다가올 농사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전환되는 미묘한 지점에 씨앗이 서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씨앗을 가려내어 손에 쥐고 있는 농부는 언제나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가능성이 교차하는 거대한 경계선 위에 서 있던 존재였다. 그의 손에는 이미 지나온 계절에 피땀 흘려 거두어들인 확실한 곡식이 쥐여 있었고, 그의 눈앞에는 아직 단 한 줄기의 싹도 올라오지 않은 비어있는 봄 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과거의 곡식과 미래의 밭 사이를 작고 단단한 씨앗 한 알이 굳건하게 연결해 주고 있었다.


이 소박하고도 엄정한 구분 하나가 인류 농경의 긴 시간을 연연히 이어주었다.

먹을 곡식과 심을 씨앗. 오늘의 허기와 내일의 생존. 가을의 수확과 봄의 파종. 한 해의 끝과 새로운 해의 시작.


농경은 이 서로 다른 시간의 결들을 씨앗이라는 작고 거룩한 생명의 그릇 하나로 매끄럽게 연결해 냈다.

그리고 기나긴 세월이 흐르면서, 농부들은 단지 곡식을 남겨두는 행위만으로는 농사의 미래를 온전히 지켜낼 수 없다는 더 깊은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다음 계절의 씨앗을 가려내어 남겨야 하는가. 과연 어떤 씨앗이 내 집 밭의 척박한 흙과 가뭄 속에서 다시 당당히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씨앗 중 어떤 것을 이웃과 다음 세대에게 밑천으로 건네야 하는가.


질문들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정교해지고 깊어졌다. 씨앗을 단순히 보관하여 남기는 일은, 곧 생명의 형질을 엄격히 가려내는 '선택'의 역사로 진화해 갔다. 그리고 그 선택의 손길이 수없이 겹쳐지면서, 지구상의 수많은 씨앗들은 제각기 다른 삶의 궤적과 성격을 지닌 고유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옛 농부들은 과연 어떠한 눈과 기준으로, 다가올 농사를 지탱할 자신들만의 씨앗을 골라내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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