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무엇을 느끼는가

몸, 인간을 다시 묻다. 06

by호시우행

가끔 새벽에 잠이 깨면 다시 잠들지 않고 명상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집 안은 조용하고 바깥도 어둡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방바닥에 자리를 잡는다. 허리를 세우고 천천히 다리를 접는다. 잠시 숨을 고르면서 마음을 가라앉혀보려 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뜻밖의 문제가 생긴다. 양반다리가 되지 않는다. 다리를 접어보지만 한쪽 다리가 생각처럼 올라오지 않고, 골반도 편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조금 자세를 고쳐 앉으면 괜찮을 것 같다가도 금세 몸이 불편해진다. 명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내 몸부터 의식하게 된다.


명상을 하려고 했는데 몸이 먼저 말을 건다. 허리를 조금 세우면 허리가 긴장하고, 편하게 앉으려고 하면 자세가 무너진다. 다리를 억지로 접으면 불편하고, 다리를 풀어놓으면 이번에는 명상 자세가 마음에 걸린다. 결국 한참 동안 눈을 감고 마음을 들여다보려 했던 나는 다리와 허리와 골반이 어떤 상태인지 살피고 있다.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려고 앉았는데 몸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가만히 있으려고 할수록 몸이 더 많이 느껴진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


평소에는 몸의 움직임을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걷고, 앉고, 일어나고, 식사를 하고, 일을 하면서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일일이 살피지 않는다.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몸은 배경으로 물러난다. 나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몸이 그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앉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움직임이 줄어들자 오히려 몸이 가까워진다. 조금 굽어진 허리, 바닥에 닿은 다리, 무게가 실리는 엉덩이, 긴장된 어깨가 하나씩 느껴진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몸이 조용한 새벽에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양반다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주 사소한 일이면서도 몸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나는 머릿속으로는 쉽게 그 자세를 그릴 수 있다. 두 다리를 자연스럽게 접고 허리를 세운 채 눈을 감으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렵지 않을 수도 있는 자세다. 하지만 내 몸에서는 그 자세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다리가 접히는 정도가 다르고, 몸이 균형을 잡는 방식도 다르다. 조금 편하게 앉으려고 자세를 바꾸면 또 다른 곳이 불편해진다. 몸은 내가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모습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몸에는 몸의 방식이 있다.


그때 나는 몸을 억지로 고치려고 하기보다 조금 다르게 앉아본다. 다리를 편하게 놓고 허리를 세워보기도 하고, 벽에 등을 기대기도 한다. 양반다리를 하지 않아도 명상은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자세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몸을 가만히 두고 내 안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도 처음에는 방해처럼 느껴졌던 몸이 오히려 명상을 시작하게 해준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을 느끼고, 자세를 바꾸고, 숨을 고르는 사이에 나는 지금의 몸으로 돌아와 있다.


몸은 언제나 지금에 있다. 생각은 어제의 일로 돌아가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몸은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방바닥의 차가움도 지금 느끼고, 허리에 들어간 힘도 지금 느끼며, 다리가 눌리는 감각도 지금 느낀다. 몸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장 먼저 알려준다. 새벽의 조용한 방에서 눈을 감으면 오히려 그 사실이 분명해진다. 몸은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래서 명상은 마음을 비우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몸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양반다리가 되지 않는 것이 불편하다.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고, 몸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신경 쓰인다. 하지만 잠시 그대로 앉아 있으면 불편함도 조금씩 달라진다. 어느 부분에 힘이 들어갔는지 알게 되고, 힘을 조금 빼면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느낀다. 몸은 한순간의 모습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세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달라지고, 호흡 하나가 달라지면 몸의 느낌도 달라진다.


이런 경험을 하고 있으면 몸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몸을 안다는 것은 몸의 모양이나 기능을 정확하게 아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몸이 어떤지 느끼는 일도 몸을 아는 방법이다. 허리가 불편한지, 어깨에 힘이 들어갔는지, 다리가 눌리고 있는지, 숨이 편하게 들어오고 나가는지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조금씩 내 몸에 가까워진다. 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지금 몸에서 일어나는 작은 감각은 놓치고 살아갈 때가 많다.


우리는 몸을 움직일 때보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몸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발을 삐끗하면 갑자기 발의 존재가 선명해진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허리의 무게도 오래 앉아 있으면 느껴진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날에는 몸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몸은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불편함이 생기면 자신을 드러낸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몸을 바라본다.


하지만 몸을 바라본다는 것이 몸을 평가하는 일일 필요는 없다. 양반다리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가 내 몸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명상에 좋은 자세가 따로 있을 수 있지만, 그 자세를 완성하지 못한다고 해서 명상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내 몸이 지금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앉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몸을 다른 모습으로 만들기 전에 지금의 몸이 어떤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새벽에 명상을 하려고 방바닥에 앉을 때면 나는 여전히 양반다리를 해보곤 한다. 그리고 여전히 잘 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그 사실부터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왜 이것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냥 다리를 풀고 다른 자세로 앉는다. 허리를 세우고 숨을 천천히 들이마신다. 방 안의 고요함을 느낀다. 바닥에 닿아 있는 몸을 느낀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명상을 시작하려고 애쓰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는다.


결국 그 새벽에 내가 배우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몸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몸을 느낀다는 것은 몸을 끊임없이 고치려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몸을 알아차리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양반다리가 되지 않는다는 작은 사실은 내 몸 전체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어떤 몸으로 방바닥에 앉아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나는 그 몸으로 숨을 쉬고, 그 몸으로 고요한 새벽을 맞는다. 명상을 하려고 앉았지만 어쩌면 그 시간에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마음이 아니라 지금 여기 앉아 있는 내 몸이었는지도 모른다.




월, 목 연재
이전 06화몸은 살아온 경험을 반응과 습관으로 바꿔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