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커리어인데, 왜 나 혼자 결정할 수 없을까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았다.
내 커리어는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결혼 전까지 이직은 비교적 단순했다.
연봉이 얼마나 오르는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성장할 수 있는 회사인지.
조건이 마음에 들면 내가 결정하면 됐다.
야근이 많아도 내가 감당하면 됐고,
출퇴근이 멀어도 내가 견디면 됐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자 모든 조건 뒤에 새로운 질문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면 아이는 누가 보지?”
내가 늦게까지 일하는 날에는 남편이 일찍 와야 한다.
남편에게 중요한 일정이 생기면 내가 시간을 비워야 한다.
둘 다 바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내가 출퇴근이 한 시간 더 걸리는 회사로 이직하면
그것도 더 이상 내가 한 시간을 더 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침에 아이를 데려다줄 사람,
저녁에 데려올 사람,
갑자기 아플 때 병원에 갈 사람까지 다시 정해야 한다.
예전에는 커리어의 조건표에 없던 항목들이다.
연봉.
직급.
업무.
성장 가능성.
그리고 이제는 그 옆에
출퇴근 시간, 유연근무, 배우자의 일정, 돌봄 비용, 아이와 보낼 시간이 같이 올라온다.
커리어를 계산하는 공식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결국 가족에게 주어진 시간과 체력과 돈을 두 사람의 일과 육아 사이에 계속 나누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맞벌이 시대의 커리어가 개인전이라기보다 단체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예전의 나는 좋은 기회가 오면 이렇게 물었다.
“내가 이걸 잡을 것인가.”
이제는 하나를 더 묻는다.
“우리가 이 기회를 감당할 수 있는가.”
이게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현실적으로 느끼는 부분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동시에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고,
동시에 야근과 출장을 마음껏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한 사람이 계속 멈춰 있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나는 오히려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때는 내가 조금 더 달릴 수 있다.
그때 남편이 가족의 시간을 조금 더 받쳐줄 수 있다.
반대로 남편에게 중요한 기회가 왔을 때는 내가 한발 더 움직일 수도 있다.
그리고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은 시기에는 돈을 써서 제3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것이 한 사람의 영구적인 희생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한 번 양보한 사람이 계속 양보하고,
한 번 육아를 많이 맡은 사람이 계속 육아를 맡게 되면
단체전은 금방 한 사람의 경기와 한 사람의 지원으로 바뀐다.
특히 출산 이후에는 그 역할이 너무 쉽게 엄마에게 고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의식적으로 묻게 된다.
지금은 누구의 시간에 조금 더 투자할 것인가.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균형을 돌려놓을 것인가.
나는 육아를 하면서 도움을 꽤 적극적으로 받는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누군가는 육아를 직접 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아깝지 않냐고 묻기도 한다.
물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중요하다.
그런데 나에게는 내가 계속 일할 수 있는 시간도 중요하다.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 돈은 단순히 소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내는 수단이 되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일을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내가 내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남편 역시 자기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예전에는 돈을 많이 벌면 무엇을 살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요즘은 오히려 얼마나 내 시간을 지킬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커리어를 열심히 쌓아온 이유 중 하나가 결국 여기에도 있었다.
맞벌이를 하면 가끔 이상한 질문에 부딪힌다.
둘 중 누가 더 많이 버느냐.
누구의 일이 더 안정적이냐.
누구의 커리어가 더 유망하냐.
그리고 그 답을 기준으로 한 사람의 커리어를 우선순위에 놓으려고 한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합리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의 긴 시간을 생각하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금 연봉이 높은 사람이 앞으로도 항상 더 많이 벌 거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 작은 기회가 몇 년 뒤 어떤 커리어가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한 사람이 계속 자신의 일을 뒤로 미루면
그 비용은 통장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자존감이나 관계,
상대에 대한 원망처럼 다른 곳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건
누구의 커리어가 더 중요한지를 결정하는 것보다
두 사람의 커리어가 모두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에 가깝다.
20대에는 커리어가 잘 풀린다는 말을 들으면 먼저 승진과 연봉을 떠올렸다.
더 좋은 회사에 가고,
더 큰 일을 하고,
더 많이 벌면 커리어가 잘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좋은 기회가 와도
그 일을 하는 동안 내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같이 본다.
아이와 보낼 시간은 얼마나 남는지.
남편도 자기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
우리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도 내가 그 일을 정말 원하는지.
어쩌면 커리어를 보는 눈이 좁아진 게 아니라
오히려 넓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만 보던 시절에는 ‘좋은 일’을 골랐다면,
지금은 그 일을 포함한 ‘좋은 삶’을 고르고 싶어졌다.
결혼 전까지 커리어는
“나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질문이 달라졌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일하며 살 것인가.”
맞벌이 시대의 커리어는 개인전이 아니다.
한 사람이 가장 빨리, 가장 멀리 가는 게임도 아니다.
서로의 중요한 시기를 알아보고,
때로는 밀어주고 때로는 기대면서
둘 다 자기 일을 오래 가져갈 수 있게 만드는 단체전이다.
그리고 어쩌면 좋은 팀의 기준은
누가 더 많이 희생했느냐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어느 누구도
‘나는 너 때문에 내 삶을 포기했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