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퇴사할 때가 돼서야 솔직해질까

같이 일할 때는 왜 서로의 마음을 묻지 않았을까

byyour philosophy

2년을 함께 일한 상사와 가장 솔직한 대화를 나눈 건, 그가 회사를 떠나기로 한 뒤였다.


무엇이 힘들었는지.

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는지.

그동안 무엇을 바꾸고 싶었는지.


매일 회의하고, 수십 개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묻지 않았던 이야기를 우리는 퇴사를 앞두고서야 처음 나눴다.


왜 이런 이야기는 늘 너무 늦게 시작될까.



나는 화가 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주 전, 나는 회의실에서 결국 터졌다.

열 명이 넘는 팀원이 보는 앞에서 상사에게 따져 물었다.

“A님은 그동안 뭘 하셨나요?”

“유관 부서장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만나보셨어요?”

“본인도 못 하는 걸 직원들에게만 하라고 하면 어떡해요?”


몇 달째 일이 막혀 있었다.

실무자끼리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했는데, 위에서는 계속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라고 했다.


그날은 참지 못했다.

말을 쏟아내고 나서야 회의실의 공기가 얼어붙은 걸 느꼈다.


그날 밤부터 이직 사이트를 뒤졌다.

후련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생각했다.

나는 필요한 말을 한 걸까.
아니면 그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걸까.



침묵은 괜찮다는 뜻이 아니었다


2주쯤 뒤, 외근을 가며 우연히 같은 택시를 탔다.

솔직히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택시가 출발하자 상사가 먼저 말했다.


“요즘 날씨가 참 좋네요.”


그날의 일은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날씨와 일상 이야기를 조금 나눴다.

그러다 문득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고, 웃음도 짧았다.

대화가 끊기자 우리는 각자 창밖을 바라봤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그도 자기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 뒤, 동료에게서 그의 퇴사 소식을 들었다.

순간 택시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제야 조금 이해됐다.

왜 그날 나를 질바카라하지 않았는지.

왜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는지.

그는 이미 끝을 정한 사람이었다.


나는 달랐다.

여전히 화가 났다.

‘이건 아니잖아.’

‘바꿔야 해.’

라고 말할 힘이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내가 회의실에서 소리를 질렀던 것도 역설적으로 아직 이곳에서 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기대가 남아 있으니 화도 났다.

반면 그는 너무 오래 버틴 끝에 기대를 내려놓은 뒤였는지도 모른다.


그때 알았다.

분노는 아직 애정이 남아 있다는 신호일 수 있고,
침묵은 이미 마음이 떠난 신호일 수도 있다는 것을.



2년 만에 처음 물었다


퇴사하기 전, 우리는 따로 카페에서 만났다.

내가 먼저 사과했다.

“그때 A님 마음을 너무 몰랐던 것 같아요.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씀드려서 죄송해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OO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어요.”


그리고 잠시 뒤 말했다.

“저도 너무 지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날 처음 들은 이야기가 많았다.

무엇을 바꾸고 싶었는지.

어디에서 지쳤는지.

왜 더 이상 싸울 힘이 남지 않았는지.


2년을 함께 일했는데 나는 그제야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출근하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오래 남아 있던 화가 이상할 만큼 빠르게 사라졌다.

대신 생각했다.

사람은 상대를 잘 몰라서 미워하는 경우가 많구나.


그 사람이 들고 있던 짐을 조금 알게 되면 마음의 모양이 달라진다.

‘아, 그랬구나.’

‘그 사람도 나처럼 힘들었구나.’


이해한다고 해서 상대의 모든 행동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미워할 이유는 조금 줄어든다.



같이 일할 때 왜 묻지 않았을까


그와 헤어진 뒤 계속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이런 이야기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일이 꼬였을 때 서로를 탓하기 전에,

“나 요즘 좀 힘들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고 문제가 해결됐을 것 같지는 않다.

막힌 협업이 갑자기 풀리고, 숫자가 좋아지고, 조직의 문제가 사라졌을 리도 없다.


그래도 조금은 덜 외롭게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힘들 때 잠시 동료라는 큰 나무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

다시 문제와 싸울 힘을 얻을 수는 있지 않았을까.


회사에서는 늘 일에 대해 묻는다.

“어디까지 됐어요?”

“언제 끝나요?”

“왜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질문은 잘 하지 않는다.

“요즘 괜찮아요?”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면서도 정작 서로의 마음을 묻는 일에는 인색하다.

그리고 누군가 퇴사를 결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묻는다.

왜 힘들었는지.

왜 떠나는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는지.


어쩌면 그 질문을 조금만 일찍 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같은 편이었는데, 서로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 몰랐다.



일이 꼬일수록, 사람을 먼저 본다


그 일을 겪은 뒤로 나는 누군가가 미워질 때 다르게 행동하려고 한다.

바로 문제를 지적하기보다 따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일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주말에는 뭘 하는지.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신기하게 그 사람이 조금씩 보인다.

왜 그렇게 예민했는지.

무엇 때문에 불안했는지.

무엇을 지키려고 그렇게 애쓰고 있었는지.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된다.

우리가 사실 다른 편에 서 있었던 게 아니라는 것을.


인간관계에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상대를 조금 궁금해하는 마음.

그리고 먼저 다가갈 작은 용기.

어쩌면 그 정도면 된다.


그래서 이제는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조금 더 일찍 묻고 싶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퇴사할 때가 돼서야 듣게 될 이야기를,

같이 일하고 있을 때 늦지 않게 들을 수 있도록.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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