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게으른 소는 무를 먹었을까

게으름이라는 체증을 뚫어준 무 한 뿌리

by사유하는 밥상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⑪

제목 : 왜 게으른 소는 무를 먹었을까

부제 : 게으름이라는 체증을 뚫어준 무 한 뿌리


소가 된 게으름뱅이

옛날 옛적에, 일하기가 죽기보다 싫은 사내가 살고 있었다. 아침부터 일어나 밭에 나가는 것도 싫고, 남들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것도 싫었다. 그저 편하게 놀고먹으며 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인이 소 탈을 하나 건네주며 말한다. “이걸 쓰면 소가 될 수 있다네. 그러면 농부에게 팔려가 편하게 먹고살 수 있지.”

게으름뱅이 사내에게는 솔깃한 말이었다.

‘사람으로 사느니 차라리 소가 되어 편하게 먹고사는 게 낫겠다.’

그는 냉큼 소 탈을 쓰고 소가 되었고 농부에게 팔려갔다. 그 노인은 농부에게 소를 팔며 이렇게 말했다.

“이 소는 풀은 다 먹어도 되지만 절대 무는 먹이면 안됩니다. 무를 먹으면 죽게 됩니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소가 되었으니 정말 편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농부에게 팔려간 그는 밭을 갈고, 수레를 끌고,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했다. 사람일 때는 일하기 싫어서 소가 되었는데, 소가 되고 나니 오히려 사람일 때보다 더 죽도록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또 시간이 흐르자 그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그때 문득, 소 탈을 씌워주었던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이 소는 무를 먹으면 죽는다네.”

그래서 그는 밭으로 가서 무 한 뿌리를 뽑아 먹었다.

그런데……

오히려 소의 몸이 사라지고, 다시 사람이 되었다. 죽으려고 먹은 무가 자신을 다시 살려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는 이 동화에서 ‘무’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맞아. 역시 게으름을 피우면 안되지, 게으름 피우면 소가 되지.’ 하는 교훈을 얻었던 정도였다.

하지만 이 동화가 이젠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왜 하필 무였을까?


무는 밭에서 쉽게 볼 수 있고, 국이나 나물, 김치 등 우리 식생활 곳곳에 등장하는 아주 평범한 채소다. 그런데 바로 그 평범함 때문에 오히려 이 이야기에서 무가 선택된 것이 아닐까 싶다. 죽고 싶을 만큼 절망한 순간, 주인공 앞에 놓인 것은 멀리 있는 귀한 약초도, 특별한 음식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서 있던 밭에 있는 무 한 뿌리였다.


비록 잘못된 판단으로 소가 되었지만, 자신이 서 있던 그 자리에서 손에 닿는 일상적인 작물로 ‘무’를 설정해놓은 것은 아마도 소가 된 사내에게 언제든지 기회를 주려고 한 배려였던 게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식품영양학을 공부한 나에게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연결고리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무가 갖는 ‘소화’작용이다.

무는 우리 식생활에서 소화를 돕는 음식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무에는 전분 분해와 관련된 amylase 계열 효소 활성이 보고되어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밥이나 고기처럼 묵직한 음식을 먹을 때 무를 함께 먹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옛이야기의 ‘무’가 가진 역할과 오늘날 우리가 무를 바라보는 방식이 묘하게 겹쳐 보였다.


게으름에 빠져 있던 사내는 삶이 꽉 막혀 있었다.

일하기 싫고, 바카라임지기 싫고, 그저 편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아예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소가 되었다.

그런데 소가 되고 나니 오히려 더 힘든 노동을 해야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무 한 뿌리가 등장한다.

죽으려고 먹었던 무가 그를 다시 사람을 돌려놓았다.

내게는 그 장면이 마치 ‘인생의 체증’을 뚫는 장면처럼 보인다.


어릴 때 읽었던 이 동화는 내게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다시 읽어보니 조금 다른 이야기가 보인다.

게으름을 피운 그 사내에게 영원히 고통받는 벌을 내리는 대신, 가장 가까운 곳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남겨놓았다. 그 길을 열어주는 것은 거창한 기적도, 특별한 약도 아니었다. 그저 밭에 있던 무 한 뿌리였다.

이 동화에서 '무'는 그야말로 인생의 꽉 막혀있던 삶을 뚫어주는 기가막히게 잘 만들어진 장치가 아닌가.


사람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인생의 끝까지 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때로는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돌아올 수 있는 길이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한 날, 내 안의 게으름과 후회가 무겁게 얹혀 체한 것만 같은 날. 그럴 때마다 소 탈을 벗겨내던 그 시원한 무 한 뿌리의 지혜를 떠올려본다. 막힌 속을 뚫고 다시 내 발로 뚜벅뚜벅 걸어갈 힘은, 결국 가장 일상적인 내 자리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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