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살아온 경험을 반응과 습관으로 바꿔 기억한다

몸, 인간을 다시 묻다 06

by호시우행

사람들 앞에 서야 할 때면 나는 아직도 몸이 먼저 긴장하는 것을 느낀다.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머릿속으로는 이미 정리되어 있고, 이제는 이런 자리가 처음도 아니며, 설령 조금 실수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언젠가부터는 ‘까짓것, 한 번 창피당하고 말지’라고 생각할 만큼 예전보다 대범해졌다고 느낀다. 그런데 막상 여러 사람의 시선이 내게 모이면 얼굴이 달아오르고 등에 땀이 흐르며 심장이 조금 빨라진다. 말하기 전부터 몸에 힘이 들어가고 호흡도 달라진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몸은 괜찮지 않은 것처럼 반응한다. 그럴 때면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몸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릴 때부터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내 몸의 움직임과 말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시선이 오래 머무는 순간이면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먼저 살피곤 했다. 내가 말을 잘하고 있는지, 움직임이 어색하지 않은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지 생각했다. 어떤 순간에는 실제로 누군가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을 수도 있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상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시선을 기억했고, 비슷한 상황이 오면 다시 몸을 긴장시켰다. 머리로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해도 몸은 그 상황을 다시 만난 것처럼 반응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긴장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아직도 이런 반응을 하는지 스스로를 탓했고, 시간이 이만큼 흘렀는데도 왜 몸은 예전의 나를 놓아주지 않는지 답답해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몸의 기억이 머리의 기억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기억이라고 하면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할 수 있는 기억이다. 하지만 몸의 기억은 반드시 떠올리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장소에 들어섰을 때 이유 없이 불편해지거나, 특정한 소리를 들었을 때 몸이 먼저 움츠러들거나,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는데도 손이 어느 정도는 그 순서를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기억한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몸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몸은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과거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나에게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는 몸도 그랬다. 나는 지금의 나와 예전의 나를 어느 정도 구분해서 생각하고 있었지만 몸은 그렇게 구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지나치게 신경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이 쌓였고 사람들도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를 오래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의 실수가 내 인생을 결정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은 조금씩 편해졌다. 하지만 몸에는 오래 반복된 긴장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 앞에 서면 몸이 먼저 주변을 살피고, 말하기 전에 힘을 주고, 땀을 흘렸다. 내가 달라졌다는 것을 몸이 아직 완전히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몸이 과거에 붙잡혀 있다고만 말할 수도 없다. 몸은 두려움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서 해온 움직임은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알고, 오랫동안 해온 일은 머리로 순서를 떠올리지 않아도 손이 움직인다. 익숙한 사람 곁에서는 몸이 편안해지고, 낯선 공간에서는 몸이 먼저 긴장한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놓이고, 익숙한 길을 걸을 때는 주변을 하나하나 의식하지 않아도 발이 길을 따라간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특별한 기억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어쩌면 이것도 몸이 살아온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사랑도 몸에 남는다. 어릴 때 누군가가 나를 안아주었던 감각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사람의 손길에 편안함을 느끼는 몸은 그 시간을 어딘가에 품고 있을 것이다. 아플 때 곁을 지켜준 사람의 목소리나 익숙한 사람의 손길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도 그렇다.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와 문장으로 기억하지만 몸은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긴장이 풀리고,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고, 말하지 않아도 편안해지는 순간이 있다. 몸은 그런 경험도 잊지 않는다.


몸이 기억하는 것은 결국 사건 하나하나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긴장하며 살아온 사람의 몸에는 긴장이 하나의 습관처럼 남을 수 있고, 오랫동안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온 사람은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기색을 몸으로 먼저 알아차릴 수 있다. 오랫동안 몸을 사용해 일을 해온 사람의 손은 그 일을 생각하기 전에 움직인다. 몸은 반복된 삶을 자기 안에 받아들여 어느 순간 그것을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만든다. 그래서 몸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단순히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지금의 나를 움직이는 방식으로 바꾸어 놓는다.


나는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내 몸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긴장하는 몸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사람들 앞에서 땀을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했고, 떨리지 않는 몸이 더 좋은 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응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내 몸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긴장하는 법을 배웠다. 물론 이제는 그 긴장이 예전만큼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몸에게 그것을 잊으라고 명령한다고 해서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몸은 생각보다 천천히 배운 것을 내려놓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긴장하는 내 몸과 싸우기보다 그 몸을 조금 기다려주려고 한다. 사람들 앞에서 땀이 나면 ‘또 왜 이러지’라고 생각하기보다 몸이 아직 긴장하고 있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마음이 대범해졌는데 몸이 따라오지 않는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마음이 먼저 변하고 몸이 나중에 따라올 수도 있다. 때로는 몸이 먼저 반응하고 마음이 그 이유를 나중에 알아차릴 수도 있다. 인간은 생각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은 생각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감각과 습관과 반응 속에도 남아 있다.


그러고 보면 몸은 내가 잊어버린 것을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배운 것을 기억하기도 한다. 두려움을 기억하고 익숙함을 기억하며, 상처를 기억하고 사랑을 기억한다. 어떤 기억은 나를 움츠러들게 하지만 어떤 기억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어떤 기억은 지금도 나를 붙잡지만 어떤 기억은 지금의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몸은 과거를 그대로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라 지나온 경험을 현재의 삶 속에서 다시 사용하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사람들 앞에 서면 긴장한다. 아마 앞으로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긴장을 부끄러워하기보다 내가 살아온 시간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했던 시간도 내 삶이었고, 그 두려움을 조금씩 넘어온 시간도 내 삶이었다. 몸은 그 두 시간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몸의 기억을 없애는 것이 반드시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고, 그 기억과 함께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몸은 기억한다. 그러나 몸의 기억은 과거에 머물러 있기 위한 기억만은 아니다. 지나온 경험은 몸에 남아 나의 반응이 되고 습관이 되고 때로는 힘이 된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몸 안에 품고 살아간다. 내가 잊은 시간도,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험도, 오래 반복한 삶의 방식도 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렇다면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기억하는 이야기만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왜 어떤 순간에는 편안하고 어떤 순간에는 긴장하는지, 내 몸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몸을 이해한다는 것은 지나간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품은 몸과 함께 지금의 나로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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