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나를 규정하는가

몸, 인간을 다시 묻다 03

by호시우행

처음 사람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얼굴의 표정, 눈빛, 말투, 걸음걸이, 몸의 움직임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첫 번째 단서가 된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듣기 전에 이미 그 사람의 몸을 만난다. 몸은 관계의 시작이고, 세상과 연결되는 첫 번째 통로다. 그러나 동시에 몸은 오해가 시작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보이는 모습이 한 사람의 전부처럼 받아들여지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일부만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그런 경험을 반복해서 만났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알기 전에 먼저 나의 몸을 보았다. 움직임의 방식과 말하는 속도, 표현하는 모습은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기 전에 나를 소개하는 첫 번째 이미지가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판단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은 원래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을 받아들인다. 문제는 첫 번째 정보가 마지막 판단이 될 때 생긴다.


몸은 나를 보여준다. 그러나 몸만으로 나를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걸음걸이는 볼 수 있지만 그 사람이 그 걸음으로 지나온 시간을 볼 수는 없다. 누군가의 표정은 볼 수 있지만 그 표정 뒤에 숨어 있는 수많은 고민과 감정을 모두 알 수는 없다. 몸은 삶의 흔적을 보여주지만 삶 전체를 대신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몸은 그 사람을 드러내는 하나의 문장이지만, 그 사람의 모든 이야기를 담은 바카라 전체는 아니다.


나는 오랫동안 몸이 나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 슬롯 안에서 내가 맡을 수 있는 역할까지 몸이 정한다고 느꼈다. 내 몸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조건이었고, 때로는 넘어가기 어려운 벽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나에게는 더 많은 준비와 시간이 필요했고, 어떤 순간에는 내가 가진 가능성보다 내가 가진 어려움이 먼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는 하나의 질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왜 나는 이런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질문은 조금씩 달라졌다. 정말 내 몸이 나를 결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몸을 바라보는 방식이 나를 제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몸을 좋은 몸이라고 생각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몸,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몸,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몸을 능력 있는 몸이라고 여긴다. 반대로 느린 몸,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몸,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몸은 부족한 몸으로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는 몸의 기능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늙어가는 순간 자신의 가치도 함께 잃어야 할 것이다. 질병을 만나거나 사고를 경험한 사람은 이전보다 덜 중요한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약해진 몸을 통해 한 인간의 깊이를 발견하고, 도움이 필요한 몸을 통해 관계의 의미를 배운다. 오래된 손에는 노동의 시간이 남아 있고, 굽어진 허리에는 가족을 위해 살아온 세월이 담겨 있으며, 주름진 얼굴에는 한 사람이 지나온 관계와 경험이 새겨져 있다.

몸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다. 몸은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몸을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몸은 나를 가두는 틀이 아니라 내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었다. 몸은 나의 가능성을 모두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나의 몸에는 쉽게 지나갈 수 없었던 순간들이 남아 있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경험들이 남아 있으며,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다시 앞으로 나아왔던 기억들이 남아 있다. 몸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었다.


그렇다고 몸이 나를 완전히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몸보다 크다. 그러나 몸보다 크다는 것은 몸을 벗어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몸을 깊이 이해할 때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더 잘 알게 된다. 인간은 몸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몸을 통해 존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젊은 몸도 언젠가는 늙고, 건강한 몸도 언젠가는 변화한다. 인간은 평생 같은 몸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하는 몸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어떤 몸이 더 완전한가가 아니다. 어떤 몸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들 것인가이다.

슬롯는 오랫동안 특정한 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몸, 정해진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몸,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몸에 맞춰 공간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그 기준에서 벗어난 몸은 불편한 몸이 되었고, 설명해야 하는 몸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몸이 아니다. 문제는 하나의 몸만을 정상이라고 여기는 우리의 생각이다.


자연에는 같은 모습의 생명이 없다. 나무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라고, 꽃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피어난다. 생명의 세계에서 차이는 결함이 아니라 다양성이다. 인간의 몸 역시 그러하다. 서로 다른 몸은 인간 슬롯의 부족함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가진 다양한 모습이다.


도움이 필요한 몸은 약한 몸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와 연결될 가능성을 가진 몸이다.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몸은 부족한 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을 보여주는 몸이다.


나는 이제 내 몸을 이전과 다르게 바라본다. 내 몸은 나를 가두는 벽이 아니다. 내 몸은 내가 살아온 시간이며, 내가 세상과 만나는 방식이다. 몸은 나를 규정한다. 그러나 나를 가두지는 않는다. 몸은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이지만, 그 언어 안에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이 담겨 있다.


결국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몸을 판단하는 일이 아니라, 그 몸이 지나온 시간과 그 안에 담긴 가능성을 함께 바라보는 일인지 모른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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