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도 내 시간을 지키기 위해 해둔 것들
13년차에 실장이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휴직을 결정하면서 이미 알고 있었다.
돌아가면 지금의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실장으로 복귀하지 못할 수도 있고, 어쩌면 다시 팀원으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출산을 망설였느냐고 묻는다면, 이상하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나는 실장이 될 만큼 커리어에 진심이었지만,
출산을 미룰 만큼 커리어가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기 전 남편과 재미 삼아 계산해본 적이 있다.
아이에게 직접 들어가는 돈뿐 아니라, 육아 때문에 줄어드는 소득과 시간을 기회비용으로 환산해봤다.
우리 기준으로 계산하면 한 달에 천만 원을 훌쩍 넘었다.
연간 비용을 자산 수익률 4%로 환산해보니 수십억 원짜리 자산에서 나오는 현금흐름과 맞먹었다.
아이 한 명을 키운다는 게 어쩌면 아파트 한 채를 품고 사는 것보다 더 비싼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아찔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했다.
그렇게 손익을 따지면 아이는 애초에 낳을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비효율적인 일을 계속해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처음부터 손익의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대차대조표에 적히지 않는 항목이 있다.
그리고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의외로 그쪽에 많다.
나는 아이를 낳는 선택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중에 힘들어진 어느 날
“아이 때문에 내 커리어를 포기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꽤 오래전부터 준비했다.
육아휴직을 했지만 낮 시간의 육아를 모두 내가 맡지는 않는다.
도움을 받는다.
누군가는 육아휴직 중인데 왜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처음부터 계획한 일이었다.
나에게 육아휴직은 아이를 돌보기 위한 시간이면서,
동시에 13년 동안 쉬지 않고 회사생활을 한 내가 다음 10년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계속 마음속에 품었던 일이 있었다.
내 콘텐츠를 만들고,
내 상품을 만들고,
언젠가는 회사 밖에서도 혼자 설 수 있는 일을 만드는 것.
회사에 다니면서도 조금씩 해왔지만 늘 가장 부족했던 것은 시간과 에너지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처음으로 내 시간을 꽤 많이 여기에 쓸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육아휴직이라는 명분이 생긴 것도 조금 좋았다.
그냥 1년의 갭이어를 갖겠다고 했다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시 멈춰도 되는 공식적인 이유가 생겼다.
나는 그 시간을 멈추는 데 쓰기보다 다음으로 넘어가는 데 써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육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가 생기고 가장 희소해진 것은 돈보다 시간이었다.
그래서 가능한 범위에서 시간을 돈으로 샀다.
육아를 도와줄 사람을 구하고,
내가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이게 가능했던 것도 사실 하루아침의 결정은 아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몸값을 올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더 많이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내가 일하지 않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고,
필요하면 다른 사람의 시간을 살 수 있고,
복직한 뒤에도 육아를 이유로 일을 포기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을 정도의 조건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소득을 높이고, 자산을 만들고, 돈을 모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사전에 준비했던 것은 돈 자체라기보다
‘내 시간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유’였던 것 같다.
경제적인 준비가 없었다면 육아휴직 기간에도 조급했을 것이다.
도움을 받는 비용이 아까웠을 것이고,
복직 여부를 선택할 때도 훨씬 많은 조건에 끌려다녔을 것이다.
그래서 커리어와 육아를 완전히 반대편에 놓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13년 동안 커리어를 열심히 쌓았던 것이 오히려 지금 육아에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몸값을 높여놓았기에 도움을 받으면서 일하는 선택이 가능하고,
경험을 충분히 쌓아놓았기에 잠시 쉬더라도 모든 것이 사라질 것 같은 불안이 덜하다.
그리고 이제는 회사가 내 자리를 언제까지 보장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회사 밖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커리어를 준비한 것이 결국 육아를 준비한 일이기도 했던 셈이다.
물론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한다.
시간을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도,
회사 밖에서 통하는 나만의 일도,
조금 더 일찍 만들어놓았다면 지금 더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이를 보면서
‘너 때문에 내가 못 했다’는 마음은 갖고 싶지 않다.
그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의 내 시간은 계속 지켜나가고 싶다.
아이를 낳고 나니 이상하게 40대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커리어를 생각하면 주로 다음 직급이나 다음 회사를 떠올렸다.
지금은 질문이 달라졌다.
나는 40대에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가.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남편과의 관계도 지키고 싶다.
엄마나 온라인 게임인이라는 역할을 빼고도
‘나’라는 사람이 즐거운 일을 계속 가지고 싶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다.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욕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
그 욕심을 감당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필요하면 미리 준비하고,
시간이 필요하면 도움을 사고,
회사 하나에 삶 전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내 일을 만들고,
가족과 일 사이에서 계속 선택해야 한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쪽으로 조건을 바꿔놓는 것.
내가 준비하고 싶은 것은 완벽한 워킹맘의 삶이 아니다.
대신 무엇을 선택하든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가깝다.
나중에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아이를 탓하지 않고,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때 회사를 탓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했을 때 남편이나 과거의 나를 탓하지 않도록.
그래서 지금 나는 육아를 하면서 동시에 다음 삶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워킹맘이 되기 위해 가장 오래 준비한 것은
육아 기술도, 완벽한 일정표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아이를 낳은 뒤에도 내 삶을 계속 선택할 수 있도록
돈과 시간과 커리어의 선택지를 만들어두는 것.
아이도 내 인생이고,
일도 내 인생이고,
그 둘 사이에 있는 나 역시 내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