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간은 왜 용왕의 병을 못 고쳤을까

건강은 명약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by사유하는 밥상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④

제목 : 토끼 간은 왜 용왕의 병을 못 고쳤을까

부제 : 건강은 명약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어릴 적 읽었던 『토끼전』을 보면 병에 걸린 용왕은 토끼의 간만 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고, 그래서 별주부는 목숨을 걸고 토끼를 데려왔다. 하지만 토끼는 "간을 집에 두고 왔다."는 기발한 거짓말로 모두를 속이고 살아남는다. 어린 시절에는 토끼의 재치가 어찌나 재미있고 통쾌했던지.


그런데 나이가 들고 다시 읽으니, 토끼보다 용왕이 더 궁금해졌다.

왜 용왕은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부터 찾았을까?

용왕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토끼의 간이었을까?


『토끼전』과 판소리 『수궁가』를 자세히 읽어보면 용왕의 병은 우연히 생긴 병이 아니었다. 원문에는 용왕이 밤낮으로 주색잡기에 빠져 있었고, 산해진미를 절제 없이 먹다가 결국 큰 병을 얻었다고 묘사된다. 그래서 눈이 침침해지고, 배가 불러오고, 몸은 점점 쇠약해진다는 대목이 나온다.

식품영양학자의 눈으로 보면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과식과 음주, 운동 부족이 반복되면서 나타나는 대사성 질환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의 병명을 고전 속 인물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야기 속 용왕은 스스로의 생활습관으로 몸을 망가뜨린 인물로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용왕의 병이 생활습관에서 비롯되었다면, 왜 치료법은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아니었을까? 왜 하필 토끼의 간이었을까?


그리고 여기서 나는 조금 엉뚱한 의문이 들었다.

그런 용왕을 고치겠다고 의원은 토끼의 간이 효험이 있다고 말한다. 어의는 진짜 토끼 간이 효험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차마 용왕님의 생활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지 못해 둘러댄 것일까? 용왕에게 "술을 끊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보다 "토끼의 간을 드십시오."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안전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들은 별주부는 토끼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어렵게 토끼를 데려와 용왕 앞에 대령하지만, 엉겁결에 붙잡혀 온 토끼는 재치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한다.

“용왕님, 안타깝지만 지금은 제게 간이 없습니다. 워낙 귀한 것이기에 저만 아는 곳에 몰래 감춰두고 왔습니다. 얼른 가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토끼는 그렇게 목숨을 건진다.


그렇다면 용왕에게 토끼의 간은 정말 효험이 있었을까?

용왕은 자신의 몸이 왜 망가지고 있는지는 외면한 채, 날쌔게 산을 뛰어다니는 건강한 토끼의 간만 먹으면 저절로 본인도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원인을 바꾸기보다, 손쉬운 해결바카라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니 괜한 토끼만 희생될 뻔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우리는 용왕과 좀 다를까?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먼저 간에 좋다는 영양제를 찾고, 혈당에 좋다는 식품을 찾고, 기적처럼 몸을 회복시켜 줄 무언가를 찾는다. 그러면서도 늦은 밤 야식을 하고, 운동은 미루고, 술자리는 줄이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식품도 잘못된 생활습관을 대신할 수는 없다. 매일 과식하고 술을 마시면서, 좋다는 것 하나만 먹는다고 건강이 회복되지는 않는다.

혹시 우리도 지금, 나의 망가진 몸을 단숨에 회복시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또 다른 '토끼의 간'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지.


『토끼전』을 다시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용왕에게 필요했던 것은 토끼의 간이 아니라 절제된 식탁이었고, 건강한 생활습관이었다는 사실이다.

병을 고치는 것은 특별한 명약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옛사람들은 토끼의 지혜를 빌려 깨우쳐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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