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는 왜 살아온 시간이 남는가

몸, 인간에게 다시 묻다 04

by호시우행

거울을 보다가 문득 낯선 얼굴을 만날 때가 있다. 매일 아침 들여다보던 얼굴인데도 어느 날은 눈가에 생긴 작은 선 하나가 유난히 눈에 들어오고, 예전보다 깊어진 이마의 주름이나 조금 처진 눈꺼풀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얼굴이 갑자기 변한 것은 아닐 텐데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게 보던 것이 오늘은 선명하게 보인다. 손을 씻다가 손등을 바라볼 때도 그렇다. 어린 시절의 손과 지금의 손은 같은 사람의 손인데도 모양이 다르고 피부의 느낌도 다르다. 예전에는 손을 보면 그저 손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안에 지나간 시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몸은 시계처럼 시간을 알려주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조용히 자기 안에 남겨둔다.


어린 시절의 사진을 꺼내 보면 그 사실이 더 분명해진다. 사진 속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인데도 전혀 다른 몸을 하고 있다. 얼굴은 작고 손은 가늘며 걸음에는 지금과 다른 힘이 있다. 그때의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갈지 몰랐고, 지금의 내가 그 몸을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진 속 몸을 보고 있으면 오래 전의 내가 단순히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몸 안에도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아이가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내가 생긴 것이 아니라, 그때의 몸이 자라고 변하고 상처를 입고 회복하는 시간을 지나 지금의 몸이 된 것이다. 몸은 과거를 뒤에 남겨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자기 안에 품은 채 변해간다.


기억은 모든 것을 보관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에 누구와 놀았는지, 어느 날 어떤 말을 들었는지, 어떤 길을 걸었는지 대부분은 잊어버린다. 한때는 중요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분명하게 기억한다고 생각했던 장면도 다른 기억과 섞이거나 조금씩 달라진다. 그런데 몸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남아 있을 때가 있다. 어릴 때 넘어져 생긴 작은 흉터를 보면 그때의 장면은 잘 떠오르지 않는데도 그 일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몸이 증명하고 있다. 오래 반복한 동작은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알고 있고, 한동안 하지 않았던 움직임도 어느 순간 몸이 기억해내기도 한다. 머리는 잊었는데 몸은 잊지 않은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기억이라는 것이 반드시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몸에 남는 것은 특별한 사건만이 아니다. 매일 반복한 작은 행동들도 몸을 바꾼다. 오래 걷다 보면 걸음에는 자기만의 리듬이 생기고, 같은 자세로 오랜 시간을 보내면 몸은 그 자세에 익숙해진다. 어떤 일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에게는 그 일에 맞는 움직임이 생기고, 어떤 습관을 오래 반복한 사람에게는 그 습관이 몸의 자연스러운 일부처럼 남는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해야 했던 행동이 시간이 지나면 생각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은 몸이 반복된 시간을 자기 안에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몸이라고 부르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던 모습만이 아니라 살아오면서 조금씩 만들어진 모습이기도 하다. 몸은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나에게도 그런 흔적들이 있다. 어릴 때부터 움직임이 쉽지 않았던 몸은 다른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못했고, 그래서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몸을 먼저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 번 움직이고 멈추고 다시 움직이는 동안 쌓인 작은 경험들이 어느새 몸의 방식이 되었다. 예전에는 그것을 모두 불편함으로만 생각했다. 왜 나는 다른 사람처럼 움직이지 못할까, 왜 나는 같은 일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를 생각하면서 내 몸의 느림을 부족함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느림 속에도 수많은 시간이 들어 있다. 몸은 오랫동안 반복해서 살아온 방식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 움직임은 내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몸의 흔적을 바라보는 일은 조금 이상한 경험이 된다. 흉터를 보면 다쳤던 순간이 떠오르고, 굳어진 손가락을 보면 오랫동안 반복했던 일이 생각나며, 예전과 달라진 걸음걸이를 느끼면 그 사이에 지나간 세월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얼굴의 주름도 마찬가지다. 주름 하나가 특정한 사건 하나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얼굴이 수없이 많은 날을 지나왔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웃었던 날과 울었던 날, 긴장했던 날과 편안했던 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밤과 아무 걱정 없이 잠들었던 밤이 모두 얼굴의 변화에 조금씩 참여했을 것이다. 몸은 그런 시간을 하나씩 구분해서 보관하지 않는다. 모든 시간이 뒤섞여 하나의 몸이 된다.


그렇다고 몸에 남은 흔적을 모두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흔적은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변화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이가 들어 예전처럼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일은 단순히 시간이 남긴 아름다운 흔적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사고나 질병으로 몸이 달라진 사람에게 그 변화를 삶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잔인할 수 있다. 몸은 때로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변화를 남긴다. 우리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몸에 시간이 남는다는 사실은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살아간다는 일이 내가 원한 변화와 원하지 않은 변화를 함께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는 오랫동안 몸의 변화를 가능하면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느린 움직임은 빨라져야 하고, 불편한 부분은 고쳐져야 하며, 나이가 들어 생기는 변화도 가능하면 되돌리고 싶었다. 물론 몸을 돌보고 치료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몸을 끊임없이 고쳐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지금의 몸은 늘 부족한 몸이 되고, 아직 오지 않은 더 나은 몸을 기다리느라 현재의 몸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까지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으로 취급하게 된다. 몸의 변화는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너무 쉽게 변하지 않는 몸을 좋은 몸이라고 생각한다.


몸은 변하기 때문에 시간을 드러낸다. 어린아이의 몸과 노인의 몸이 다른 것은 어느 한쪽이 더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이에 살아온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도 스무 살의 몸과 오십 살의 몸이 같을 수 없다. 얼굴도 달라지고 힘도 달라지고 움직임도 달라진다. 그러나 몸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변화하는 몸을 계속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한 사람의 삶이 만들어진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의 몸이 수많은 시간을 지나 지금의 몸이 되었고, 그 시간의 연속이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몸은 기억보다 정직한지도 모른다. 기억은 때때로 과거를 아름답게 만들기도 하고, 불편한 일은 지워버리기도 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다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몸은 지나간 시간을 완전히 지울 수 없다. 몸이 모든 것을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살아온 시간이 몸을 변화시켰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내가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는 내 몸의 움직임과 표정과 자세와 피부에 조금씩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몸을 바라보는 것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오래된 사진 속의 나를 다시 바라볼 때면 가끔 그때의 몸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그때는 네가 이렇게 오래 살아갈 줄 몰랐겠지만, 너는 앞으로 수많은 시간을 지나게 될 것이라고, 지금은 알 수 없는 기쁨도 만나고 견디기 어려운 순간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이 결국 네 몸 안에 남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아이가 지금의 나에게 대답한다면 오히려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그 시간을 살았고, 네가 지금 보고 있는 몸은 내가 지나온 시간의 결과라고. 몸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 놓인 단순한 껍데기가 아니라, 두 시간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흔적이라고.


그러고 보면 몸은 시간의 저장소라기보다 시간의 흐름 그 자체에 가깝다. 몸은 과거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을 계속 현재로 가져온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남은 흉터도, 오랫동안 반복한 동작도, 나이를 먹으며 달라진 얼굴도 모두 과거가 현재의 몸 안에서 계속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살아가는 방식 역시 언젠가는 몸의 일부가 될 것이다. 지금의 표정과 걸음, 반복하는 습관과 몸에 익힌 움직임은 아직 오지 않은 나의 몸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몸의 변화를 예전처럼 서둘러 지우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변화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불편한 것은 불편하고, 아쉬운 것은 아쉽다. 다만 그 변화가 나와 무관하게 찾아온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과 함께 생겨났다는 사실을 조금은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몸에 남은 흔적은 내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시간을 지나왔다는 증거다. 몸이 변했다는 것은 무언가를 잃었다는 뜻만이 아니라 그만큼의 시간을 살아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몸에는 왜 살아온 시간이 남는가. 아마 몸이 시간 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몸과 분리해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루하루가 몸을 지나간다. 잠을 자고 일어나고, 걷고 쉬고, 웃고 울고, 아프고 회복하는 모든 순간이 몸을 조금씩 바꾼다. 결국 몸은 내가 살아온 시간과 나를 분리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가까운 증거다. 내가 누구였는지 모두 기억하지 못해도 몸은 내가 지나온 시간을 품고 있고, 지금의 몸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그 시간의 일부를 다시 만난다. 몸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을 품으며 지금의 내가 되어가는 것이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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