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의 목줄을 잠시나마 내려놓았던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지독하게 몸살을 앓았다. 손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에서 찬 바람이 계속 나갔다. 뱀처럼 차가운 기운이었다. 내 안의 얼음이 녹아 질퍽거리는 눈이 되고 있었다. 나는 녹고 있었다.
사람들이 "넌 엄마한테 화도 안 나냐?"라고 물을 때마다 “괜찮아. 상관없어.”라며 쿨한 척 넘기곤 했다. 그런데 속으로는 늘 생각했다. 왜 난 엄마에게 분노가 일지 않는 것일까. 그날 알았다. 내 안에 있던 것은 뜨겁고 사나운 감정이 아니라 무서워서 얼어붙은 공포였다. 사랑스럽지 못한 나는, 언제고 다시 버려질지 모른다며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그냥 힘들었던 건 아닐까. 내 손에서 목줄이 저절로 빠져나간 것처럼. 엄마에게도 내 손을 움켜쥐고 있을 만한 그 힘이 다 빠져버렸던 건 아니었을까.’
퇴직금을 다 쓴 지 오래고 빚은 계속 쌓여 갔다. 쉬면 나을 줄 알았지만, 쉴수록 나는 더 깊이 땅으로 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누가 나 좀 도와줬으면.’
그러다가 평생을 따라다닌 '의지하면 안 된다'라는 그 생각이 이내 그 혼잣말을 거뒀다. 나는 늘 누군가를 돕고 싶어 했다. 사실은, 누가 날 좀 도와줬으면 했던 건데, 난 반대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힘들 때 집에서 가장 무능했던 동생이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나를 돕기 시작했다. 우린 함께 버려졌지만 서로 다르게 컸다. 난 무엇이든 하려고 했고, 동생은 무엇이든 안 하려고 했다. 보기에는 정반대의 모습이었지만 사실 같은 뿌리에서 아프게 자란 우린 동지였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동생을 참 많이 무시했다.
엄마도 그랬을까? 일가친척 하나 없이, 친구도 없이 그렇게 살아온 엄마. 혼자였을 한 여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 말을 하지 못했을 여자. 꽃잎이 목줄을 떨군 날, 나는 내가 바로 엄마의 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엄마가 딸을 버렸다. 버려진 딸은 자신과 닮은 파양견을 다시 버리려 했다. 나는 이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엄마와 아주 끈적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버려지고, 또 버리는 슬프면서도 잔인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내 바카라상에는 엄마가 늘 앉아 있었다. 벽면 바카라장에는 빨간 머리 앤의 원작 그린게이블즈 앤 전집과 금박 글자로 제목이 인쇄된 릴케 시집들, 박경리의 토지 전집을 비롯한 세계문학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창문을 열면 내 이마 위로 마당의 바닥이 보였고, 햇빛이 들어와 방안이 뽀얗게 번졌다. 엄마가 앉아 있는 그 반지하방은 이상하리만큼 아름다워 보였다. 같은 방이지만 내가 앉아 있을 때랑은 달랐다. 미니는 그 방에서 오줌을 쌌는데, 신문지 위로 늘 오줌이 흘러넘쳤다. 장판도 군데군데 찢겨 시멘트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런데도 엄마가 앉아 있으면 그 방이 예뻐 보였다.
엄마는 바카라상에 앉아서 늘 글을 썼다.
"엄마, 엄마 글씨는 왜 이렇게 예뻐?"
"난 한석봉의 후손이거든."
엄마는 친구가 없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엄마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왜 다들 날 함부로 대하지?"
그런 엄마에게 유일한 친구가 있었는데 우린 그 사람을 이모라고 불렀다. 엄마는 그 이모에게 자주 편지를 썼다. 엄마는 주로 꽃 사진이 은은하게 들어가 있는 편지지와 안이 반쯤 보이는 유선지 봉투를 썼다. 엄마는 보내는 사람 칸에 본명을 쓰지 않고 한은진이라고 적었다. 본인의 이름이 촌스럽다는 이유였다. 라디오 사연을 보낼 때도 엄마는 한은진이었다. 한은진 씨는 늘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어렸을 때 조용해서 뭐 하나 보면, 현관문 앞에서 바카라을 읽고 있었어. 한겨울에도 그러고 있어서 발이 차디찼지. 양말을 신겨 방에 데려다 놓으면 도로 거실로 나가서 양말을 훌러덩 벗어던져. 그리고 봤던 바카라을 또 보고, 또 보고 했어. 인형, 장난감 그런 거엔 관심도 없었어."
나는 이때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더 커서 엄마랑 서점에 자주 갔던 기억은 난다. 엄마와 함께 서점에서 산 1호 바카라은 백설 공주였다. 난 바카라등이 벌어져 실밥이 터져 나올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서점에 들른 뒤 우리는 늘 빵집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빵, 엄마가 좋아하는 빵을 봉투에 한가득 담아 왔다. 집에 돌아오면 빵을 먹으며 바카라을 봤다. 그때 엄마의 맥심 커피 냄새는 참 향긋했다. 한은진 씨와 나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 엄마들이 교실 뒤에 서 있으면 보통 누구 엄마겠지 짐작이 되는데,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우리 엄마는 몰라봤다. 어떤 담임 선생님은 "얘~ 엄마 닮지 그랬니. 하하"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하여튼 한은진 씨는 그 반지하 집에 살 만한 사람으로는 안 보였다. 어린 눈에도 그랬다.
가끔 엄마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하지만 내가 더 묻기 시작하면 입을 다물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아주 어렸을 적에 집을 나갔다고 했다. 아니, 처음에는 죽었다고도 했다. 그 뒤 엄마는 먼 친척 할머니 손에 맡겨져 자랐다. 외할아버지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외할아버지를 한 번 만난 적은 있다. 몸의 반쪽이 마비가 된 채 휠체어에 앉아 있던 외할아버지는 나를 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그 옆에는 새 외할머니가 있었다. 일본 사람이라고 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했다. 커트 머리에 화장을 단정하게 하고 있던 새 외할머니는 참 세련돼 보였다. 반면 엄마는 수수한 남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새 외할머니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새 외할머니는 그날 고급 자동차로 직접 운전을 해서 근처 백화점에 데려갔다. 우리 집에서는 엄두도 못 낼 바비인형과 인형 옷을 나와 동생에게 하나씩 사주었다. 인형을 좋아하던 동생이 방방 뛰며 기뻐했다. 하루 동안 새 외할머니와 엄마는 쇼핑도 하고 밥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둘은 서로 지나치게 예의를 차렸다. 누가 봐도 모녀 사이는 아니었다. 모녀 사이라면 엄마와 나 같아야 했으니까. 난 그 후로 외할아버지와 새 외할머니를 본 적이 없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드라마에서는 보통 집이 가난해서 엄마가 떠나곤 하는데, 엄마의 집은 잘살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엄마의 친엄마는 왜 집을 나간 것일까. 집이 가난해서 나간 게 아니라면 왜 떠난 걸까? 난 어렸을 때부터 “왜”를 달고 살았다. 엄마와 아빠가 제발 왜 좀 그만하라고 할 정도였다.
"엄마, 외할머니가 엄마를 왜 버렸어? 연락해 봤어?"
"나도 몰라. 인제 와서 연락해서 뭐 해. 살아있다고는 하더라."
엄마는 스무 살 때 결혼했다고 했다. 아빠와는 일곱 살 차이다. 다방에서 처음 만났는데, 아빠의 손이 참 예뻤다고 했다. 나중에야 그 손이 고생 안 한 손인 줄 몰랐다고, 땅을 치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냐며 넋두리를 늘어놓았지만 말이다. 엄마는 무엇보다 그 먼 친척뻘 되는 할머니 집을 나오고 싶었다. 가정을 이루고 싶었고, 아빠의 엄마 그러니까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를 자기 부모처럼 모시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며느리가 딸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한은진 씨는 아내, 며느리,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23살 때 나를 낳았다. 내가 너무 울어서 벽에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도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별로 여겨본 적이 없다. 하물며 친엄마도 없이 이십 대 초반에 아이를 둘이나 낳은 엄마는 어땠겠나.
여름휴가 때는 할아버지 댁으로 갔다. 초등학교 다니던 6년 내내 그랬다. 엄마는 아빠한테 이번에는 제발 다른 곳으로 가자고 졸랐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들 모이는데 어떻게 우리만 빠지냐는 이유였다. 아빠네는 다섯 남매였고, 아빠는 넷째이자 막내아들이었다. 다섯 가족이 그렇게 매해 여름 한 곳에 모였다. 고모들은 친정으로 온 것이었지만 엄마는 탈출할 친정이 없었다. 물놀이를 마치고 돌아오면 진흙투성이 옷가지들이 쌓였다. 그 빨래는 모두 막내며느리의 몫이었다. 엄마는 허리를 펴지 못했다.
내가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가 되자, 엄마는 틈만 나면 나를 붙잡고 아빠 욕을 했다. 들어줄 사람이 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샌가 엄마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학교에서 수련회를 가면 이튿날 밤에는 불을 다 끄고 촛불을 켜는 시간이 꼭 있었다. 잔잔한 기타 음악 같은 것이 깔리고, 우리는 눈을 감았다. 마이크를 잡은 선생님은 꼭 부모님 이야기를 꺼냈다. 눈을 살짝 떠서 친구들을 보면, 나처럼 실눈 뜨는 남자아이들 몇 명, 눈물, 콧물을 훌쩍이는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다들 왜 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 집은 그 무렵 고모네에 빚을 지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월급을 받아 쓰는 대신, 필요한 만큼 생활비를 받아 쓰고 있었다. 엄마는 궁리 끝에 고모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지퍼를 받아다가 지퍼를 끼우는 부업을 시작했다. 엄마가 기침하면 검정 가래가 나왔다. 릴케의 시로 하얗게 물들었던 방이 점점 거멓게 번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지퍼를 끼우면 끼울수록 시는 사라져 갔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별다른 사교육 없이도 고모네 집 사촌들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나는 엄마 아빠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어느 날, 산수 경시대회에서 2개를 틀려 동상을 받아온 적이 있었다. 나는 엄마를 기쁘게 해 줄 마음으로 뜀박질하며 집으로 갔다. 신발주머니가 함께 날아다녔다.
"엄마, 나 동상 받았어!"
"동상? 시험지 줘 봐. 뭐야. 쉬운 걸 두 개나 틀렸네."
뺨에서 불이 번쩍 났다. 순간 멍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퍼를 끼우는 엄마는 예전처럼 바카라을 읽거나 글을 쓰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엄마가 끝까지 붙잡고 있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일본어였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쯤부터 엄마는 24시간 김밥집에서 밤부터 새벽까지 김밥을 말았다. 엄마의 다리는 늘 퉁퉁 부어있었다. 그런데도 일본어 공부만큼은 놓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일본어능력시험 1급을 따냈다. 딸이 수능을 보던 그해에 말이다.
그때 한은진 씨는 고3 수험생을 둔 엄마 같지 않았다. 딸이 돌아오기 전까지 딸의 바카라상에서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입시설명회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부러웠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밤참을 만들어주거나, 학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딸의 어깨를 감싸며 공부 잘했냐고 묻는 엄마들 둔 친구들 말이다. 하지만 말하지 못했다. 어떤 날은 나보다 엄마가 늦게까지 일본어바카라을 붙들고 있었으니까. 집에는 또 다른 수험생이 있었다.
그런데 왜 영어도 아니고, 불어도 아니고 일본어였을까? 새 외할머니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던 걸까? 신기하게도 동생도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 나와 달리 지금도 가끔 엄마가 그립다고 말하는 동생이다.
일본어능력시험이 기대했던 만큼 엄마를 훌쩍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지 못해서였을까?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쯤 엄마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혼자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았고, 깔깔 웃다가 엉엉 울었다. 그러다가 남아 있는 전 재산을 주식으로 다 날려 버리고 집을 나갔다.
엄마는 제발 이혼하게 해달라고 나를 졸랐다. 그리고 나는 아빠를 설득했다. 차라리 둘이 헤어지면 내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혼한 뒤에는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등을 떠민 건 아닐까. 나만 아니었다면 둘은 더 버텼을까. 그럴 만도 한 게 아빠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때 니가 엄마 카드 빚 갚아달라면서 얼마나 성화였어. 그때 어떻게든 같이 살았어야 했는데.”
아빠는 이혼 문제까지 나에게 짐을 덜고자 했다.
꽃잎이가 자꾸 다가와 그만 쓰라고 성화를 부린다.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꽃잎이는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다.
엄마는 우리가 살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고시원 방인데도 상상했던 것보다 엄마의 방은 참 아늑하고 예뻤다. 꽃무늬 이불, 수저 세트, 냄비, 전기포트 등 단출한 물건들이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엄마는 슈퍼마켓에서 캐셔로 일한다고 했다. 나는 아빠와 함께 살면서, 또 엄마와는 자주 연락하면서 바쁘게 오가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엄마의 답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남자가 생기기 시작하고부터였을 것이다.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기로 했다. 이삿날 이미 미니를 못 맡아주겠다고 했건만 나는 그때도 등신같이 미니를 데리고 나갔다. 엄마는 미니를 보는 둥 마는 둥, 신기한 건 미니도 엄마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에잇, 뭐 하러 미니까지 데리고 나왔어.”
“엄마가 보고 싶을까 봐 그랬지.”
한동안 둘 다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런 흔한 대사를 남겼다.
“너도 엄마 나이가 되면 알게 될 거야.”
“난 엄마 나이가 되려면 아직 멀었어. 그러면 그때까지 어쩌라는 거야? 앞으로 절대 연락 안 할 거야. 엄마도 나한테 하지 마.”
그래 놓고 나는 또 연락했다. 엄마는 받지 않았다. 그날이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