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회사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찾게 된 이유
13년 차 실장.
네 번 이직했다.
첫 이직 이후 약 6년 동안 받은 채용 제안은 200건 가까이 된다.
한때는 솔깃한 제안만 와도 마음이 흔들렸다.
그런데 요즘은 좀처럼 이직하고 싶지 않다.
일이 재미없어진 것도 아니고, 지금 회사가 특별히 좋아진 것도 아니다.
한때는 떠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리던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이직병이 나은 걸까.
첫 회사를 그만두기까지는 3년 넘게 고민했다.
전략기획실에서 하루 12시간씩, 주 6일을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일하면서도 회사를 나가지 못했다.
여기를 나가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았다.
힘들다는 생각보다 그 불안이 더 컸다.
그러다 서른 살이 되던 해였다.
어느 날처럼 야근을 마치고 새벽 2시쯤 택시를 타고 집에 가고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기 싫다.'
그날 이후 마음이 급격히 기울었고, 2주 뒤 회사를 그만뒀다.
첫 이직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라기보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어서 한 선택에 가까웠다.
그런데 막상 회사를 나와보니 세상은 생각보다 넓었다.
스타트업으로 옮겼고, 이후에는 생각보다 자주 이직했다.
보통 2년쯤 지나면 맡은 일에 권태를 느꼈다.
조직에 대한 불만도 쌓였다.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곳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두 번째 이직부터는 직접 지원하지 않아도 다양한 제안이 들어왔다.
관심 있는 산업, 해보고 싶은 서비스, 더 좋은 처우.
적극적으로 이직을 생각하지 않다가도 솔깃한 제안을 받으면 마음이 흔들렸다.
첫 이직이 살기 위해 떠난 선택이었다면, 그다음부터는 더 잘 살기 위해 옮기는 선택에 가까웠다.
13년 동안 네 번 이직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의 첫 인사가 “너 아직 거기 다녀?”였을 정도로, 주변에서는 나를 프로 이직러로 알았다.
한창 이직을 자주 하던 30대 초반에는 한 온라인 게임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여행자 같았다.
떠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리는 사람처럼.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이직병이 거짓말처럼 나았다.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싶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안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지금 회사의 조건이 나쁘지 않은 것도 한몫한다.
결정권이 큰 편이고, 근무 형태도 비교적 자유롭다.
그런데 가장 솔직한 이유는 따로 있다.
다른 회사에 간다고 지금의 불만이 크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지금도 회사생활이 쉽지는 않다.
여전히 사람 때문에 힘들고, 높은 직바카라이 주는 바카라임과 실적 압박도 부담스럽다.
예전에는 동료들과 웃고 떠들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은데, 직바카라이 올라가니 그마저도 쉽지 않다.
사람을 평가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조직 정치까지 신경 써야 한다.
가끔은 꽤 외롭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어려움이 어느 정도 회사생활의 기본값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사람이 싫으면 이직했고, 일이 재미없어지면 이직했다.
더 나은 대우를 제안받으면 옮길 이유가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다른 회사에 가도 사람은 있고, 바카라임은 있고, 조직의 이해관계는 있다.
물론 회사를 바꾸면 해결되는 문제도 있다.
부당한 대우나 건강을 해치는 근무환경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회사를 옮겨도 다시 마주하게 될 것들이 있다.
그런 문제는 새로운 회사에 간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회사생활을 하면서 몇 가지 실험을 해봤다.
나는 통제감이 중요한 사람이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는 점이 컸다.
갑자기 바뀌는 일정, 예상하지 못한 문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
내가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회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내 뜻대로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부분은 인정하되, 회사 밖의 시간이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면 어떨까.
아침에 일어나 내가 원하는 시간을 보내고 출근했다.
회사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일까지 붙잡고 괴로워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려고 했다.
퇴근한 뒤에도 내가 상상하는 삶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거창한 변화는 아니었다.
그저 내가 정한 루틴을 만들고, 가능한 한 지키는 것.
그렇게 지내보니 나와 내 삶에 대한 만족도가 조금씩 높아졌다.
신기하게도 회사에 대한 불만도 많이 사그라들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조금씩 살아내고 있다는 감각이 생기니, 회사가 내 삶을 전부 결정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회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내가 느끼는 모든 불만의 원인이 회사에만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해결의 단서도 꼭 회사나 일에만 있지는 않을 수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그것을 일상에서부터 조금씩 실천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이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묻게 된다.
지금 회사가 싫은 걸까.
일 자체가 싫어진 걸까.
아니면 회사원으로 사는 방식이 싫어진 걸까.
우리는 보통 이 세 가지를 구분하지 않고 말한다.
“일하기 싫다.”
“퇴사하고 싶다.”
“이직해야겠다.”
그런데 무엇이 싫은지에 따라 답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상사나 조직문화가 문제라면 회사를 바꾸는 것이 답일 수 있다.
맡은 일이 더 이상 맞지 않는다면 직무를 바꾸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시간과 장소를 스스로 정하고, 일의 방향과 바카라임을 직접 선택하는 삶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이제 세 번째에 더 가까워진 것 같다.
회사나 일이 싫다기보다, 회사원으로 사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내가 원할 때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도 일하고 싶다.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면 내가 일정을 조정해 달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이 잘되지 않을 때도 내가 바카라임지겠지만, 적어도 내 이름으로 기억되고 나보다 더 오래 남는 일을 하고 싶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두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회사 밖의 삶에도 다른 종류의 불안과 바카라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이직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불만을 피하기 위해 다른 회사로 옮기기보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실제로 일해보는 경험을 먼저 쌓고 있다.
회사 밖에서 작은 일을 시작해보고,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바카라임지는 생활이 정말 나에게 맞는지 확인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본 뒤에도 이 삶을 원한다면, 그때는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회사를 떠나는 것이든,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이든.
어쩌면 내가 더 이상 이직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회사를 좋아하게 돼서가 아니다.
이제는 회사를 바꾸는 것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싶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